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26
F.R. David의 words가 집안에 가득 울렸어. 춤추기에 적당히 들썩이는 리듬이 우리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 같았어. 스피커도 내 허리 높이까지 올라올 만큼 큼직했지. 목욕탕의 팔뚝만 한 라디오로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음질이었어. 와, 소리 좋다! 음악 들을만한데요? 근데 아무 답이 없었어. 그녀가 소파에 기대 잠이 든 거야. 노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음악을 꺼야 했어. 괜찮아. 노래는 나중에 들으면 되지, 뭐. 그녀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들어가서 자요,라고 말했지만 반응이 없었어. 방문을 연 다음 그녀의 겨드랑이를 부축해 일으켰어. 물컹한 느낌과 함께 화장품 냄새가 났어. 꿀을 달이면 이런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누이는데 그녀가 뭐라고 웅얼거렸어. 물을 달란 말인가? 물을 들고 가니 이미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린 채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어. 그녀 방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어. 거실에 혼자 남으니 비로소 그녀 집이 눈에 들어왔어. 가족사진, 전축, 식탁 위의 과일 바구니, 냉장고, 가스레인지... 우리 집과 꽤 다른 살림이었어. 잘 사는구나. 인희씨는 좋겠네. 나도 불을 끄고 소파에 누웠어. 낯선 집이라서 그런가, 쉽게 잠이 오지 않았어. 눈을 감았지만 잠은 안 오고 그녀의 얼굴, 특히 방금 맡았던 냄새와 입술이 떠올랐어. 키스할 때 느낌이 어땠더라? 방금 전 일인데도 생각날 듯 말 듯 몽롱했어. 우리가 키스를 하기는 했나, 꿈인가, 현실인가. 그녀가 저 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데. 가서 다시 한번 해 볼까. 그녀가 알면 싫어할지도 몰라. 오락가락하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쯤이었나? 그녀 방문이 왈칵 열리더니 그녀가 화장실로 쏟아지듯 뛰어갔어. 이어서 토하는 소리가 났지. 술을 많이 마시더니 탈이 났나 보다. 급히 달려가 등을 두드려 주었어. 한참을 토하고 그녀는 다시 잠이 들고 난 세수를 했어. 엄마에게 돈을 얻어다 경양식집에 갖다 주려면 엄마 출근 전에 집에 가야 하거든. 그런데 막상 그녀 집을 나오려고 보니 걱정이 되는 거야. 토했는데 빈 속으로 출근해도 되나? 냉장고에 보니 그녀 어머니가 준비해 놓으신 음식이 있었어. 그녀가 아침에 먹으면 좋을만한 걸 몇 개 꺼내고 찌개를 데워 식탁에 올려놓았어. 그리고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요, 아침 꼭 드시고 출근 잘하라는 메모를 써 놓고 나왔어. 거리엔 새벽 기운이 돌고 있었어.
집에 오니 동생들은 아직 자고 어머니가 출근 준비를 하고 계셨어.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엄마에게 만 원만 달라고 했어.
“쯧쯧. 돈 번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쓰는 버릇을 들이냐? 만 원? 목욕탕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돈 쓸 일이 뭐 있어.”
“원래는 친구 한 명에게 쓰려고 그랬는데... 갑자기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친구들 밥은 지들이 돈 내고 먹으면 되지, 니가 돈을 왜 내? 허이구, 니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여. 돈 벌어 남들 입에 다 처넣어주면 뭐가 남디? 어리다, 어려...”
“엄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사주고 싶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들이야...”
“허참, 좋기나 하겠다. 그런 것들이 다 니 돈 빼 처먹을라고 그 지랄하는 거야. 지들은 돈이 없을까 봐? 서울엔 너 같은 애 우려먹는 것들 천지야. 그런 애들이 뭐 좋다고 쫓아다녀. 너 정신 바짝 차려.”
엄마,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 그 여자... 좋아해,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할 수 없었어. 돈에 관한 한, 엄마는 완고함을 지니고 있었어. 남에게 돈을 쓰면 내가 굶어 죽는다는 극단. 누적된 가난의 경험 때문일 거야. 엄마가 날 이해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괜히 와서 걱정만 시킨 꼴이었지. 목욕탕 가 봐야 한다고 말하고 방에서 나와 신을 신는데 까만 그을음이 낀 석유곤로가 눈에 들어왔어. 쉬는 날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닦곤 했는데 그녀 만나느라 안 온 사이에 더 까매졌네. 어쩌면 나와 엄마의 관계는 석유곤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엄마와 멀어지면 우리 살림은 석유곤로처럼 검댕이 많아지겠지. 아직은 엄마가 저걸 닦을 여유가 없는데. 그때까지는 내가 다른 것에 정신 팔지 말고 엄마에게 신경 써야 하는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만원? 그 돈이면 쌀이 두 말 반인데. 잘 알지도 못한 그녀 친구들에게 함박스테이크? 어리다, 어려. 엄마의 한탄이 보이지 않는 거니.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수세미를 꺼내 수돗가에서 검댕을 닦았어. 아주 박박. 손이 안 보이도록. 간다고 나간 내가 부엌에서 덜그럭거리자 어머니가 방문을 열었어.
“아이고, 우리 아들 착하네. 내가 매일 새벽기도 가서 하나님, 우리 가정 꼭 살려주세요, 애들 잘 크게 꼭 붙들어주시고 우리 주현이는 담대하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있어. 너도 아침마다 기도해. 그럼 예수님이 굳세게 붙잡아 주실 거야. 그리고 니 돈 빼먹는 그런 친구는 딱 끊어, 알았지?”
곤로 검댕을 닦아서 조립해놓고 지하 방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뛰었어. 어머니께 못 얻었으니 때밀이 형에게 가불을 부탁해야 해. 그러려면 미리 목욕탕에 가 청소라도 하는 척해야겠지. 정류장 옆 공중전화로 그녀 집에 전화를 했어. 지금쯤 일어나야 내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나갈 텐데. 그런데 신호만 갈 뿐 전화를 안 받네? 몸이 많이 아픈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걱정이 됐어. 근데 내가 지금 누구 걱정을 하는 거지? 엄마야, 그녀야?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내가 엄마에게 이래도 되나? 그런데 엄마 얼굴보다 자꾸 그녀 얼굴이 더 떠올랐어. 마음이 불편했어. 엄마는 돈 때문에 저렇게 마음을 끓이시는데 난 여자 생각이나 하고, 아주 자알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끝없이 샘솟는 그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 웃을 때 살짝 접히는 오른쪽 보조개. 말끝을 살짝 올리면서 웃음이 배어있는 말투는 귀엽기도 하고 유혹적이기도 하지. 그녀가 나를 언급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애정 어린 낱말들. 그리고 어제의 키스, 그녀 집의 유복한 살림살이들. 얼마를 주면 그런 집을 살 수 있을까. 한 달에 얼마를 벌면 그 살림을 다 장만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집에 살게 될 날이 오기는 할까. 특히 눈에 들어온 건 그녀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이었어. 환하게 웃는 두 딸을 양 옆에 세우고 다정히 붙어 앉은 중년의 부부. 엄마는 인자한 표정, 아버지는 당당한 표정이었어. 자신의 가정에 누구든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겠다는 든든한 결의. 우리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저런 표정을 지었겠지. 그러면 우리 엄마도 저렇게 인자한 표정으로 살고 있었을까. 우리 엄마에게도 인자하던 때가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없었어. 내가 여덟 살 되던 그 해에, 그나마 있던 논밭을 팔아 병마와 싸우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는 인자함도 묻어버렸을 거야. 대신 남은 빚과 강퍅함을 얻었겠지. 만약 아버지가 계셨다면 엄마는 내게 만 원 아니라 이만 원이라도 선뜻 쥐어줬을 텐데. 내가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목욕탕에 갈 필요도 없었을 거야.
엄마가 새벽기도 가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대신 차라리 만 원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은 그게 더 절실한데. 노동에 지쳐 퉁퉁 부은 몸을 이끌고 새벽잠을 밀쳐내며 꾸역꾸역 교회까지 걸어 가 마른 눈물을 쏟으며 기도까지 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차라리...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더 자면 좋겠단 말야. 엄마 삶이 죽을 지경인데 새벽기도를 뭐 하러 해. 꼭 그래야 하나님이 들어주신대? 그렇게 고생을 해야 들어두는 기도라면 차라리 내 기도라도 빼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 기도 하는 시간이라도 줄여서 한 숨이라도 더 자게. 그러고나서도 시간이 조금이라도 난다면 나에게 단 일 분이라도 전화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우리 주현이 밥은 먹었니, 때밀이 할 때 팔은 안 아프니, 때밀이 형이 오늘은 안 때렸니. 오늘도 울었니... 우리 주현이한테도 이쁜 여자 친구가 생기면 좋겠네... 왜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기도를 하느라 고생을 하는데? 그 시간에 더 자면 붓기도 빠지고 좋겠는데. 누가 나 위해 기도하래? 엄마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기도가 뭔 줄이나 알까. 속상한 마음에 짜증이 확 났어. 버스에서 내리면서 침을 칵 뱉었어. 마음이 부대껴 울고 싶은데 어쩌지 못해 오히려 화가 날 때 하는 방법, 침 뱉기. 그런데 그 날은 침을 뱉어도 마음이 안 풀렸어. 답답했어. 그냥. 하늘은 눈부시게 높고 파란데. 내 인생이 더러워 보였어.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어. 저 깨끗한 하늘을 담배연기로 희뿌옇게 문질러 버리고 싶었어. 마음이 좀 가라앉았어. 사람들은 이래서 담배를 피나 봐. 그런데 담배에 의해 솟았던 분노가 또 없어진다는 건 뭐지? 그동안엔 그럼 담배가 없어서 화가 났던 거야? 그깟 담배가 뭔데. 내가 담배에게 조종당한 거였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 아까 집에서와는 다른 이유로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어. 난 담배를 왜 폈지? 장깨를 따라한 게 시작이었는데. 멋있어 보이려고, 상대에게 겁을 주려는 목적 말고는 별 필요도 없는 걸 꼬박꼬박 한 갑에 백 원씩이나 주고 샀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어. 그동안 산 담뱃값만 모았어도 엄마에게 돈을 얻으러 갈 필요도 없었겠네. 엄마가 정신 차리라고 말한 게 혹시 담배 피우지 말라는 건 아니었을까. 죄송해요, 엄마... 남은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렸어.
목욕탕에 오니 이미 문이 열려 있었어. 벌써 형이 와 있나? 싶어 탈의실 미닫이문을 열려고 하는데 안에서 형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어.
“야, 씨발. 아니라니까! 아니라는데 이 미친년이 진짜!”
누구한테 욕하는 걸까? 순간 여탕 때밀이 누나가 떠올랐어. 형은 요즘도 그녀와 가끔 탈의실 탁자에서 술을 마시고 정사를 나누곤 하니까. 그런데, 미친년이라고? 둘이 싸운 거야?
“그런데 왜 요즘 안 들어와? 여탕 년이랑 바람피우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구? 내가 오늘 그냥 갈 줄 알아?”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였어. 앙칼지다. 형 못지않은 걸.
“야, 까놓고 말해서 뱃속 애가 내 새낀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 주접떨지 마. 미친년아.”
“나쁜 새끼. 내가 오빠한테 말해서 너 신고해 버릴 거야. 혼인빙자로. 개새꺄.”
“이런 시발년이 어디서 애를 배 와서 나한테 지랄이야. 왜? 니 오빠새끼가 또 돈 빼 오라 그러디? 내가 니들 통빡 모를 줄 알어?”
감히 문을 열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왔어. 형에게 가불을 부탁하는 건 안 될 것 같았어. 오전 중에 갚는다고 했는데 어쩌지. 할 수 없이 길 건너 중국집으로 갔어. 장깨는 배달 나가고 없다길래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목욕탕 창을 열고 담배를 피우던 형이 날 불렀어. 허겁지겁 올라와 보니 형과 다투던 여자는 탁자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어. 형이 나를 낚아채듯 탈의실 밖으로 끌고 나가 속삭이듯 물었어.
“내 통장에 얼마 있냐?”
“백오십이만오천오백 원 있습니다.”
“너 지금 은행 튀어 가서 돈 찾아와. 삼십만 원, 아니, 이십만 원. 아, 저 시발년, 진짜.”
말하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형이 창 밖으로 침을 찍 뱉었어. 은행? 이때다 싶었어. 내가 잘 부탁하면 은행 가는 김에 만원 더 찾아서 가불 해 줄지 모르잖아. 난 최대한 비굴한 웃음으로 불쌍한 척하며 부탁해 봤어.
“만 원? 씨애키가 미쳤나? 이게 어디서... 가불? 재수 없게.”
‘씨애키’. 형이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섞어 욕을 할 땐 곧 한 대 칠 수도 있다는 의미야. 난 아무 말 못 하고 목욕탕을 나왔어. 명절 다음 날 오전이어서 그런지 은행은 손님 없이 한산했어. 그녀의 창구를 봤어. 비어 있었어. 너무 속이 아파서 결근했나? 혹시 나 나오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다른 창구에서 돈을 찾아 나오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가 옆구리를 쿡 찔렀어. 그녀였어. 그런데 그녀 얼굴이 멀쩡해. 오늘 새벽에 토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없어. 반갑고 다행스러웠어. 은행이 한가해서 주전부리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이래.
“어제 술 드신 분 맞아요? 인희씨, 변신이 완벽하네? 하나도 안 아픈 사람 같아요!”
“쉿, 말조심! 생사람 잡네. 누가 술 먹었다 그래요? 근데 새벽에 왜 도망갔어요? 진짜 잡아먹을까 봐 그랬어요? 숙녀를 두고 가다니. 주현씨는 도망이 특기야?”
“아, 제가 집에 좀... 근데 아침은 드시고 나오셨어요?”
“아뇨? 나 원래 아침 안 먹어요. 바로 출근했어요. 근데 왜요?”
“헉. 제가 식탁에 밥 차려놨는데. 큰일 났다. 거기에 메모까지 써 놨거든요.”
"이따 가서 먹을게요. 아니다. 주현씨 끝나면 같이 가서 먹어요. 엄마 아빠 늦게나 오신대요."
"인희씨, 몸도 안 좋으실 텐데 일찍 가서 쉬시는 게 어때요?"
"왜요, 주현씬 나랑 저녁 먹기 싫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인희씨 어제 술도... 새벽에 엄청 토하시던데."
"아니, 내가 괜찮다는데... 주현씨 참 이상해? 왜 내 마음을 주현씨가 넘겨짚어요? 그냥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아, 그게... 전... 인희씨가 힘들까 봐..."
"됐어요. 잘 가요."
호의를 거절당해 속상했나? 그녀는 서둘러 은행으로 들어갔어. 아, 난 왜 물어보지도 않고 남의 마음을 넘겨짚을까. 모자라다. 한참 모자라. 내 딴엔 그녀를 걱정해서 한 일이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잖아. 이건 애정도 아니고 배려도 아닐 거야. 그냥 주책이고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거지. 자책하면서 목욕탕에 돌아와 형에게 돈을 건넸어. 형은 그 돈을 탈의실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툭 던졌어.
“존 말할 때 애 지워라. 내 새끼면 지우고 남의 새끼면 그 새끼한테 가, 재수 없는 년아.”
여자는 많이 울었는지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은 벌갰어.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재빨리 나와서 다시 장깨를 찾아갔어. 남은 희망은 그밖에 없었어. 나와 맞닥뜨리자 반가워하던 장깨는 내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숨을 여러번 쉬더니 점점 울상으로 바뀌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어.
“만 원? 햐, 뭘 쳐드셨길래 만 원? 답 없는 새꺄. 만 원? 내가 니네 엄마라도 안 주겄다, 병신아.”
“사실은 만 오천 원이야... 오천 원은 나한테 있으니까... 만 원만 빌려주라...”
“하...! 만 오천 원을 한 큐에 드셨쎄요? 지랄하네, 근데 넌 왜 오므라이스를 시켰는데? 너도 함박스테이크 처먹지, 병신아.”
“나라도 어떻게 돈을 좀 아껴 보려고...”
“새꺄, 돈은 너보다 은행 그 년이 더 잘 벌잖아. 근데 니가 왜 내고 지랄이세요?”
“야, 말 조심해라. 이게 어디서... 나야 처음 데이트하는 거니까... 야, 내가 남잔데 어떻게 여자에게 돈을 내라 그러냐...”
“이 새끼, 진짜 답 없네. 니가 싼 거 먹으면 은행 아가씨가 우리 주현이 참 잘했어요, 그러디?”
“아니...”
“거 봐, 병신아. 근데 니가 왜 알아서 찌그러지냐고. 그랬으면서 지금은 왜 징징대냐고, 새꺄. 차라리 넌 더 비싸 걸 시키든지 최소한 함박스테이크는 시켜야지, 남자는 깡인데 뭐? 오므라이스?”
신기해. 녀석도 나와 같은 열일곱 살이거든. 근데 통찰이 대단해. 나보다 이년 먼저 가출해서 일을 먼저 시작한 것 밖에 없는데.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틀린 말이 없어 보였어. 한 마디도 못하고 녀석의 지청구를 다 듣는 수밖에.
“어떤 병신이 남들한테는 비싼 거 사주면서 지는 싼 걸 시키냐. 아예 굶든지. 너 그럼 평생 여자 못 꼬셔, 병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