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이양 Sep 09. 2023

모기, 그 녀석의 라스트 댄스

[100일 100 글]90일, 아흔 번째 썰 

이번 주는 회사에서 몹시 분주했다. 주초부터 내가 속해있는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적으로 일이 크게 터져서 수습하느라 정신없었다. 퇴근 이후에도 계속 모니터링을 해야 해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다. 이 상태로 주말을 맞이하면 더 큰 재앙이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열심히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은 덕분에 다행히 내가 걱정한 재앙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금요일 저녁. 일단 살아야겠기에 저녁부터 힘겹게 먹었다. 그리고 누웠다. 저항 없이 누워 일주일 만에 맞이한 휴식을 즐겼다. 보통 새벽 2시에 잠드는 것과 달리 12시가 되지 않았는데 거의 반쯤 잠들어 눈앞이 가물거렸다. 오늘은 일찍 자자 싶었다. 부족한 수면을 충족시켜줘야 했고 무엇보다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평소 주말에는 9시 이전에 일어나는데 병원 예약시간인 10시 30분에 맞춰 일어나겠노라 다짐했다. 슬프게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의 계획은 무참히 박살 났다. 


새벽 3시. 어쩐지 다리가 간지러운 것 같았다. 분명 씻고 잤는데 왜 간지럽지 싶었다. 그래서  계속 긁었다. 계속 긁다 보니 도톰하게 손에 걸리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아, 모기에 물렸구나. 감이 왔지만 그냥 눈을 감았다. 평소 같으면 잡았을 건데 나에게는 잠드는 것이 중요했다. 자세가 딱 잡힌 상태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잠이 확 달아나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물린 곳을 긁어버렸기에 간지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기 물린 곳에 모기약을 발랐다. 모기 잡을 힘은 없어 다시 누워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반. 아까보다 더 강한 간지러움이 손에서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버티지 못했다. 불을 켜고 보니 오른쪽 손에만 4방이 물려있었다. 아까는 1곳이었는데. 짜증이 확 올라왔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다시 나를 깨게 만들다니. 왜 한여름에는 귀찮게 하지 않던 모기 XX가 지금 난리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설정해 둔 예약시간이 지나 선풍기가 작동을 멈췄는데, 덥지 않았다. 이렇게 알고 싶진 않았는데, 새벽 공기가 제법 시원했다. 아, 가을이구나. 


폭염과 폭우의 영향으로 한여름에는 잠잠하던 모기들이 가을에 기승을 부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일명 가을 모기였다. 끔찍한 더위와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숨어있던 녀석들이 돌아다니기 좋은 날씨가 되니 꾸물꾸물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살다 살다 가을이 왔음을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이야. 이렇게 선선한 날씨에 돌아다니다 온도가 더 낮아지면 다시 따뜻한 곳으로 숨어 들어갈 터였다. 


그렇다면 현재 돌아다니는 모기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들의 자유로운 비행을 즐기고 있다는 것일까. 최근 많이 들리는 라스트 댄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전투력의 게이지도 조금 낮아졌다. 그래서 불을 켜고 일어나 생포에 나서는 대신 훈증기를 작동시켰다. 나에게 잡히는 대신 약 냄새를 맡고 도망가라고 말이다. 자고 일어나 아침에 일어날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라스트 댄스를 어쩐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나간 한여름. 안 그래도 무더위에 지쳐있던 나를 그나마 잠은 잘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나름의 배려라면 배려랄까. 그들이 알아차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는 절 가는 누나도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