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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Oct 19. 2021

아빠의 인생 제2막

현실 농부의 삶

  아빠는 직장생활을 30년간 해오셨다. 매일 아침 깔끔하게 다려진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출근하셨다. 그중 마지막 몇 년은 조금 지쳐 보였다. 그때는 구체적으로 아빠가 왜 힘들어하셨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회생활을 해보니 무엇 때문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아빠가 바라봐야 하는 사회는 아빠의 기질과는 정반대였던 것일까. 이러한 상황이 아빠의 어깨를 짓눌렀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얼마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아무 말 없이 단단히 아빠의 곁을 지켜온 엄마에게 감사하다.

  내가 해외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몇 달 전, 당뇨 합병증과 투석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금지되었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집에 꼭 한 번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투석과 코로나로 통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아빠는 지금도 할아버지를 집에 못 모셔다 드린 것이 한이라고 말씀하신다. 쓸쓸하게 혼자 보내드린 것을 가슴에 사무쳐하시는 것 같다. 2년 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병원에서 야윈 할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와르륵 쏟아졌다. 할아버지는 ‘이제 송현이를 보는 마지막이 아니겠냐’고 말씀하셨다. 아니라고 내년에 꼭 다시 뵐 거라고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오지 못했고 정말로 그때가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손녀들 중에 유독 나를 많이 아껴주셨고 타지 생활한다고 항상 걱정해 주셨는데. 할아버지께 감사한 게 정말 많은데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귀농을 함께 결심하셨다. 올해부터 시험 농사로 미니 단호박과 고구마를 재배하셨다. 아빠의 세심함과 정성으로 작물들은 알차고 맛있게 자라주었다. 고구마 잎을 걷어내고 덮어놓은 비닐을 벗기고 땅 속 깊이 들어있는 고구마를 캐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부모님과 셋이서 할 때는 진척이 더뎠는데 친척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신 덕분에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땅 속에서 갖 캐낸 고구마가 선명한 자줏빛을 뿜어내는데 정말 예뻐 보였고, 더 주렁주렁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보다 크게 자라지 않은 고구마들도 있었지만 ‘첫 술에 배 부를까’, ‘양보다 질이다’ 생각하며 맛있는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시험 재배로 총 300kg 정도의 고구마를 수확했고, 꿀고구마로 소문이 나면서 완판을 이루었다. 다음 작물로 감자를 심을 때도 두 손 두 발 걷고 친척들이 도와주러 오셨다. 아빠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일을 함께 끝냈다.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아빠의 어린 시절 친구분들도 가끔 와서 조언해주시고 응원해주시며 많은 힘이 되어주신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가족과 친구만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 지금까지도 편히 쉬지 못하고 열심히 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지만 타지 생활로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긴 만큼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정장과 구두를 신고 사무실로 출근하던 아빠가 등산복과 장화를 신고 흙을 밟는 생활을 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심을 하셨을지. 항상 남에게 베풀기를 먼저 하고 나누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던 아빠. 이제는 자연이 아빠에게 많이 많이 베풀어주면 좋겠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이번만큼은 꼭 들어맞으면 좋겠다.

(위) 아빠의 고구마 밭과 수확한 고구마 (아래) 밭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
고구마 밭 바로 옆 할아버지 산소. 할아버지가 작물들을 지켜주신다.
아빠의 감자 하우스와 푸르른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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