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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May 25. 2020

두고 봐. 선생님 말이 맞을 테니.

주말 편지


아이들에게,

안녕. 다들 잘 지내지?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나는구나.

운동장 가를 따라 나란히 서 있는 은행나무에 아가 손가락처럼 돋아난 연녹색 잎이 그 사이에 짙은 녹색으로 바뀌었어.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그 시간과 함께 너희들도 부쩍 자랐겠다. 시간이 참 빠르지? 서버가 열리지 않아 텅 빈 화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겨우 화면이 열려도 소리가 안 나오거나 클릭을 해도 먹통이 되어 당황하던 때가 불과 두어 달 전이라니. 믿어지니?


막상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개학이었지만 너희들은 참 대단하더라. 불안정한 서버가 안정화되는 시간보다도 더 빨리 온라인 개학에 적응해 가던걸. 사실 선생님은 좀 놀랐어. 너희들의 적응이 빠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거든. 오히려 선생님의 컴퓨터 실력이 모자라 미안할 정도였어.


게다가 너희는 공부도 열심히 하더구나. 교실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공부와 달리 온라인 개학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잖아. 너희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충 클릭 몇 번으로 공부를 마쳤다고 해도 누가 알겠어? 그런데 너희들은 그러지 않더구나. 선생님이 올린 공부를 빼놓지 않고 열심히 한 거 알아. 그뿐 아니야. 책도 더 읽던 걸. 장하다, 우리 반. 참 듬직해.


숙제가 많은 날은 힘들 법도 한데 너희들은 투정 하나 없이 끈기 있게 하더구나.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어. 컴퓨터가 안 된다고 하거나 숙제가 너무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어떻게든 요리조리 피할 만도 한데 다들 너무 열심히 하더라. 선생님은 깨달았단다. 아, 너희들이 5학년이라는 걸. 5학년이면 주어진 책임을 피하기보다 맞서서 극복하는 나이잖아. 지금까지 너희 모두 아주 잘 자랐더라.


너희들은 공부하다가 잘 모르는 게 나오면 질문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어. 선생님은 교실에서 일일이 질문에 답하느라 바빴지만 한편 마음은 뿌듯하고 기뻤어. 그리고 안도했어. 올해 내가 담임한 아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결심했어. 선생님도 너희들을 열심히 가르쳐야겠다고. 비록 못 만난 채 석 달이나 흘렀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은 더 잘해야겠다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우리 세상을 많이 이 불편하게 만들고 모두의 관계를 끊어 놓았어. 하지만 선생님은 너희들 속에 숨어 있던 능력을 보게 되었단다. 너희 모두 어떻게든 훌륭한 어른이 되려고 애쓰고 있잖아.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런데 너희들은 아주 잘해왔어. 그게 너희들의 힘이야. 그걸 알게 되어 기쁘다.


너희들이 이겨내고 있는 지금의 어려움은 언젠가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어려움을 거뜬히 이기는 힘이 될 거야. 두고 봐. 선생님 말이 맞을 테니. 선생님처럼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의 눈엔 다 보이거든. 그동안 선생님은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왔어. 그러면서 다 봤단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지닌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어가는지를.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너희 모두 아주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는 말을 잊지 마. 사실이니까. 이게 다 너희들이 열심히 한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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