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도 늘 함께였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엄마의 집밥 아니었을까.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밥 한술은 꼭 뜨고 가야 하고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가 지어준 밥을 먹고 나면 어쩐지 다시 살아갈 용기가 났다. 기숙사에서 보낸 대학 시절에는 주말마다 꼬박꼬박 집으로 가 뱃속에 두둑이 엄마의 음식을 채워 다시 일주일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독립하고 나서도 냉장고에는 엄마의 반찬들이 가득했다. 혼자 있지만 함께 있는 느낌이 좋았다.
스물아홉 살이 되면 해 서울로 올라왔다. 따뜻한 남쪽 도시에만 살았던 나는 서울의 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새로운 일을, 나만의 일을 찾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왔지만 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 무엇이 되고자 하는 나. 온통 나 자신으로 가득 찬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이 이어졌다. 남동생이 새로 공부를 시작한 학교 앞 회기동의 좁은 골목 2층, 작은 방 두 개가 부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오래된 집을 월세로 계약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학교를 다녀 10년 가까이 떨어져 지낸 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어디서든 잘 자고 잘 먹고 무난한 성격의 나와 동생은 같이 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집에 들어와서 거의 잠만 자는 동생과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같이 밥을 먹으려고 애썼다. 엄마의 집밥을 먹고 자랐지만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을 잘 챙겨 먹이고 싶은 마음에 다양한 요리들을 시도하게 되었다.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요리하고 짧지만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이 좋았다.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했다.
어릴 때 친구들이 나보고 누나가 아니라 엄마 같다고 놀렸을 때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두 살 터울의 우리 남매는 같이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엄마의 밥을 먹으며 자랐다. 조금 일찍 독립한 동생이 안쓰러워 엄마는 시간이 나면 반찬과 도시락을 날랐다. 엄마에게는 밥이 곧 사랑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면서도 기숙사 앞까지 따라가 꼭 같이 밥을 먹고 왔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혼자 떨어져 공부하는 동생이 걱정되는 마음도 조금 편안해졌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신촌의 작은 원룸에 살던 동생은 한솥도시락과 인스턴트 음식들을 먹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어쩌다 한번 가보면 싱크대에 정리하지 못한 플라스틱 용기들이 가득했다. 동생이 그 원룸에서 보낸 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밥 한 끼를 사주고 그래도 서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고단한 시절을 보냈다.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어쩌면 인생에서 동생과 한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서툴지만 요리하고 부족한 맛의 그 음식을 동생은 맛있게 먹어주었다. 춥고 작았던 회기동 집에서 보낸 1년의 세월. 같이 먹은 밥은 몇 끼 되지 않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좋았다. 외롭지 않고 든든했다. 이제 우리는 아주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 각자의 가정을 꾸렸지만, 엄마의 집밥은 여전하다. 동생의 신혼집과 우리집 냉장고에는 엄마의 김치와 반찬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서로 사는 것이 바빠 다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시간은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번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엄마의 밥을 먹고 사랑을 채운다. 나도 나의 아이에게 밥을 해주며 엄마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렇게 우리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했는지. 집에서 부지런히 요리를 연마하여 늦지 않은 때에 나도 엄마를 위해 근사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