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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Apr 25. 2020

01. 다양성이라는 씨앗, 백승균

성장의 길목에서 그는 어떤 사고로 도약하는가.

모델로 선 백승균[출처: instagram@baek.kwangdae, 작가: instagram@anyway.amy]


송혜미(이하 '송'):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승균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될 것 같다. 자신을 소개한다면.

백승균(이하 '백'): 처음부터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자기소개가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1년 전까지는 청주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고 공연 전시를 기획하는 문화기획자였다. 작년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지향점 혹은 영역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 자신을 'OOO 하는 백승균'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브랜드화하고 싶다. 지금은 그 과정 중에 있다.


송: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어땠는가.

백: 설레었다. 나라는 사람을 인터뷰할 정도로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확실한 포지션이 있지 않은가. 나라는 사람은 파헤쳐보면 늘 무언가를 해왔다. 하지만 확실하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서 스스로 정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송: 앞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는데 독자들은 이를 추상적으로 느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백: 다양하다. 먼저 을지로 열린문화회관 '감각의 제국'과 그 위에 위치한 옥탑갤러리 '옥보단'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옥보단'에서는 매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전이 열린다. 나는 작가와 소통하면서 그들의 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사진이나 영상을 제작한다. 그리고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작가님과도 함께 일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REP TV'의 인터뷰 코너 '랩게임토크'의 제작 스태프이기도 하다. 나는 인터뷰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가 겪은 첫 번째 상징성 - 스윙스와 더콰이엇


백승균이 직접 촬영한 더콰이엇 [출처:instagram@baek.kwangdae]


송: 1년 전에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는데 목표나 기대가 남달랐을 것 같다.

백: 온라인에서 인지한 힙합의 세상이 서울에는 실제로 펼쳐져 있다. 힙합 씬 안에서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3년 안에 스윙스를 만나겠다는 상징적인 꿈이 있었다. 그리고 랩게임토크를 통해서 1년 안에 스윙스를 만났다. 그전에 더콰이엇도 만났다. 굉장히 인상 깊었다.

 

송: 더콰이엇과의 만남에서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백: 다모임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더콰이엇에게 싸인을 받았는데 그가 대뜸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말했다. 멤버 중 유일하게 말이다. 그 말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날 찍는 지금 그 느낌을 잊지 말고 훗날 다시 만나자'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간 가장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송: 그 일이 주는 자극이 컸던 것 같은데 그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백: 아이러니하게도 특정 누군가와 작업해야겠다는 목표가 사라졌다. 대신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나의 포지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의 작업 방식과 잘 맞는 래퍼를 만나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장르를 떠나서 나에게 와 닿는 일을 찾고 있기도 하다. 서사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요즘은 포크 쪽으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가 겪은 두 번째 상징성 - 첫 전시회 '땅'
전시회 '땅'  [사진 제공: 백승균]


송: 최근에 상징적인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땅'이라는 타이틀의 전시회를 열었다. 첫 전시회인가.

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학창 시절의 연애를 연애로 간주하지 않는 것처럼. 사실 청주에 있을 때 'NOFFENS'라는 문화기획단체를 만들고 대표로 있었다. 그때는 국가공모사업으로 지원금을 받아 많은 공연과 전시를 진행했었다. 주로 힙합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것들을 담아낸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송: 전시에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짤막하게 소개한다면.

백: 현재 소속되어 있는 창작그룹 'Art Republic of City'의 멤버 조현진과 개인 작품, 공동 작품을 동시에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5-6년을 기록한 글과 사진을 재료로 나 자신을 탐색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늘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감각이나 직관에만 의존해 온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현진이가 '땅'이라는 주제를 제안했을 때, 마치 날 깨우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 키워드는 '땅'하는 총소리를 시작으로 나의 지난 시절을 관통시키는 느낌이었다.


송: 일기장을 전시한 점이 인상 깊었다. 내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는지.

백: 용기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전부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생각마저도 알아봐 주길 바랬다. 그 이후에도 나를 이해한다면 나를 정말 받아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송: 전시와 관련한 일화가 있는지.

백: 그 수많은 일기를 다 뒤적여 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자신을 만난 시기에 자신의 이름이 없다며, 혹은 자신의 이름이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송: 사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순수 예술이라기보다는 다큐 사진인 것 같다.

백: 그렇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예술 사진도 멋지지만 나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는다. 내가 가장 감동받는 사진은 다큐 사진이다. 현장감, 직관성, 이렇것들로 부터 많은 힘을 얻는다.


송: 백승균의 이번 전시가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백: 카테고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땅'이라는 키워드로 지역과 공간들을 더 세밀하게 분류하고 싶어 졌다. 피사체를 발견했을 때 곧바로 촬영에 몰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늘 그 카테고리를 마음속에 지니려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피사체를 만났을 때 '아, 이거 내 카테고리지'라는 생각으로 사진에 임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나를 사고하게 하고 발전하게 한 전환점이었다.



공간에 관하여
감각의 제국 전경


송: '공간'에도 '힙합'에 못지않은 애착이 있는 것 같다. '공간'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백: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이 채워주지 못하는 감각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령 공감각, 후각, 청각, 촉각, 인간 대면의 경험과 감각이 물리적 공간에는 존재한다. 인간은 생명력 있는 공간에서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직까지 다양한 공간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재미있다. 그런 점에서 공간은 파생될 수 있는 유형이 무궁무진하다.


송: '공간'에 대한 철학이 앞으로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백: 언젠가 개인적이면서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다. 하지만 아직 공간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 지금처럼 기존의 공간을 홍보하고 기획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 자체로 공부가 되고 있다. 공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 문화에 관하여
성안길 버스킹 공연 [기획: NOFFENS, 사진 제공: 백승균]


송: 대화를 전개하다 보니 다수의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서울이 아닌 곳에도 충분히 핫한 공간과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같다.

백: 서울 밖을 나가면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송: 반면에 문화와 공간을 찾아 서울로 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 아직 서울과 서울이 아닌 지역을 비교하기엔 시기상조다. 청주, 천안 등의 지역에서 본격적인 국가지원사업이나 청년 주도 문화활동의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서울 외 지역에서 문화기획 씬의 움직임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자랑한다. 그들은 이미 지역에 터전 삼아 살고 있기 때문에 지역 이해도가 높다. 그리고 관계가 잘 머무른다. 이러한 특성으로 상부상조하며 씬이 잘 성장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많은 실험이 가능한 것도 이점이다.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간담회를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을 지니고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지역적 비교가 유의미하기 위해선 10년은 더 지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았을 것 같다. 본인과 비슷하게 사진, 영상 작업을 하면서 기획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백: 아직은 보지 못했다. 그런 점이 반가우면서도 아쉽고 불안하다. 같은 행보를 걷는 멘토나 선배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을 하며 작업하는 것도 중요한데 말이다. 그런 사람과는 매일 만나도 즐거울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에 관하여


백승균의 흔적 [장소: 감각의 제국]


송: 생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보통 사진작가에 대해서 가난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백승균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이유가 무엇인가.

백: 기획을 함께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감각의 제국'에서 일하면서 월급을 받는다. 지금까지 기획과 사진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 해왔던 것 같다.


송: 생계를 염두하고 '기획'과 '사진' 사이의 균형을 맞춰온 것인지.

백: 무의식적으로 맞춰온 것 같다. 7년 동안 청주에 살았던 경험도 한 몫한다. 그곳은 씬에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많은 일들을 맡고 있다. 특히 젊은 감각으로 문화를 이해하고 기획자들과 소통이 원활하면서 사진까지 찍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행사나 공연이 있으면 나를 잘 써줬다. 재미있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간 블루오션을 찾아다닌 점도 생계에 영향이 있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찾다 보니 벌이가 따라오게 되었다.


송: 질문의 취지는 개인적인 불만에서 기인한다. '소수 문화는 가난하다'라는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지 방법론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열망과 열정이 있음에도 이런 일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백: 나도 이런 류의 인터뷰나 의견을 많이 보았지만 늘 답은 똑같았다. '하다 보면 돈이 되던대요.' 물론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대기업 임직원보단 못 벌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만큼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만든 체제, 좋아하는 방식 안에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확실하다.



그를 이끄는 힘에 관하여
힙합에 대해 소개하는 백승균 [출처: 인생나눔교실 공식블로그]


송: 백승균이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백승균이 온라인에 적은 몇 편의 글을 읽었다. 그중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것이며 아무 일 없이 지각 변동하지 않는다.

늘 한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가져온다.


백: 모든 창의적인 일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억울함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기본적인 나의 스탠스는 무난하고 유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거 아닌데'라며 욱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 해명하고 싶고 바꾸고 싶어 한다. 대부분 나의 기획 과정이 그렇다. '정'에서 '반'에서 '합'으로 가는 레퍼토리가 나에게 늘 있다. 힙합과의 접점이기도 하다.


송: 구체적으로 어떤 일화가 있는지.

백: 힙합동아리에서 회장을 했을 때다. 힙합 하는 사람들에 대한 '힙찔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멋지고 괜찮은 친구들이었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과 영상을 제대로 시작했다. 다른 일화도 있다. 힙합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거친 언어를 최소화해서 그들에게 힙합과 랩을 소개한 적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힙합 문화를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왜곡한 적은 없다.



꿈과 계획


송: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백: 한 래퍼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획하고 있다. 그간 관심 있는 대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진지하게 찍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돈이 안 되더라도 말이다.


또 '감각의 제국'과 '옥보단'에서 꾸준히 일할 계획이다. 사장님 계획 중의 하나가 라이브 공연이다. '감각의 제국'을 공연 브랜드화하고 싶어 한다. 콘셉트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인데 곧 현실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작업에 몰입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내 굴로 들어간다.'라고 표현한다. 이제는 협업에서 벗어나 나의 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 개인 홈페이지 개설을 계획 중이다. 이번 상반기 내로 홈페이지에 올라갈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할 것이다. 방금 세운 계획이다. 인터뷰에서 언급했으니 지켜야 할 것 같다.


송: 마지막 질문이다. 막연해도 좋으니 꿈이 있다면.  

백: 한 편의 다큐나 한 권의 자서전으로 기록될 만한 인생을 살고 싶다. 세상의 천태만상을 기록하고 관찰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며 살고 싶다.


두 번째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세 번째는 힙합이 교양 과목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힙합평론가 김봉현 작가님이 '2019 한국대중음악학회'에서 언급한 부분에서 깊이 공감한 후 갖게 된 꿈이다. 힙합적인 태도나 사고방식이 교양으로 느껴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힙합의 긍정성이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하는 일들이 그런 목표와 가치를 갖는 움직임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움직임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 되지 않겠는가.


송: 장장 2시간 반의 인터뷰였다. 예상보다 길어졌는데 어땠는가.

백: 너무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었다. 재미있었다.



작가의 음악적 시선


성장의 길목에 있을 때 사람들은 쉽게 나약해진다.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도약의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백승균이 보여준다.


'힙합, 공간, 지역, 문제의식, 생계' 이토록 온도차가 극심한 키워드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 안에 공존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고의 귀차니즘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고에 푹 빠져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점진적인 행보가 나의 말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실오라기 한가닥 한가닥이 모여 당신만의 특별한 실타래를 완성할 것을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의 '민수는 혼란스럽다'를 추천한다. 승균이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나는 왜 자꾸 상상하게 되는 것일까. 훗날 더콰이엇과 동등한 위치에서 작업할 그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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