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사 배윤슬 씨 편
평소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퀴즈’를 자주 시청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의 일반인들도 출연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다. 며칠 전 도배사 배윤슬 씨의 인터뷰 편을 보게 되었다. 배윤슬 씨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노인복지관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하던 대로 해라, 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경직된 조직문화에 회의감이 들어 퇴사를 하고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퇴사를 하고 처음에는 유사직종으로, 전 직장보다 보수가 더 좋은 복지관을 찾아보았지만 처우가 안 좋아서 그만둔 것이 아닌데 처우만 보고 비슷한 직종으로 이직하면 부딪혔던 문제와 다시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 직장에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만약 내가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속한 조직, 팀 내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기술직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학원에서 도배일을 배워 사수와 함께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몸을 쓰는 일이라 처음에는 일주일만 버텨보자, 그리고 한 달 만 버텨보자 하면서 지금까지 2년간 도배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걸 어떻게 보면 예상하고 제 선택으로 뛰어든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 이렇게 힘들어도 어디 가서 응석 부리고 토로하고 그러기가 어렵고 혼자서 다 견뎌야 됐어서 그런 시간이 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이거 내가 선택했는데 혹시 잘 못 선택했나. 그렇게 해서 내가 포기를 하게 되면 내가 들였던 시간, 노력, 돈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구나. 누가 등 떠밀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일단은 끝까지 가봐야겠다.”
나도 처음 몇 년간은 멕시코 생활에 적응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다. 스페인어도 잘 못 했고 그런 이유로 직장에서 멕시칸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매일 밤 펑펑 울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었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이 년 버티다 보니 직장생활에서 더 배우고 싶은 마음, 그리고 스페인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커져 5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사이에 서로 의지하고 힘든 시간을 버틸 좋은 친구와 동료들도 만났고,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외로움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상 속 배윤슬 씨 어머니 인터뷰에서는 딸이 하는 일을 존중하고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딸의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세계도 넓혀 간 어머니.
“일 끝나고 나오는 딸을 보면 안전모를 벗어 손에 들고, 작업화를 신고 풀이 가득 묻은 옷을 입고 현장을 걸어 나오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정직한 노동이 없더라고요. 땀 흘리는 만큼, 자기 실력만큼.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동네방네 다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우리 아이 도배한다고. 나중에 잘하게 되면 지인 할인해드리겠다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일이 있구나. 직업이 있구나. 얼마나 시야가 좁았는가. 제가 바뀌었어요.”
처음 멕시코에서 몇 달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돌아오지 말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거기서 제대로 해보지 않고 한국에 와서 무엇을 하겠냐고. 그때는 그 말이 괜히 서운하고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다면 지금처럼 성장한 나 자신이 없었을 것이고 값진 경험들을 내 이야기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 5년 넘게 멕시코에서 버텼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강단 있는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딸이 힘들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할 때 안된다고 말하는 아빠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의 말에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배윤슬 씨는 지금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주변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평생 원치 않는 일을 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매일매일 출근해야 하고 직장생활은 오래 해야 되지 않냐’고 말한다. 이에 유재석은 “나에 대해 큰 애정 없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얘기에 너무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동의한다.
“많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또 배워요. 윤슬 씨한테 또 배웁니다 오늘. 저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다양한 세대, 다양한 분야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유퀴즈를 즐겨 시청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인터뷰 중 유재석의 표정과 말들에는 진심이 담겨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스트에게 가르침을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국민 MC 유재석. 그 자리에 걸맞은 인성과 마음을 가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