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우는 게 원래 힘들어요.
질문 :
1학년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맘입니다. 엄마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1학년 입학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잠시도 저를 안 떨어지려고 해요. 유치원도 또래 아이들보다 늦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습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앉혀 놓고 공부를 좀 가르쳐 보려고 해도 아이가 말을 안 듣고 하기 싫은 걸 시키면 짜증을 내고 심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웁니다. 하루 종일 아이가 어질러 놓은 물건들을 치우고 옷을 매일 빠느라(너무 더러워서 일일이 손으로 빠느라) 피곤합니다. 아이의 하는 짓이 너무 어리고 제가 통제하기가 힘듭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마음이 불안해질 정도로요. 학교에 입학했는데 글씨도 아직 잘 모르고 하려고도 안 합니다. 근데 아이 본인은 걱정을 전혀 안 해요.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솔직히 선생님 뵈러 가기가 망설여져서 최대한 상담을 미루다가 할 수 없이 갔는데 정작 선생님은 아이에게 특별히 문제가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시네요. 1학년 수준에서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에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달라고 조르는 것 말고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아이가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하면서 집에 오면 절 너무 힘들게 한다는 사실이 속상합니다. 제가 부족한 엄마라 그런 것 같은데 아이가 제 말을 거의 안 들으니 너무 힘들어요.
임신하고 아이 낳아 키워오는 동안 즐거운 마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요즘은 갈수록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조금 이른 나이(스물한 살)에 아이를 낳아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 아빠의 직장이 멀어서 새벽에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 퇴근합니다. 그래서 주말 외에는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아이 아빠는 저더러 강박증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괜찮은데 제가 너무 아이를 달달 볶는다면서요. 그런데 아이 아빠는 주말에만 아이를 만나잖아요. 그러니 힘들 일이 없지요. 차라리 제가 아빠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서 아이 키울 시간을 버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이 아빠는 시댁 친척들을 떠나는 걸 꺼립니다. 아이도 시부모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 댁에서 자는 날이 많고 시부모님 또한 아이를 끔찍이 아끼셔서 이사를 하는 것도 망설여지긴 합니다. 바로 옆 동에 시누이가 사는데 그 집 아이들은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해서 제 아이와 비교가 되는 것도 스트레스입니다. 시부모님은 제가 아이를 못 다룬다고 걱정하십니다. 제가 너무 아이에게 끌려다녀서 아이를 망가뜨린다고 하세요. 그 말 들을 때마다 속상합니다. 그래서 강한 마음을 먹고 아이를 잡아 보려고 해도 아이가 감당이 안 됩니다. 저도 아이 아빠도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인데 아이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부모와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요? 어떤 땐 아이고 뭐고 멀리 도망가고 싶기도 합니다. 자식은 부모 성격을 닮는다는데 어쩜 제 아이는 저와 이렇게 안 맞을까요?
답 :
아이고... 질문을 읽는 내내 우울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다른 질문보다 우선 답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어떤 질문보다 질문 주신 분의 간절함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형제와 다투거나 친구와 불화하는 문제라면 답을 드리는 것도 쉽고 예로 들어드릴 사례도 많은데 이런 질문은 사실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안다고 해도 너무 어려운 질문이고요. 빨리 답을 드리고는 싶고,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일단 뭐라도 몇 줄 써 드려야겠다는 조바심은 나고...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사실 전 이런 문제는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애도 둘이나 키웠고 스물몇 해를 선생으로 먹고살았으면서도... 아이를 기르는 일의 고단함에 대한 명쾌한 답을 모릅니다. 다만 저는 그냥 님이 저에게 보내신 질문이 넋두리였듯, 저 또한 넋두리로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님의 질문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전형적인 불안과 죄책감이 스며 있어요.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이런 표현 때문입니다.
-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 통제하기 힘듭니다.
-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 되면 마음이 불안해져요.
- 절 너무 힘들게 한다는 사실이 속상합니다.
- 아이 낳아 키워오는 동안 즐거운 마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 시누이 아이와 제 아이가 비교되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 시부모님이 저더러 아이를 망가뜨린대요.
- 멀리 도망가고 싶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은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며 가지는 마음과 같습니다. 잘난 자식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아이 키우는 게 원래 힘들어요.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자식 키우는 겁니다. 잘 키워보겠다고 애써 키워도 나중에 지가 알아서 큰 줄 알아요. 부모님 은혜? 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 몰라요. 지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크는 것도 지가 잘나서 큰 줄 아는 녀석이 고마움을 알긴요. 지도 나중에 나이 들어 부모 되면 그때나 지 부모 심정을 알아줄까, 적어도 자라는 동안에는 몰라요. 세상 모든 아이들은 지들 키울 때 부모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짐작도 못합니다. 아예 짐작할려고도 안 해요. 매년 어버이날이면 학교에서 아이가 색종이로 카네이션 접어 편지랑 써서 주지요? 그 내용엔 어김없이 "저를 낳아 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들어가고요. 그거 믿지 마세요. 그냥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쓰라고 하니 쓰는 겁니다. 아이가 안 받아들이면 끝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 은혜를 그렇게 잘 알고 편지까지 쓰는 녀석들이 편지 주고 돌아서자마자 말 안 듣고 떼쓰기 시작하잖아요.
왜 아이들은 부모님 은혜를 그렇게도 모르는 걸까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에는 머릿속이 엄청 복잡하고 정신없거든요.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의 머릿속과 만물의 영장인 인간 아이의 머릿속은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어릴 땐 부모를 인정사정 안 봐줍니다. 지 하고 싶은 대로 하지요.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올 때도 보세요. 서로 자기 먼저 달라고 입 쩍 벌리고 짹짹거리지 엄마 먼저 드세요, 절대 안 합니다. 자기 크는데 바빠 지들 자신 외에 다른 걸 생각해 줄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컸을 걸요? 어른의 삶이 천천히 산책하는 속도라면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는 백 미터 달리기와 같습니다. 뭘 생각할 여유라는 게 원래 없는 시기예요. 아이들은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합니다. 그렇게 성장기를 보내고 어른의 세계에 가서야 철이 들어요.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 왔습니다. 그러니 아이 키우는 동안은 그냥 적당히 먹이고 입히며 키우셔도 돼요. 뭔가를 가르치더라도 엄마가 지치면서까지 할 필요도 없어요. 해봤자 아이가 죽어라 싫어하는데 효과가 나겠습니까? 소용없어요. 시키는 엄마만 상처받아요. 공부 안 시키면 아이가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염려 마세요. 아이는 다 될 대로 되니까요. 우리도 그렇게 컸잖아요. 그러면 너무 무책임한 엄마 아니겠냐고 하실 수도 있겠네요. 네, 하지만 님은 좀 그러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엄마 이전에 사람인 님도 살아야 하니까요. 아이를 내버려 두면 그 녀석이 커서 사람 구실 못 할까 봐 걱정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자라온 걸 생각해 보세요. 님의 부모님이 철저하게 계획하고 키워서 지금의 님이 되었나요? 안 그럴 겁니다. 님의 부모님도 님을 열심히 키우셨겠지만, 님은 성장하는 동안 부모님 뜻대로만 성장하시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님이 스스로 결정한 거지요. 그때 님이 스스로 결정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님의 본성, 즉 님이 타고난 성격이 작용했을 겁니다. 님의 아이도 타고난 성격이 있을 겁니다. 그게 성장을 이끌 겁니다.
잠시 제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저는 침착한 편이고 계획적인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근데 제 딸아이는 즉흥적인 걸 좋아합니다. 저 와는 딴 판인 아이입니다. 게다가 흥이 넘쳐요. 제 입장에서 딸아이의 성격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제가 침착하니까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즉흥적인 아이는 정리가 잘 안 되지요. 흥이 많으니 매사를 너무 낙천적으로 받아들이고요. 물론 마무리도 잘 안 되고요. 지 방 정리도 안 하고 해야 할 일도 자꾸 미루면서 나중에 하겠다고 장담하는 아이(그러면서 안 하고 넘어가고). 제 성격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매사 잔소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저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었습니다. 근데 제 딸아이 성격의 장점도 있어요. 즉흥적이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있는 걸 생각해 내지요. 흥이 많으니 늘 즐겁고 밝게 웃습니다. 그러니 친구들도 많지요. 성격이 밝으니 어른들도 좋아하고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니 스트레스도 잘 안 받아요.
이렇게 좋은 성격을 지니고 태어난 제 딸아이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저뿐인 거지요. 행복하게 잘 자라는 아이를 굳이 제가 힘들게 만들잖아요.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요. 제 딸아이는 무슨 죄겠습니까?
제 딸아이에게 저는 왜 그런 나쁜 부모가 되려고 할까요? 그건 제 성격 때문입니다. 저는 침착한 사람, 즉 즉흥적이지 못한(임기응변을 잘 못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매사 충분히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낍니다. 덕분에 늘 준비하며 살지요. 그래서 실수도 적은 편이고요. 뭘 하나 해도 완벽하게 하려고 애씁니다. 손이 덜 가는 아이지요. 제 어머니가 지금도 저더러 '순해서 힘 안 들이고 키웠다'고 하시니까요. 얼핏 보면 제 성격이 괜찮은 성격인 것처럼 보이실 겁니다. 겉으로는요. 실제 초등학교 부모들 중에는 자기 아이도 이런 아이가 되길 바라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키우기가 편하니까요. 부모의 이기심인 거지요. 그래서 키우기 쉬운 아이를 선호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들이 편하게 키울 아이만 낳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낳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냥 어떤 아이라도 건강하게 태어나 주기만 하면 무조건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결심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 자기와 좀 다르다 싶으니까 아이를 구속하고 길들이려고 하는 겁니다. 초심이 바뀐 거지요. 태어난 아이는 무슨 죄입니까?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태어나 보니 부모는 자기를 마음에 안 들어하고 괴롭히잖아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장점만큼 단점도 고르게 지니게 마련이지요. 저나 제 딸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제가 어른이고 아이의 생존을 보장하는 갑의 입장이다 보니 제 마음대로 아이를 조종하고 싶은 겁니다. 제 아이가 부족한 아이여서가 아니라 제 욕심이 딸아이의 현재 모습을 마음에 안 들어하니까요. 제 관점으로 딸아이를 보면 딸아이가 어떻게 보일까요? 계획 없이 되는대로 사는 모습이 위태롭고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하겠지요? 미리미리 준비해라. 서두르지 말고 신중해라.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진지하게 살아라... 근데 아이 입장에선 저의 이런 말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뭣 좀 하려고 하면 우선 생각부터 하라고 하지, 흥을 좀 내 보려고 하면 제가 찬물 끼얹는 말만 골라서 하잖아요. 이렇게 성격이 다르면 서로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 사이가 이렇다면 싸우기라도 하겠지요. 부부 사이는 대등한 관계니까요. 근데 부모 자식 사이가 이러면 답이 없어요. 자식이 약자니까 무조건 부모 마음대로 휘두르잖아요. 결국 아이가 상처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제 딸아이는 중학교 때 저에게 선언을 하더라고요.
"난 나 대로 살겠다. 부모는 더 이상 나를 바꾸려 하지 마라. 계속 이러면... 더는 말을 안 듣겠다."
아이의 말을 풀면 이런 거였을 겁니다.
- 나는 부모와 다른 그냥 '나'예요. 제발 부모 잣대로 바꾸려 하지 마세요.
- 내 성격 때문에 내 삶이 힘들어도 그건 내 문제잖아요. 엄마 아빠 탓 안 할 테니 자기를 조종하지 마세요.
- 나는 나 자신을 믿어요. 엄마 아빠는 왜 나를 안 믿어주냐고요!
저 같은 성격은 잘 하려는 욕심 강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집요하게 뭔가를 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경을 많이 써야겠지요? 늘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왜 이런 인간이 되었을까요? 어떤 심리학자(프로이트)에 따르면 제가 어릴 때(1~3세, 항문기) 대소변을 강박적으로 가린 경험이 있거나 엄격한 (무서운) 분위기의 양육환경을 만났을 거래요. 아직 자의식이 생기기 전인 어린 시절에 너무 엄격한 통제를 받은 거지요. 그래서 뭐든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거래요. 강박적인 사람은 본질적으로 뭘 해도 완벽하게 하지요. 언뜻 보면 믿음직하고 좋은 성격 같아요. 하지만 이런 사람의 이면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합니다. 자기 스스로 난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에 완벽해야 인정받으니까요. 그냥 대충 살아도 될 텐데 전 그게 잘 안 됩니다. 불안해요. 그래서 계획은 엄청 하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는 건 또 몇 안 돼요. 실패가 두려운 거지요. 그 성격이 어른이 된 지금도 저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겁니다. 참 딱한 팔자지요. 제 딸아이는 저 때문에 덩달아 딱하고요. 문제는 저만 이런 인간으로 살면 되는데 제가 딸아이에게까지 그걸 요구한다는 겁니다. 근데 이를 어쩌죠? 제 아이는 저처럼 강박성 성격이 아니거든요. 저처럼 강박에 얽매여 있지도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어요. 그러니 제 말을 듣겠어요? 당연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요. 서로 힘든 겁니다. 저는 제가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딸로 만들려고 하고 제 아이는 흥과 감성을 유지하려고 하니까요. 딸아이는 저와 같은 영화를 봐도 풍부한 감성으로 그 영화를 받아들입니다. 당연히 더 재미있게 즐기지요. 친구와 놀 때에도 더 재미있는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어딜 가도 분위기를 주도하고 주인공이 되어 즐깁니다.
제 아이들이 어릴 때 여행을 종종 가곤 했는데요. 저는 제 성격대로(강박성 성격)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보고 뭘 먹고 어디서 잘 지를 계획을 하는 거지요.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요. 입을 옷, 먹을 것, 지도, 여행 책자... 빈틈이 없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지요. 근데 여행이라는 게 변수가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계획이 틀어지게 마련이고요. 근데 그러면 저는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여행을 멈추고 또 다른 계획을 세우지요. 그 모습이 아이는 이해가 안 되겠지요. 그냥 아무렇게나 여행하면 되는데(사실 여행의 본질이 그렇잖아요) 제가 자꾸 뭘 딱 맞게 끼워 맞추려 하는 모습이 얼마나 이상해 보였겠어요? 그땐 저도 제가 문제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근데 아이들이 크니까 저를 그렇게 진단해 주더군요.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전 여행 갈 때 항상 아이 스스로 자기 짐을 챙기게 했거든요. 제 아이는 즉흥적인 아이라 준비가 부실하더라고요. 뭐가 빠져도 항상 빠져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요. 물놀이를 하러 가는 아이가 여벌 옷을 빠뜨리기도 하고 산에 가면서 운동화 대신 샌들을 신고 가더라고요. 아유, 속 터지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를 나무라면서 다시 챙기라고 강요를 했습니다. 그게 자식을 바르게 교육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그런 여행을 어떤 아이가 좋아하겠어요. 결국 아이가 중학생이 될 무렵, 더 이상 저와 여행을 안 가겠다고 선언하더라고요. 그제야 저는 제가 얼마나 아이를 괴롭혔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이라기보다 협정이었지요.
-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의 삶을 비난하지 않기
-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거나 조종하지 않기
- 어떤 일이 있어도 각자 자신의 생각이 있음을 인정하고 인정해 주기
'어떤 일이 있어도'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있죠? 제 딸아이가 이 문장을 꼭 넣어야 한다더라고요. 왜일까요? 제가 약속을 너무 자주 깼거든요. 막상 아이와 약속을 해 놓고 제 성에 안 차면 또 깨곤 했습니다. 제 성격이 그러니까요. 이런 우여곡절이 있는 약속은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를 악물고 지키는 거지요. 그 사이에 아이도 컸고요. 하지만 저로선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를 제가 더 이끌어 줘야 하지 않나? 하는 불안이 여전했거든요. 근데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요. 별 수 없지요. 근데 막상 약속을 하고 나니 저도 좀 후련해지는 것도 조금은 있대요? 어떤 의무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 왜 있잖아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저를 원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제 아인데. 제 고집대로 키우다가는 아이와 제 관계가 더 나빠질 거고 그러면 앞으로 제 아이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잖아요. 더 심해지면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저는 딸아이를 더 원망하고 비난하겠지요. 그러다간 내 사랑하는 아이를 마음에서 잃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약속을 하고 난 뒤에는 아이와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저로선 다행이었지요.
저 같은 성격은 자기가 자기를 괴롭힙니다. 뭘 해도 잘 해야 직성이 풀리지요. 이런 사람은 타인(특히 자기 자식들에게)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제 생각만 옳으니 이 중요한 걸 자식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은 거지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근데 그러면 안 됩니다. 저만 옳다고 생각하는 건 제 생각일 뿐, 자식 입장에서는 소통불가 꼰대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그냥 저대로만 살아야만 합니다. 자식까지 강요해선 안 돼요. 자식은 자식의 성격대로 살아야 해요. 눈치채셨지요? 님이 아이에 대해 지닌 태도가 저랑 아주 비슷한 걸 말입니다. 님도 아이를 님이 원하는 아이로 바꾸려고 너무 애를 쓰고 계세요. 님이 힘들어하는 이면엔 님의 성격과 아이의 성격이 너무 다른 게 큰 축입니다.
님은 어쩌다 그렇게 아이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되었을까요? 저는 또 어쩌다 제 아이의 즉흥성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과거로 돌아가 성장 배경을 들여다보면 답이 나오겠지만, 지금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거든요. 결국 우린 앞으로도 이런 부모로 살아갈 테니까요. 다만 우리 아이는, 우리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서 태어난 우리 아이는 상처받지 않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세상의 부모 자식이 불화하며 사는 거겠지요. 그러니 마음을 더 굳게 먹읍시다.
말씀하신 것처럼 운이 좋게 부모-자식 성격이 비슷한 경우는 그럼 아이를 잘 보다 쉽게 키울까요? 아,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는 자기 아이를 끝없이 재촉합니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거든요. 결국 아이 입장에서는 성격이 엄마와 비슷하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자식이면 다 그래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요. 그 이유로 우리나라의 교육경쟁 열풍을 꼽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참 이상해요. 자식을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요. 그러면서 그 책임은 엄마에게 돌려요. 근데 정작 의사결정 주도권은 아빠에게 있지요? 이해가 안 가는 상황입니다. 아이에게 영향력을 끼치려면 가정에서도 엄마의 영향력 있음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해요. 그게 권위입니다. 근데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살림이나 하고 아이 챙기는 일에 한정하잖아요. 님의 아이가 볼 때 엄마는 지금 절대자가 아닙니다. 떼쓰고 말 안 들어도 되는 상대인 거지요. 엄마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더구나 영향력이 강한 아빠는 직장에 매여 아이와 시간을 보낼 틈이 없군요.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힘들 수밖에 없어요. 설상가상으로 님의 시부모님은 며느리의 교육을 불신하고 탓하시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신사임당이나 맹자 어머니가 와도 방법이 없어요.
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제가 손빨래하시는 이유를 물었지요? 아이가 하도 유난스럽게 놀아서 옷이 늘 더러워져서 손빨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답하셨어요. 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그건 옳은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그게 걱정스러워요. 왜냐하면, 아이 옷을 손빨래한다고 해서 아이 옷이 덜 더러워지는 건 아니거든요. 엄마가 손빨래하는 본다고 해서 아이가 옷을 덜 더럽힐까요? 지금까지 상황으로 짐작 건데 아이는 전과같이 놀 겁니다. 그러면 님은 계속 손빨래를 하시겠군요. 그런데 손빨래를 계속하시면 님이 힘들잖아요. 이런 생각도 드시겠네요.
'나는 아이를 위해 손빨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아이는 왜 계속 옷을 더럽히며 놀까?'
이러면 상황이 더 나빠지겠지요? 엄마 노릇이 힘들게 느껴지고 아이는 밉고요. 근데 혹시 손빨래를 하시는 이유가 님 스스로에 대한 자학은 아닙니까? 내가 뭔가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것 같다고 느낀 나머지 자신에게 벌을 주고 계신 건 아닐까요? 그동안 손빨래 충분히 하셨으니 이제는 아이 옷 일일이 손으로 빨지 마세요. 덜 깨끗해져도 좋으니 세탁기에 던져 넣으세요. 세탁기로 도저히 안 되는 빨래라면 버리세요. 그리고 싼 옷으로 사 입히세요. 그 정도 형편 되시잖아요. 그런다고 나쁜 엄마가 되는 거 아닙니다.
반대로 손빨래를 계속한다고 해서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손빨래와 상관없이 아이는 아이대로 크게 되어 있어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엄마가 힘든 건 엄마가 그런 쪽으로 의도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오신 측면이 있어요. 아이 키우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우울해하시는 겁니다. 근데 애 키우는 게 원래 그래요. 원래 힘들고 지루하고 지겨워요. 다들 그렇게 부모가 됩니다. 님의 아이가 좀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 애들이 섞여 학교에도 오고 자라서 사회를 구성합니다. 물론 사회도 잘 돌아가요. 아이 담임 선생님도 아이에게 별문제가 안 보인다고 하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엄마만 안심하시면 되겠네요. 선생님에게 떼쓰는 건 1학년이면 대부분 다 그래요. 1학년이라 봐야 겨우 만 여섯 살 지났잖아요. 아직 아기네요. 괜찮아요. 앞으로는 조금 덜 좋은 엄마가 되셔도 돼요. 아니, 조금 나쁜 엄마여도 괜찮아요.
님을 제외한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은 엄청 잘 키우는 것처럼 보이지요? 깔끔한 옷을 입은 아이가 엄마 말도 잘 듣고 학교에서는 공부까지 잘 하는 걸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아이들도 각자 가정에서는 엄마와 수없이 야단맞고 때로는 드러눕고 생떼도 부립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되어갑니다. 자식 키우는 일에 관한 한, 모든 부모들은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생 자식에게 미안해해요. 아무리 아이를 잘 키워도 그건 마찬가집니다. 원래 부모 자식 관계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아이 키우다 힘들다 느껴지시면 그 자리에서 일단 한 발 떨어지세요. 그 시간에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차도 한 잔 드시고 취미 활동도 하세요. 그러면서 힘든 육아에 지친 자신에게 상을 주세요. 아이의 부족한 면을 확대경을 들고 하루 종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괴로워하지 마시고 적당한 거리에서 보세요. 부족한 것 같기만 한 아이가 그래도 하루하루 자라는 게 보이고 대견해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