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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12. 2020

등교를 앞둔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부모님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사랑하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


선생님도 모르게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을 썼구나.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너희들에게 말이야.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을 써서 혹시 놀랐니? 선생님이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함부로 갖다 쓴 건 아닐까, 생각해 봤어. 아냐, 그건 정말 아니야. 선생님은 너희들을 사랑해. 그런데 선생님은 왜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을 막상 써 놓고 어색해할까? 아하, 알겠다. 얼굴을 못 본 채 온라인 개학으로 먼저 만나서 그래. 이런 경험은 선생님도 처음이야. 어디 선생님뿐일까? 우리나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처음일 거야.


가고 싶은 곳도 못 가고 사람을 만남을 피하는 일상이 시작된 지 석 달 겨우 지났는데 왜 선생님 생각엔 몇 년 지난 것처럼 힘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 학교에 가야 할 너희들이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부모님들도 걱정이셨을 거야. 너희를 두고 일터로 가시면서 부모님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너희들이었을 거야. 집에서 휴대폰으로, 컴퓨터로 하는 공부는 또 얼마나 힘들었겠니. 온라인 개학이 길어질수록 선생님도 생각했어. 어서 이 힘든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한 교실에서 마음껏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게 드디어 다음 주로 다가왔구나.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 이런 상태에서 등교를 하게 되어 걱정되는구나. 선생님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 보니 숨이 차오고 머리가 멍했어. 식사 시간이 되어 겨우 마스크를 벗어보니 콧잔등엔 땀이 범벅이었어. 어른인 선생님이 이 정도인데 너희는 오죽하겠니? 바이러스만 아니면 답답한 마스크를 굳이 쓸 필요가 없을 텐데...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될 그 날, 선생님은 많이 긴장할 것 같아. 너희들을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야 하거든. 당분간은 공부보다 바이러스 이야기를 더 하게 될 거야. 너희들이 그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이야기들과 같은 이야기일지도 몰라. 안 그래도 마스크 때문에 답답한 데 그런 이야기까지 들으면 울고 싶어 질지도 몰라. 미안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어. 공부는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안 그렇거든.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어. 왜 그런지는 앞으로 자주 설명하게 될 거야.


서울이나 경기도와 달리 우리 지역엔 지금 확진자가 하나도 없는데 굳이 마스크를 써야 하냐고 물어 온 친구가 있었어. 안타깝지만 달리 해 줄 말이 없어. 무조건 써야 하니까.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아서 언제, 어디로, 누구를 통해 퍼질지 알 수 없잖아. 그러니 너희들이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단다. 왜? 바이러스는 안 보이니까.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독성이야. 걸리면 죽을 수도 있대. 너희들 감기나 독감 걸려봤지? 목 아프고 코 막히고 열나고 배도 아파 학교에 못 오기도 하잖아. 하지만 감기나 독감이 덜 무서운 건 독성이 약하기 때문이잖아. 며칠 쉬면 우리의 면역력이 너끈히 이겨내지.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르대. 감염이 되면 죽을 수도 있대. 특히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더 위험하대. 어느 집안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계시게 마련이잖아. 그분들이 아무리 조심하신다고 해도 그분들의 손자 손녀가 집 밖에서 바이러스를 옮겨 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래서 위험하대.


선생님이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 현재까지 돌아가신 분들이 273명이나 된대. 작년 이맘때 같았어 봐. 아직 건강하게 사시면서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꽃구경도 하셨을 분들이잖아.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 그래서 선생님과 너희들이 잘해야 해. 우리가 방심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위험해지실 수 있으니까.


당분간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될 거야. 교실에서는 너희 책상 외에 아무것도 못 만져. 사물함? 학급문고? 연필깎이? 급수대? 신발장? 안돼. 바이러스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거든. 마스크도 꼭 쓰고 있어야 해.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양치를 못하면 충치가 생기지 않느냐고 묻는 친구가 있었어. 선생님도 잘 알아. 하지만 안돼. 이가 썩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와 우리 가족, 이웃의 목숨이 걸린 문제거든.


답답하지? 그럴 거 같아. 선생님도 편지 쓰는 내내 기운이 없는 걸. 그래도 기운 내 보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리 힘이 세도 우리 5학년 친구들에겐 얼씬 못하게 방역 규칙을 잘 지켜보자. 선생님이 많은 방법을 배워왔어. 그걸 기준으로 너희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거야. 그러면서 공부도 열심히 가르칠 거야.


100층도 넘는 건물을 짓고 첨단 스마트폰도 척척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인간이 정작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바이러스의 공격에 두려워 떨고 있다는 것.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뜻일 거야.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많은 걸 알려주고 싶어. 또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결국 다시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의 결과로 돌아오는지도 알아보고 싶어. 다행히 과학자들이 백신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지? 조금만 견디면 바이러스 걱정 없이 뛰어 놀 날이 올 거야. 어쩌면 지금부터 그때까지가 가장 힘든 시기일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함께 잘해보자.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우린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주말 건강하게 보내고 월요일에 만나자.

작가의 이전글 두고 봐. 선생님 말이 맞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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