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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Aug 01. 2021

날씨 파는 소년

안데르센 명작 '성냥팔이 소녀'를 각색해보았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 안데르센 공모전 글 부문 금상 수상작>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던 날, 파아란 모자가 잘 어울리는 소년은 오늘도 장터로 향했어요. 소년은 금빛 갈대숲을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난 이틀 동안 운이 참 좋았다고요.

 

소년은 어제도, 그제도 날씨를 팔았어요. 어제는 가랑비를, 그제는 뭉게구름을 팔았지요. 가랑비는 장미꽃을 키우는 아주머니가 사갔고 뭉게구름은 구름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가가 사갔어요. 그들은 한 손에 날씨를 쥐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소년은 그들의 만족스런 얼굴을 떠올리다, 문득 미소 지었어요.

 

장터에 도착한 소년은 날씨를 손에 쥐고 손님을 기다렸어요. 오늘은 풍선 하나에 달빛을, 풍선 하나에 태양을, 풍선 하나에 소나기를 넣어 날씨를 잘 가두었지요. 소년이 외쳤어요.

“날씨 사세요. 날씨 사세요.”

머리칼이 세 가닥 난 할아버지가 수줍게 다가왔어요. 소년에게 물었어요.

“별이 있는가? 나는 소원을 빌어야 한다네.”

“별은 없어요.”

할아버지는 아쉬운지 한숨을 후- 내쉬고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갔어요.

 

잠시 후, 눈이 반쯤 감긴 부엉이가 다가왔어요.

“달빛은 없니? 나는 잠을 자고 싶어.”

“달빛을 줄게.”

소년은 달빛이 든 풍선을 부엉이에게 건넸어요. 부엉이는 몰려오는 졸음을 견디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어요. 소년은 부엉이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어요.

“좋은 꿈을 꾸렴!”

소년은 남은 풍선 두 개를 소중히 거두어 집으로 돌아갔어요.

 

다음 날, 소년은 태양이 든 풍선과 소나기가 든 풍선을 챙겼어요. 그리고 금빛 갈대밭을 지나 장터로 향했지요.

“날씨 사세요. 날씨 사세요.”

머리가 세 가닥 난 할아버지가 기대에 부푼 얼굴로 또다시 찾아왔어요.

“오늘은 별이 있는가? 소원을 빌어야 한다네.”

“오늘도 별은 없어요.”

할아버지는 아쉬운지 장터 근처를 서성이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요.

 

할아버지가 떠나고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와 말했어요.

“왈왈?”

“네가 사는 얼음 동산이 춥다면 태양은 어때?”

“왈왈!”

소년은 태양이 든 풍선을 강아지에게 건넸어요. 강아지는 풍선을 입에 물고 얼음 동산으로 달렸어요. 소년은 강아지를 향해 외쳤어요.

“따스한 나날을 보내렴!”

 

다음 날도 소년은 손님을 기다렸어요. 소나기가 든 풍선을 쥐고 말이죠.

“날씨 사세요. 날씨 사세요.”

오늘도 할아버지가 찾아왔어요. 그런데 할아버지의 세 가닥 머리칼이 두 가닥으로 줄어있었어요.

“오늘은 별이 있는가?”

“오늘도 별은 없어요. 하지만 별이 생기면 팔지 않고 남겨둘게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다. 별을 들여와도 나는 이제 살 수 없어.”

“왜요?”

“나는 내일이면 아주 머나먼 나라로 이사를 간단다. 별이 뜨지 않는 곳이지.”

“그곳엔 왜 별이 뜨지 않아요?”

“누군가 별님에게 소원을 빈 게지. 별이 뜨지 않도록 해 달라고.”

소년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별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간단다."

할아버지는 두 가닥 머리칼을 휘날리며 떠났어요.

 

잠시 후, 농부가 찾아왔어요.

“가뭄이 들어 배추가 자라지 않아. 방법이 없겠는가?”

농부는 주저앉아 울었어요. 소년은 하나 남은 풍선을 건넸어요.

“소나기를 드릴게요.”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구나."

농부는 울음을 멈추고 춤을 추며 사라졌어요. 이번에도 소년은 외쳤어요.

“건강한 배추를 수확하세요!”

날씨를 전부 판 소년은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어요. 소년은 그날 밤, 나무 위에 앉아 고민했어요.

“이젠 무엇을 팔아야 할까?”

그때 밤하늘 저 멀리서 거북이 한 마리가 소년의 머리 위로 지나갔어요. 소년이 인사했어요.

“거북아, 안녕!”

“끄으응.”

거북이는 소년의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하고 날다가 똥을 쌌어요. 소년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똥에 맞고 말았지요.

“소년아, 미안해. 널 보지 못했구나. 괜찮니?”

“응. 괜찮아. 닦아내면 돼.”

소년은 머리에 묻은 똥을 닦아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똥은 아주 예쁘고 밝은 노란빛을 내었어요. 그건 세 개의 별이었어요. 소년은 거북이에게 외쳤어요.

“고마워! 나에게 할 일이 생겼단다!”

거북이는 바닷속으로 사라지며 남몰래 소원을 빌었어요.

‘용왕님, 소년의 할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가득하도록 도와주세요.’

 

소년은 세 개의 별을 이고 머리칼이 두 가닥 난 할아버지를 찾아 길고 긴 여행을 떠났어요. 소년은 기뻐할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행복했어요.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찾아왔어요. 잔잔한 호수 위 커다란 초승달이 떴지요. 소년은 생각했어요. 

‘많이 보던 달빛인걸.’

마침 소년은 달빛 아래에 잠든 부엉이를 발견했어요.

“부엉아, 잘 자고 있니?”

부엉이는 코를 골며 잘 자고 있었어요. 소년은 부엉이 옆에 누워 잠시 쉬어갔어요.

 

다음 날,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소년은 할아버지를 찾아 걸었어요. 그러던 중 끝없는 바다 위 작은 얼음 조각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만났어요.

“안녕! 따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니?”

“왈왈!”

“태양에 얼음동산이 모두 녹아버렸다고?”

“왈왈!”

소년은 별 하나를 꺼냈어요. 그리고 별을 들여다봤어요. 그 안에는 소년이 먹고 싶은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이 아른거렸어요. 

“꼬르륵.” 소년의 배꼽에서 소리가 났어요. 소년은 잠시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을까요? 강아지가 겨우 네 다리를 딛고 선 얼음 조각이 점점 작아지고 있네요! 소년은 소원을 빌었어요.

“별님, 강아지가 탈 수 있는 돛단배를 내려주세요.”

별님은 훨훨 날아 바다에 살포시 내려앉았어요. 그 위에 돛단배가 꽃처럼 피었어요. 강아지는 배 위로 옮겨 앉아 소년에게 고맙다고 말했어요.

“왈왈!”

 

다음 날,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소년은 노인을 찾아 걸었어요. 소년은 배가 고팠지만, 그보단 엄마가 그리웠어요. 소년은 길을 걸으며 엄마를 닮은 구름 조각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상상했지요. 

 

엄마의 포도 알 같은 눈, 앵두 같은 코, 산딸기 같은 입술을 구름 조각 위에 새겼어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소나기가 쏟아지는 거예요. 소년은 급히 작은 오두막에 몸을 숨겼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울고 있는 농부를 만났지 뭐예요. 농부가 말했어요.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배추가 모두 물러버렸어.”

소년은 별 하나를 꺼냈어요. 그 안에 소년이 보고 싶은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어요. 소년은 농부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단다.” 

농부는 울음을 그치고 말했어요. 

“하지만 때로는 그리워도 볼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단다. 가령, 어제 보았던 기러기 한 마리, 멀리 떠난 옛 친구, 그리고 엄마나 아빠처럼. 찬란한 존재들이지. 그래서 나는 날마다 마음에 새긴단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잠에 들지.”

 

소년은 농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까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걸요. 하지만 소년은 농부를 믿어보기로 했어요. 잠에 들기 전,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 보기로요. 그리고 별님에게 소원을 빌었어요.

“별님, 배추가 잘 자라도록 적당한 햇살과 적당한 가랑비를 내려주세요.”

별님은 훨훨 날아 하늘 구멍 속으로 쏙 사라졌어요. 곧 태양이 뜨고 그 사이로 신선한 물방울이 내려 배추를 적셨어요. 농부는 눈부신 하늘 풍경에 감동하며 소년에게 말했어요.

“고맙구나. 네가 그리울 거야.” 농부는 춤을 추며 밭으로 사라졌어요.

 

소년은 노인을 찾아 다시 걸었어요. 졸음이 몰려오고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팠어요. 소년은 별님을 꺼내 속을 들여다봤어요.

 

별님 속에 엄마가 등장했어요. 

엄마는 식탁에 폭신한 빵과 따듯한 단호박 수프를 차려주었어요. 별님을 품에 안고 기뻐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빵을 나누어 먹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 양손 커다란 배추를 든 농부와 함께 춤을 추었지요. 농부가 말했어요.

“이곳으로 오는 길에 바다를 만났지. 강아지가 돛단배를 태워주었단다.”

“부엉이도 보셨지요?”

“부엉이는 자고 있더구나.”

별님 속 펼쳐지는 행복한 장면에 소년은 미소 짓다 그만 잠에 들고 말았어요. 깊은 잠이었지요. 결코 깨어나지 못할 아주 깊은 잠이요.

 

다음 날, 이제는 머리칼이 한 가닥밖에 남지 않은 할아버지가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장터로 향했어요. 길어질 여정에 마음을 굳게 먹었지요. 

그러던 중 길에서 쓰러진 소년을 발견했어요. 할아버지는 소년을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소년의 품에서 할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별님을 발견했지요.

할아버지는 별을 들여다봤어요. 별님 안에 머리카락이 풍성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른거렸어요.

“내 평생의 소원은 브로콜리 같이 복슬복슬한 머리털이라우. 하지만……”

 

할아버지는 평생에 한 번도 소원을 빌어 본 적이 없었어요. 소원은 어떻게 비는 걸까요? 눈을 감고 손을 모아 별님을 부르는 걸까요? 별님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까요?

 

할아버지는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어요. 마음속에 오래도록 그림을 그렸지요. 신중하고 꼼꼼하게요. 그리곤 소년의 곁에 앉아 미소를 머금고 기다렸어요.

 

잠시 후, 별님이 훨훨 날았어요. 부엌으로 날아가 신선한 빵과 고기의 향기를 머금고 소년의 배꼽에 살포시 내려앉았어요. 소년은 아주 깊은 잠에서 깨어 눈을 떴어요.

“할아버지!” 소년은 반가움에 할아버지에게 와락 안겼어요. “별님을 갖고 왔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어요. “하나 남은 별님은 너의 배꼽 속으로 사라졌단다. 내가 너를 살려달라 소원을 빈 게지.”

소년은 울었어요. “저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는걸요.”

“그래. 나에겐 소원이 있지. 나의 소원은 브로콜리 같이 풍성한 머리카락을 갖는 것이란다.” 

그때 마지막 남은 할아버지의 머리카락 한 올이 창 밖 너머로 날아갔어요. 소년과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이 날아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봤지요. 머리카락 한 올은 민들레 씨앗처럼 폴폴 날아가다 구름 뒤로 사라졌어요.

소년이 말했어요. “사라졌네요.”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사라졌구나.”

 

소년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지요. 하지만 별님이 없는데 어떻게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참, 하늘에 뜬 별님을 잠자리채로 따 볼까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사는 나라엔 별이 뜨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소년은 눈을 감고 생각했어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좋은 방법이……

 

소년은 드디어 눈을 떴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제 모자를 드릴게요. 풍성한 머리카락은 아니지만 엄마가 직접 떠주신 부드러운 털모자예요.”

“이 귀한 걸 내게 주어도 괜찮겠니?”

“모자가 없어도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거든요.”

“고맙구나.”

파아란 모자는 할아버지에게 잘 어울렸어요.

 

소년은 할아버지를 떠나 다시 오랜 여행길에 올랐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소년은 걸었지요. 그리고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나직이 소리 내었어요.

“엄마, 전 내일 무얼 할까요?”

소년은 곧 편안한 잠에 들었어요. 내일도 이어질 여정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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