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리터럴리, 진짜로요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요즘 들어 계속 심장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일년에 네 번, 시험을 앞두고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울감, 불안감이 심장 두근거림으로.
보통 시험 출제를 앞두고 시작되어 인쇄본을 제출한 이후에 가라앉다
다시 시험을 한 주 앞두고 시작되어 끝나면 한동안 평온해진다.
그런데 그 기간이 논문 2심 원고와 겹쳤다? 말해 뭐해요.
올해 한약부터 시작해 내과 이비인후과 엽산 근육이완제 하다하다 요새는 효소찜질방까지 다니고 있다.
올 한해를 버티는게 나에게는 큰 과업이었는데 그래도 끝날 기미가 보인다. 올해도. 논문도.
일 년동안 썼다 지운 것을 포함하면 족히 천 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다.
과연 그 문장들 중 내 마음에 박혀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오늘은 두 문단을 썼다. 하루에 후루룩 수십 페이지까지 만들어내던 닥침의 나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니 닥쳤다. 앞으로 48시간 내에 완성해서 월요일에는 심사 교수님들께 보내드려야 한다.
왜냐고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줄여야 하고(나같아도 300페이지 넘는 글은 안 읽겠다)
그렇게 생산해낸 글에 내 심장이 담기지 않았다.
논문은 논설문이다. 그런데 '설'은 있으나 '논'이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의 두 문단은 다르다.
이 두 문단 안에는
올해의 교육행정학회에서 교수님이 말미에 하신 말씀
여름의 교육공학회에서 학술논문상을 받은 연구를 조테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
이 두개의 접점을 내가 잇고 엮었다.
물론, GPT의 도움을 받았다. 다듬기에서. 하지만 여기에 심긴 건 나의 '논점'이다.
이를 부드럽게 하는 혀, '설'의 도움은 GPT에게 받았지만 이건 나의 글이다.
새벽 한 시반, 평소같으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시간이지만 다시 불을 켜고 서재로 온다.
그 두 문단에 잇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독자를 두근거리게 할 것 같다.
적어도, 이 두 필드의 독자들에게는.
2021년도의 대학원 과제를 열어본다. 놀랍게도 지금의 논문과 사조가 같다.
이때는 GPT가 나오기 전,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이다.
주석을 뭉텅이로 쓰는 일부 필드(주로 교육법)의 논문들을 보며 왜 이렇게 하지 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넘게 차지할 때도 있었다. 이제 이해가 된다.
그 문장에 담긴 생각을 풀어놓는 것. 그것이 문장으로 압축되기까지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
특히나 '법'은 그 추상화된 수준이 높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남은 48시간, 분량을 늘릴 욕심을 버린다. 대신 나의 생각과 경험을 엮는다.
침대에 누워 있다 이를 못 참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을 만큼, 즐거웠으면 좋겠다.
덧, 30분 후.
세 문단을 더 썼다! 총합 다섯 문단! 이 다섯 문장은 내가 머리 속에서 매끄럽게 재현할 수 있다!
이건 진짜 내 글! 내 생각!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