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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29. 2020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말의 불편함

호의를 베푸는 자세에 대하여

선생으로 살다 보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를 만난다. 어떤 아이는 나의 어릴 때보다 더 불우하다. 몇 해 전 그 아이도 그랬다. 아빠의 폭력으로 엄마가 나가버린 집에서 8살인 우리 반 아이와 여섯 살짜리 동생을 돌보는 사람은 막 60에 접어든 할머니였다. 넉넉잖은 형편이었지만 할머니 명의의 텃밭이 있어서 정부 지원 대상이 안 된 가정이었다. 그런 살림에 손주들을 키우시는 할머니 삶이 고되어 보였다. 형편을 알기에 나 또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학용품이나 책이 생기면 아이를 따로 선물처럼 주곤했다.


같은 취미 활동을 하며 알고 지 내던 분 중 큰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있었다. 다니는 회사에 봉사 동아리가 있는데 매년 한 가정씩 추천받아 청소, 도배, 전등 교환 등을 무상으로 해드린다고 했다. 마침 그 아이가 떠올랐다.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면서 걱정이 되었다. 다른 데서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이 오면 선뜻 받아들이는 분들도 담임이 직접 연락하면 거절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담임에게 궁핍한 집안 사정을 내보이는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그럴 것 같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부탁하는 모양새로 슬쩍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행히 수용하셨다. 며칠 후 지인을 비롯한 봉사 동아리 회원들이 가정환경 파악차 아이 집을 방문했고 전등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여서 청소 및 도배를 해드릴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제법 흘러 방학을 얼마 앞둔 즈음이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신 할머니와 잠시 대화할 기회가 있어서 청소나 도배는 잘 되셨는지 여쭈어보았다. 할머니께서 불쾌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셨다.


"아이구, 그 양반들, 오긴 여러 사람이 왔더라구유. 뭐 해 줄게 있나? 밥이나 했쥬. 근데 먹는 둥 마는둥... 청소도 대충 하고 가버리더구유."


아무리 없이 사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성의 없이 할 수 있냐고, 번지르르한 사람들에게 거지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셨단다. 도배도 성에 안 차셨다고 한다. 방과 거실을 다 해줄 줄 알았는데 거실과 작은방 하나만 해주고 가려고 하더란다. 나머지 방 하나는 언제 해줄 거냐고 물으니 안색이 안좋더란다. 정 원하시면 다음에 와서 해주마, 하나마나 한 말을 툭 던지고 가더니 여태 소식도 없단다. 말씀을 듣고 보니 괜히 연결을 해드려 오히려 아이네 가정에 폐를 끼쳤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 모임에서 만난 지인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는 할머니와 또 달랐다. 애초부터 청소와 도배만 해드리기로 했고, 그것도 안채만 해드리겠노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는데 막상 가 보니 안채는 물론 평소 창고로 쓰던 별채까지 해달라고 요구하시더란다. 인원과 재료가 충분하면 못할 것도 없었겠지만 갑작스러운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어 난감해하는데 굳이 밥을 하시더란다. 단체 도시락을 준비해 갔기 때문에 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안 들으시더란다. 할 수 없이 도시락 대신 할머니가 주신 밥을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예정보다 시간이 길어졌다. 안채 청소만 부랴부랴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할머니는 별채까지 하고 가라며 성을 내시더란다. 문제는 다음 날 예정되어 있던 도배였다.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봉사자다 보니 도배 솜씨가 매끄럽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 이런저런 타박을 하셨나본데 봉사자 중 한 명이 참다참다 볼멘 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돈 받고 해드리는 것도 아니고 없는 시간 쪼개 휴일 포기하고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니까 너무 그러지 마시라고. 잠잠하신듯 했던 할머니가 다시 폭발하신 건 준비해 간 도배지가 별채까지 하기에 부족하다는 걸 아신 때였다고 한다. 별채까지 해 달라는 할머니와 처음부터 안채만 해드리기로 했다는 의견이 불편하게 맞선 상태에서 봉사단원들은 안채 도배를 서둘러 마치고 돌아갔다. 서운했는지 할머니가 며칠 뒤 회사에 전화해 봉사단원들의 태도에 대해 항의하셨다고 한다. 봉사하다 보면 가끔 유쾌하지 않은 경우를 만나지만 이번엔 속이 상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를 봐서라도 잘 해드리고 싶었다는데 결국 좋지 않게 되어 미안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 옛날하고 달라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니까요."


자원해서 봉사를 나갔는데 더한 걸 요구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겠지. 그런데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으로 남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통 잡히지 않았다. 하긴 뭐, 살다보면 개운치 않은게 어디 한 둘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나 했는데 다시 그 느낌이 올라온 건 아이가 다음 학년에 올라가고도 두어 달 지났을 때였다. 마침 계절은 봄이었고 운동회 날이었다. 손주 운동회를 보러 오신 할머니를 만나 이런 저런 안부를 여쭙다가 그 뒤 봉사자들이 나중에 다시 와서 별채 도배를 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 잘 되셨네요? 다행입니다!"


"고마웠쥬, 뭐. 근데 뭐 신경 쓸 일도 많더라구유... 그래두 없는 형편에 어쩔 수 있나유..."


마음 고생이 있으셨나보다, 싶었다. 늘그막에 손주들을 떠맡아 키우시는 할머니의 주름살이 유난히 깊어 보였다. 다음에 봉사를 갔던 지인을 다시 만났을 때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인사를 받는 지인의 표정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봉사를 꽤 오래 했지만 민원 전화까지 받아가며 봉사를 할 줄은 몰랐다고. 그 할머니 때문에 마음이 고생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말 끝에 한탄하듯 말했다.


"하... 그 할머니 진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니까요."


그때였다. 그날의 불편함이 다시 떠오른 것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표현 때문이었다. 호의를 베푸는 쪽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가 고마워하기는 커녕 당당히 권리양 요구하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근데 이상했다. 난 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지? '호의'를 받은 쪽이 우리 반 아이여서였을 것이다.


사실 그 아이네 형편으로는 누군가의 봉사 없이 청소며 도배는 몇 년이 가도 못할 상황이었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집안 건사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니까. 할머니 입장에서는 모처럼 얻게 된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밥까지 해주시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잘 보여서 별채까지 신세지고 싶으셨을 테다. 궁핍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든다. 알량한 자존심 보다 지원 받는 것이 우선되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 호의는 고마운 것이면서 동시에 또다시 얻기 힘든 일이다. 기회가 오면 붙잡아 최대한 이익을 얻어야 한다. 필사적인 상황인 것이다.


할머니가 처음부터 봉사자들에게 충분히 고마움을 표현하셨다면 어땠을까. 말 한마디면 봉사자들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보람도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아이를 따로 챙긴 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신 적이 없다. 하지만 특별히 서운하지 않다. 그 분의 형편을 보면 감사 인사를 생각할 여유가 도무지 보이지 않기때문이다. 도움을 준 다른 아이들의 부모 중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고마워하기는 커녕, 더 한 것을 요구해서 고민스러운 적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일까?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다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습관일 텐데, 그 습관이 몸에 밸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누적된 가난과 열패감에서 체득된 우울때문일 수도 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 오면서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이 일일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미덕을 갖추기가 쉬울까. 특히 노인은 더 그럴 것 같다.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래 전, 6학년을 담임했을 때였다. 수학여행 신청을 받는데 안 가겠다는 아이가 있었다. 버스 타는 것도 싫고 엄마와 떨어져 자는 것도 싫어서라고 했다. 곧이 듣지 않았다. 6학년 아이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집안 형편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돌려 물어보니 역시나. 다들 가는데 혼자 남을 아이를 생각하니 애잔했다. 아이 모르게 내가 돈을 냈다. 보통 아이들은 이러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그 아이는 누가, 왜 자기 여행비를 대신 냈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처음엔 둘러댔지만 거짓말을 계속 할 수 없어 돈을 대신 내줬다고 말했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듯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아이가 쓴 수학여행 감상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이담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돈을 벌면 내 돈 내고 여행 갈 수 있으니까."


기대와 다른 반응이었다. 나의 호의를 고마워할 거라고,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를 돕는 것으로 보답할거라는 다짐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행비를 못내는 자신을 자책하는 걸 넘어 자신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나의 호의가 아이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했을 테니까. 아이에게 미안했다.


작은 호의를 베푸는 나는 돈 몇 만원이면 되지만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은 훨씬 복잡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 뒤로 그 아이를 도울때는 가능한 한 티 안나게 도울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 아이 집에는 요리할 어른이 없어서 늘 반찬 없는 밥을 먹고 있었다. 당시 그 학교는 급식실이 따로 없어서 교실로 밥과 반찬을 날라다 배식을 했는데 반찬이 남는 일이 잦았다. 남은 반찬 중에서 잘 상하지 않는 김이나 땅콩조림 같은 것들을 싸주곤 했다.(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학교 급식의 외부 반출은 식중독 등의 사고 예방을 위해 절대 금지되어 있다.) 한 번은 멸치볶음이 남았길래 일회용 비닐백에 담고 입구를 묶어 검은 비닐봉지에 한 번 더 넣은 뒤 아이 가방에 슬쩍 넣어주었다. 집에 가서 가위로 주둥이를 오려내고 바로 먹거라,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녀석, 부끄러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반찬봉지를 쓰레기통에 넣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났다. 어려도 철이 없어도 그렇지, 반찬 없는 맨밥 먹는 형편이라 특별히 생각해서 챙겨주었는데 버려? 엄한 표정으로 불러세웠다.


"남이 먹던 것도 아니고 깨끗하게 덜어낸 반찬을 버리다니. 네가 싫으면 동생이라도 주면 되지 왜 버려."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동생도 멸치볶음 싫어한단 말이에요.
왜 선생님 맘대로 줘요? 물어보지도 않고..."



정신이 번쩍 났다. 맞아. 누구나 좋고 싫은 게 있지. 그런데 난 무조건 많이 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일방적인 결정이다. 설령 싫어하더라도 내가 특별히 생각해서 주는 거니까 고맙게 받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를 도우면서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채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이가 반찬을 버려 내 자비심에 상처났겠지. 그래서'발끈'한 건 아니었을까. 미안하고 창피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인지 미리 물어보고, 그것도 비닐봉지가 아니라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사서 담아 주었다. 그러면서 귓속말로 덧붙였다.


"이거 동생이랑 먹으면 맛있겠지? 선생님도 싸갈거야."


아이가 순순히 집에 가져가 먹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 앞에서 버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이 덕분에 깨달았다. 호의를 베풀 때에는 받는 사람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는 걸. 그게 받는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걸.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지 않게 베풀어야 호의라는 걸.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자신의 호의를 드러내는 사람의 말투 안에는 자기가 베풂의 '주체'라는 거드름이 숨어 있다. 무엇을, 얼마나 줄 지는 내가 결정하며 받는 사람은 주는대로 받되 무조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어차피 내가 안 주면 그나마도 못 얻는 주제에 무슨 말이 많으냐?
주는 대로 받든지, 아니면 말아라!


이런 구도에서는 주는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 이런 식의 베풂은 힘자랑에 불과하다. 영주가 일없이 영지를 활보한 이유가 피지배 계층의 조아림을 즐기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그런데 이런 베풂은 상대에게 모멸감을 준다. 나라면 굶을 지언정 이런 봉사를 받고 싶지 않겠다. 적어도 '봉사'를 하려면 이런 말이 가능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실은 저희가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혹시 마음에 안드시거나 싫으면 거절하셔도 되고 원하는 걸 말씀하셔도 됩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저희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우리 정서에서 남의 도움을 받는 일은 모욕감을 참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그래서 가능한 한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받더라도 남들 모르게 받고 싶어 한다. 도움을 받더라도 작은 갚음이라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밥을 해주시지 않았을까? 도움을 주는 쪽에 있는 사람들도 봉사로 자긍심을 느끼고 싶어한다. 자긍심은 남이 알아줘야 드높아진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낸다.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베푸는 사람이니까. 능력을 드러내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받는 사람은 위축되고 소외된다. 주는 사람의 자긍심을 키우는 수단에 불과해진다. 도움 받는 사람은 초라해진다. 자립하지 못하고 남의 손길에 기대어 먹고 산다는 패배감을 느낀다. 호의를 함부로 베푸는 일은 모욕감을 선물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어디 봉사활동 뿐일까.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도 그럴 수 있다. 직원 여럿을 두고 큰 식당을 하는 지인이 가끔 내게 하는 말 중에 '내가 먹여 살리는 사람이 열명도 넘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직원에 대한 그의 시선이다. 사장인 자기 아니면 직원들이 먹고 살 수 없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고 직원들은 수혜를 입는 사람이니 마땅히 고마워해야한다는 말은 오만하다. 따지고 보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그가 돈을 버는 것이기도 하니까. 노동자와 고용주는 각자 서로가 할 수 있는 능력(노동)으로 서로의 삶을 보장해주고 제공한 노력만큼 이익을 나누는 관계가 아닌가. 결국 서로에게 호의를 베푸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양쪽은 동등하다. 그런데 왜 고용주는 자기의 호의가 더 크게 생각하는가. 자신이 챙기는 이익은 적당한데 직원에게 주는 급여는 필요 이상의 높은 금액이며 그것이야 말로 자신에 베푼 호의의 결과라는 우월의식이 있는 한, 그 식당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망할 수도 있다. 그러면 누가 더 손해인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호의가 권력의 높고 낮음에서 행해지면 안된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존재하니까.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한 영역인 교육을 담당하는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호의를 국가에 제공하고 대신 월급을 받는다. 내 월급이 국가의 호의인 셈이다. 다만 나는 국가의 호의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도왔던 아이가 열등감을 느꼈다면, 그 열등감에 대해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불공평한 인간관계다. 나의 호의를 받는 아이는 얼마든지 당당하게 받을 수 있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호의가 계속되더라도 '권리'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호의를 베푸는 건 나(시민)의 의무이며 그걸 받는 권리 또한 아이(시민)의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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