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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May 20. 2020

03. 마음이 남긴 몸의 흔적을 따라서, 최정아

무용동작치료사가 들려주는 몸과 마음의 이야기


송혜미(이하 ‘송’): 자기소개 부탁한다.

최정아(이하 ‘최): 무용동작치료사다.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이야기를 몸에 담아 놓는다. 나는 그것에 대해 움직임으로 대화하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지치고 힘들어할 때 곁에서 지지해주며 경청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계속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송: 운영하고 있는 ‘트리인마인드(Tree in Mind)’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최: 예술치료 교육연구소이자 상담센터다. 미술치료를 하는 선생님과 함께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내담자에게 있어서 자기 안의 씨앗과 생명력을 돋게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다른 치료사들이 안전하게 쉬고 즐기며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센터 이름을 지었다. 자신만의 가치 있는 씨앗을 심어서 생명력 있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담자: 심리적인 문제나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송: 아직 우리나라에서 무용동작치료는 생소한 심리치료 방식인 것 같다. 무용동작치료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최: 무용동작치료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194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위해서 다양한 예술매체를 통한 치료 시도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무용동작을 매체로 하는 심리치료이다. 무용동작치료의 핵심은, 마음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은 몸을 통해서도 경험한다는 것이다. 즉, ‘몸과 마음의 연결’이다.


무용동작치료에 관하여


송: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운 것 같다. 몸과 마음의 연결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지.

최: 무용동작치료 방식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내담자들에게 움직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전에 움직일 준비부터 한다. 내담자가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무용동작치료사는 그들의 작은 움직임부터 관찰하고 따라가면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첫 번째로 지지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당신은 할 수 있다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송: ‘안전함’이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안전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최: 본인 스스로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는 상태, 그리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안전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움직임을 시작하지 않는다. ‘언어’를 통해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우선, 대화를 한다. 내담자가 생각을 떠올리고 움직임이 나타나면 그 움직임을 따라 들어간다. 만약 불편한 경험이 올라오면 움직임을 멈추고 편안함을 찾아간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담자 스스로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치료 공간도 안전하게 느껴야 한다. 그래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둔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인식하면서 외부 환경을 안전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송: 무용동작치료에 있어서 ‘언어’가 매체로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언어’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최: 굉장히 중요하다. 언어는 인간이 지닌 최고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용동작치료의 궁극적인 목표 또한 언어로서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최근 한 내담자의 사례를 들자면, 그분은 무용동작치료가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공간이 편안한지 선택하게 한 후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던 중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고 ‘발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하셨는데 어떠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가장 편안할 때 그런 움직임을 한다고 했다. 그 발견을 시작으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며 움직임을 확장했고 손가락까지 움직이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대화를 시작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몸의 사인을 잘 읽는 것이 무용치료사의 역할이다.


송: 무용동작치료에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없는지.

최: 개개인은 자신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평가할 수 없다. 치료사가 내담자의 움직임을 관찰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동작’ 혹은 ‘몸’이라는 매체는 안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험할 수 있다. 천천히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발가락 움직이는 것이 어떠세요?’라고 물었을 때 내담자의 안 좋은 기억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심히 관찰하고 질문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무용동작치료의 음악에 관하여


송: 무용동작치료에 있어서 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무용동작치료에서는 음악을 외부 환경으로 잘 사용한다. 음악은 움직임에 동기를 부여한다. 또한 외부환경을 이미지로 상상할 때도 음악을 사용한다. 감정이 압도되는 음악보다는 타악기 위주의 리듬 음악을 사용한다. 특히, 4비트 음악들이 심장박동의 리듬과 비슷하다. 음악을 사용하다 보면 점차 자신만의 리듬이 나오게 된다. 그때부터는 굳이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음악의 리듬을 따라갈지 내면의 리듬을 따라갈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송: 구체적으로 음악을 통해서 어떤 치료를 하는지.

최: 요즘은 호스피스 병동에 나간다. 그곳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누워있다. 그런 분들에게 움직이자고 하면 귀찮아한다. 그래서 음악을 사용한다. 수간호사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준다. 그러면 정보를 토대로 음악을 선정한다.


가령, 종교에 맞추어 생활성가를 듣기도 하고 함께 찬송가를 지어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새 편안함을 느끼시고 통증이 심해 활동이 어려운 분들도 몸을 움직인다. 발가락이나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배를 느끼고 움직이려는 노력까지 한다. 신체의 중심부인 배를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통증이 환기되어 그날 하루는 편안하게 생활하신다. 이렇게 작은 움직임을 큰 움직임으로 확장하고 자신만의 편안한 움직임이 무엇인지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무용동작치료이다.


송: 어떻게 보면 환자들 조차 무용동작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최: 맞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나를 음악치료사나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알고 있는 분도 있다. 물론 나의 정체성은 무용동작치료사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해받고 공감받았다는 마음이다. 결국 환자와 내담자에게 맞추어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환자들이 움직임의 주인으로서 ‘내가 선택을 할 수 있구나. 내가 편안할 수 있구나. 내가 용기를 냈구나.’ 이런 마음들을 느끼도록 말이다.


음악의 영향력에 관하여


송: 감정이 압도되는 음악을 사용하게 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최: 감정이 압도되는 음악을 사용하면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나기 힘들어진다. 음악에 압도된 자신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리고 움직임 또한 그러한 착각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감정적인 음악은 불편한 경험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또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로 방출하게 할 수 있다. 모든 감정을 방출하고 허한 상태가 되면 그 다음에 오는 감정은 수치심,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감정적이거나 압도적인 음악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송: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든 사람이 어두운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영향을 받을지 걱정된다. 반면, 그런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현상인지.

최: 그런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음악의 어두운 지점에서 자신의 감정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일종의 카타르시스이다. 카타르시스는 정화작용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감정이 ‘쾌감’으로 향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쾌감을 느끼면 점차 더 큰 자극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송: 그러한 사례가 있었는지.

최: 예전에 만난 한 아이 중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에 열광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음악에 빠질수록 자해가 점점 심해졌다. 음악이 아이의 감성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빌리 아일리시 또한 정신적인 아픔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는 빌리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송: 민감한 문제이지만 뮤지션도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 맞다. 모든 대중가요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만큼 윤리적 가치도 중요하다. 뮤지션들이 조금만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담자의 자각과 노력에 대해서


송: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이 말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 말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최: 공자는 ‘한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 명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변으로 이어진 삼각형과 같이, 세 사람이 지지해주어야지만 서로 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타인과 어우러지는 삶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는 ‘스스로 내면의 영역을 창조적으로 만들어서 타인에게 과하게 휘둘리지 않기’ 정도가 되겠다.


치료를 받아서 좋아지는 내담자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자신의 사고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타인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내가 그 사람의 말을 신경 쓸지 말지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 타인의 말에 동요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경계가 없다. 그래서 그 경계를 노출시켜 놓고 타인의 모든 말에 휘둘린다. 그것은 마음의 힘이 없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판단하고 선택하고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송: 자신의 마음이 지닌 힘과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최: 중요하다. 그리고 자각하고 나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심리치료에 대해 착각하는 분들이 있다. 치료에 대해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치료사가 모든지 수용하고 허용해주기 때문에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굉장히 치열한 과정이다. 어떻게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곳에 오는 분들이 나보다 훨씬 더 용기 있고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 치열한 작업을 마주하러 매주 센터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심리치료를 받아봤자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내담자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무용동작치료사의 삶에 관하여


송: 어떤 계기로 무용동작치료를 하게 되었는지.

최: 영화 ‘빌리 엘리엇’에서의 대사처럼 나는 무대 위에서 빛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무용을 전공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용수가 되지는 못했다. 내가 빛날 수 있는 또 다른 무대를 찾다가 무용동작치료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무용동작치료가 일종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2년에 고대 안암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자기중심적이고 대인관계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웃긴 편이라서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소중함도 알지 못했다. 환자에 대한 자만한 마음과 동정, 편견을 품고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환자들로부터 사람의 따뜻함을 깊이 느낀 시기였다. 한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퇴원하신다고 머리를 예쁘게 치장하셨었다. 그때 예쁘다고 말씀드리니 환하게 웃으시며 나의 볼을 감싸주셨다. 그때 묘한 감정을 느꼈다. ‘사람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따뜻함에서 오는 묘한 감정에 이끌려 서울여대에서 무용치료학과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송: 어떤 마음을 지니고 무용동작치료에 임하는지.

최: 어떤 책에서 말하기를, 심리치료사로서 훈련을 받는 일은 ‘치료사가 내담자와 치료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고 내담자의 삶을 함부로 조종하려는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치료를 하다 보면 사람을 조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이러한 마음은 치료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래서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면서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송: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다. 심리치료사로서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최: 내담자를 이해하다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고통이 따른다. 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컨트롤하면서 생기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있다. 누군가의 삶을 만나면 나의 삶과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하는 것은 ‘내담자의 삶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 것처럼 느껴지는가’이다. 그렇다면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분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송: 심리치료사로서 스스로의 심리적, 정신적인 고통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최: 피어비전(Peervision)을 통해 동료들과 어려움을 나눈다. 치료사들끼리 지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부스터 모임이다. 그리고 퍼비전(Supervision)을 통해서 경험이 더 많은 치료사에게 조언을 얻기도 한다.


개인적인 방법으로는, 스스로 실수했다고 느낄 때 내담자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혼자서 꽁꽁 싸매지 않는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마음이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과정의 마무리 단계에서 내담자와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피드백을 통해서 서로 기억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면 과정 중 불편했던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해소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긴다.


송: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최: 최근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성장발육이 빠르다 보니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다. 그런데 청소년 내담자 중 한 아이가 나를 유독 괴롭혔던 아이의 얼굴과 겹쳤다. 그 순간 아이에게 크게 화를 냈다. 치료도 못하고 나왔다. 그때는 나도 심리치료를 받았다. 치료사 스스로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에 충실해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민과 꿈에 관하여


송: 최근 고민이 있다면.

최: 늘 내가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나는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이 잘 연결되는 그 순간의 행복을 믿으며 산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해서 가능할지 불안하다.


얼마 전 집단 상담을 하는데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려진 부분은 상상을 해야 했다. 심각했다.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모두 슬픔에만 빠져 있었다. 이 사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또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분노나 불신이 깊어진 것 같다. 나 또한 이러한 현상에 편승해서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 또한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많이 더럽혀진 이 세상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래서 요즘엔 재활용을 잘하려고 한다. 내가 자연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송: 막연하게나마 꿈이 있다면.

최: 해외에서는 사별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Death Cafe’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나는 사별뿐만 아니라 상실을 겪은 이들이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상실 카페’를 만들고 싶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상실을 겪을 수 있다. 친구를 잃는 것, 신체 기능의 일부를 잃는 것, 학교 폭력이나 왕따를 통해서 얻는 상실감, 연인과의 이별 등이 그러하다. 상실을 겪은 이들을 애도하고 위로할 수 있는 곳, 상실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와서 안전하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올해 9월쯤에 개설하려 한다.


두 번째 꿈으로는, 지구별을 떠나는 날까지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치료사의 자세 중 이런 것이 있다. '긍정적, 비판단적, 수용적, 중립적, 익명성 보장' 사실 이 모든 걸 지킬 수 있다면 도인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의 기준으로 삼고 지키려 노력한다.


그리고 나의 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멍 난 양말만 봐도 즐거워질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은 불편하고 어렵고 공포스러운 경험들이 떠오를 때 그 기억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그럴 때 자신의 기억을 피하지 않고 경험해야 한다. 이때 안전장치는 즐거움이다. 불편한 기억을 경험하는 일이 즐겁고 만족스럽고 충만한 경험이 되어야 기억과 경험 안에 빠져들지 않고 압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비로소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깊은 슬픔을 안전하게 경험하고 나면 웃음이 난다는 말이 있다. 나의 흥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어서 그들이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힘들 때 누군가의 즐거움을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음악적 시선
영화 '김씨 표류기' 사운드트랙 앨범 커버 [출처: 멜론]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다. 바이러스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 겹의 불신과 한 겹의 분노가 소복하게 쌓여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무언가와의 연결을 갈망한다.


그녀가 말한 고민은 인간의 생존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연결. 연결은 이 흉흉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숨 쉬게 하는 희망이다. 사람은 서로 마음으로 통할 때 몸의 건강만으로 채울 수 없는 활력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모두가 연결을 갈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연결을 회피하고 두려워한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방 안에 몸과 마음을 꼭꼭 숨겨 놓는다. 마치 영화 '김씨 표류기'의 두 김 씨들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영화 '김씨 표류기'의 두 김 씨들은 결국 연결을 통해 사랑과 자유의 가치를 깨닫는다. 물론 많은 두려움과 용기가 따라야 했다. 남자 김 씨는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다 밤섬에 떠밀려왔다. 그러다 강물에 떠밀려온 짜파게티 가루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짜장면을 해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새똥을 심어 밭을 일군다. 땅과의 연결, 하늘과의 연결, 물건과의 연결,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과 연결된다.


한편, 여자 김 씨는 방안에 숨어 지낸다. 대신 SNS의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를 행세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 밤섬의 남자 김 씨를 알게 되고 그와 연결되고자 한다. SNS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진정한 여자 김 씨, 자기 자신의 정체성으로 말이다. 보잘것없는 말 몇 마디를 멀리서 주고받을 뿐이지만 그들은 사소한 연결에 설렘을 느끼고 생명력을 찾아간다.


연결은 인간의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가장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는 가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용동작치료는 인간의 근간에서부터 생명력을 불어넣는 심패소생술이 아닐까. 연결이 희미해지는 세상 속에서 김씨표류기 OST 1번 트랙 'It's Your Room'을 추천한다. 그리고 당신의 각박해진 마음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마음으로 최정아 소장님의 따뜻한 이야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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