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한 날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나아가는 삶

by 손꼬마

나는 언제나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기를 갈망했다.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고 좀 더 나은 외모를 갖고 싶었고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직업을 가져보니 또 다른 고충이 생겼고 외모가 조금 나아진다고 해서 특별히 삶이 드라마틱하게 행복해지지 않았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벌게 되었을 때는 점점 더 큰 욕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은 삶이니 행복할 리 만무했다.


지난 9월이었다. 처음에는 왼쪽 가슴에 이따금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다. 몇 년간 유방에 물혹 때문에 추적검사를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초음파를 예약했다. 초음파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첫째 아이인지,’ 여러 질문을 해왔고 나는 속으로 ‘무슨 문제가 있나,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지’하고 생각했다. 근데 돌이켜보면 유방 질환은 임신, 출산과도 관계가 있어서 검사 시 으레 하는 질문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선생님은 유방에 석회가 보여서 암이 의심되는데 의뢰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해보라고 말했다. 만약 암이더라도 모양을 보니 상피내암(제자리암) 0기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고 담담하게 병원을 나왔다.


일주일 후 병원 예약을 다시 잡았다. 일주일 사이 많은 생각이 오갔다. 생명에 지장이 없더라도 암이라는데 괜찮은 건가. 가족들에게 괜히 이야기해서 걱정만 끼친 것은 아닌가. 별일 없겠지 싶다가도 정말 암이면 어떻게 하지. 애써 태연한 척 평소와 다름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조직검사를 하고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냥 빨리 알려주면 좋을 텐데 검사 사이의 기다림의 시간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암이라서 수술하게 되더라도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없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도 마음 한편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병원에서는 조직검사로 석회의 악성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어서 시술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시술로 유방 조직의 일부를 절제해서 다시 검사를 해야 하는데 만약 악성이면 다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사이에 추석연휴가 껴서 연휴가 끝나고 최대한 이른 날짜로 시술 예약을 했다.


추석 연휴 동안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잘 먹고 푹 쉬었다. 부모님의 배려로 아기를 부모님 댁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평소라면 조금 기뻤을 날들이 우울감으로 잠식당했다.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빨리 이 불안하고 찜찜한 마음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짧은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입원해서 각종 검사를 하고 링거를 맞고 병원을 들어선 후 얼마 되지 않아 영락없는 환자가 되어있었다. 시술은 정말 생각보다 짧게 끝이 났다. 아프고 무서웠지만 조직검사를 한 번 경험해서 그런지 크게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입원실에 누워있으니 두 시간마다 간호사들이 들어와 열과 혈압을 재고 주사를 놓고 나를 못살게 굴었다. 어서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퇴원 준비를 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나는 크게 앓았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목에 통증이 심해 코로나 검사를 두 번이나 하고 며칠 동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쇳소리를 내며 지냈다.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고 다시 콧물이 줄줄줄. 마음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아마 몸이 그동안 긴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지독한 감기는 처음이었다. 다시 일주일 후,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은 ‘크게 문제가 없네요. 양성종양으로 나왔어요. 3개월 후 다시 봅시다.’라고 말했다. 속이 후련했다. 그렇게 기다림 속 몇 번의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안온한 하루를 맞이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아이와 음악을 들으며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가 등원하면 집을 대충 정리하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짓고 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아이와 목욕하고 남은 집안일들을 하다가 아이를 재우려고 누워서 같이 잠드는 보통의 하루. 어쩌면 나는 또 다른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불안하고 우울한 어떤 일주일을.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에게 주어진 그 짧았던 시간이 평범한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건강하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나아가는 삶. 내가 원하던 안온한 보통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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