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호 Jan 17. 2024

<세미 히키코모리 탈출기>

나는 20대 중 후반 몇 년간 세미 히키코모리였다. 세미 히키코모리란 완전한 히키코모리로 가기 직전 또는 경계 단계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외출은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세미 히키코모리 탈출기를 정리한 것으로 자신이 세미 히키코모리라는 생각이 든다면 전문가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처음부터 세미 히키코모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내향적이었고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지내는 걸 더 재밌어했지만, 대학교 때까지는 친구들과 제법 잘 어울려 다녔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학교 친구들 몇몇은 법원직 공무원을 준비했고 몇몇 선배들은 로스쿨에 합격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히키코모리가 되어있었다.     


세미 히키코모리가 되면 밤낮이 바뀐다. 세미 히키코모리라서 밤낮이 바뀌는 건지, 밤낮이 바뀌었기 때문에 히키코모리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밤낮이 바뀌는 이 패턴은 피해 갈 수 없다. 하루 중 정해진 일정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산다면 부딪히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면 패턴이 바뀐다. 보통   느지막이 일어나 새벽 2시에서 해 뜨기 전까지 정신이 가장 또렷하고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된다. 한 번 바뀐 수면 패턴은 다시 되돌리기도 어려운 데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홀로 깨어있으면 불안과 괴로움 좌절감이 배가 된다.      


새벽에 주로 하는 행동으로는 '내 인생이 어쩌다 이리되었나, 누구의 탓인가, 내가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것들을 떠올리는 일이다. 내가 그때 왜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휴학하고 노량진에서 그 짓을 했을까. 왜 그 전공을 선택했을까 같은 굵직한 것부터 그때 그런 놈을 왜 사랑했을까. 왜 거기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었지, 그 무례한 질문에 왜 화내면서 대답을 못했지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물고 이어진다. 그런 생각은   고등학교 때로, 중학교 때로,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에는 '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태어난 것부터가 문제다'라는 식으로 귀결된다.  그럼 정말 되돌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못되었으니 뭘 어디서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1년 이상 계속되니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지우게 된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처럼 내 인생에서 나를 철저히 지우게 되는 것이다. 세미 히키코모리로 있던 몇 년간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내가 나로 살아야 한다는 수치심. 수치심을 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간접 경험에 매달렸다. 그 2~3년간 내가 느꼈던 자극은 모두 다른 사람의 삶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누군가의 게임 플레이 영상, 다른 사람의 여행 브이로그, 누군가의 일기와 성공기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었다. 별 볼 일 없는 캐릭터가 성장해서 결국 세상을 구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며 인생에서 느껴야 할 좌절과 기쁨, 도전과 실패, 행복을 모두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대신 느꼈다. 그 몇 년간 나는 내 방에서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기도 하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도 했고, 세상에 없는 사랑도 했고,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너무 바빴다.     


오랫동안 실제 경험을 하지 않으니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몇 달간 설탕을 끊은 후에 마시는 코카콜라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맛인 것처럼 철저하게 고립된 채 지내다 밖에 나가면 일상적인 모든 것이 통제할 수 없는 극도의 불안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미용실에 가서 자신의 원하는 머리 모양을 말하고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오는 일련의 과정이 실제로 세미 히키코모리에게는 알 수 없는 오지로 떠나는 것만큼 두렵다. 그래서 결국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집에서 5분 거리 슈퍼를 가기 위해 수십번 망설이다 2달 만에 처음 복도로 나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본적인 것들이 어려워진다. 밖에 나가서 일상적인 사회 활동을 하는 것, 회사를 다니고, 취미로 모임에 나간다거나 운동을 하는 것, 슈퍼에 가서 장을 보는 것, 쇼핑을 하고 머리를 자르는 것, 친구를 만나 사소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다 분리수거나 설거지를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계획하는 것,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씻고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해야 할 자신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도 놔버리게 된다. 누워서 하루 종일 멋대로 사는 것 같지만 마음만은 치 떨리게 괴롭다. 이런 사소한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좌절감,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미 히키코모리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냉정하게 과할 정도로 삶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알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용서되지 않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지금의 상태가 너무나 익숙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괴로워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세미 히키코모리였던 나는 무엇부터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어나서 침구류 정리,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 운동하기, 햇볕 쐬기, 아주 작은 일부터 해나가면서 성취감 느끼기 모두 다 맞는 말이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정말이지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앉아 있기' 연습부터 시작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누워서 보냈던 나는 하루에 30분 정리된 책상에 앉아있기로 했다. 시간을 늘려 한 시간, 두 시간 앉아 있었다. 마치 아이가 서기전 앉아있기부터 익히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한다면 영화를 보거나 sns를 하거나 의미 없는 낙서를 해도 다 성공으로 쳤다. 다 큰 성인이 앉아있기를 연습한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노트에 그 많던 수치심을 다 쏟아냈다. 살면서 내가 부끄러웠던 순간, 지우고 싶은 기억, 도망가고 싶던 나날을 꺼내다 보니 잊고 있었던 수많은 수치심이 터질 듯이 나왔다. 미운 사람에 대한 원망도 모두 다 적어냈다. 미운 사람들을 하나씩 다 적다 보니 내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 용서해도 절대 용서할 수가 없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잘 살고 싶고 사람들에게 뽐내고 싶고 멋지게 보여주고 싶고 잘난척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다 적고 나니 내가 못 살면 어떤가? 사는 동안 꼭 성공해야 하나? 내가 나를 좀 망치면 안 되나? 그래도 되지 싶었다. 있는 그대로 못살아도 괜찮다고 마음먹은 순간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지금도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더 좋다. 지금도 경험보다는 상상이나 망상을 더 많이 하며 지낸다. 지금도 내가 수치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전처럼 나 자신이 밉지는 않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덜 미워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영원한 강아지, 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