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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20. 2023

"그러다 이혼하면 어떡해요."


2학년 아이들의 어느 봄날. 막 등교한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가 벚꽃 구경을 하는데 한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다. 짝꿍이 따라오자 완강히 막아서며 말한다.

"야, 너 저리 가. 나 선생님한테 할 말 있단 말이야."

그래도 아이가 안 떨어지자 등을 떠민다. 밀리는 아이가 눈을 흘기며 돌아서고,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고,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시나?"

아이는 친구에게 잠시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바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허리를 굽혀 아이 얼굴에 귀를 바짝 댄다. 아이가 낮고 긴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큰일 났어요. 저 어쩌면 이사 갈지도 몰라요."

"이사?"

"네. 외할아버지 집에."

"아,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겠네."

"땡! 안 좋아하실 걸요."

"아, 그래?"

"(내 귀를 바짝 당기며) 아빠는 안 가고 엄마랑 저만 가거든요."

"아, 그래?"

"엄마가 아빠한테 말하는 거 들었어요. (약간 풀 죽은 목소리로) 어쩌면 저 빼고 엄마만 갈 수도 있어요."

"아, 그래?"

"네, 아빠가 엄마한테 (아빠 목소리를 흉내 내며)'갈 거면 너나 가라고!' 소리 질렀거든요."

"아이고, 아빠가 왜 그러셨나?"

"엄마가 가게에서 늦게 왔거든요. (두 손을 모아 속삭이며) 열 두 시도 넘어서 왔잖아요."

"아, 그래?"

"네, 근데 엄마 잘못은 아니에요. 손님이 너무 안 가서 그런 거니깐요."

"손님이?"

"문 닫으니까 가라 그래야 하는데 손님이 안 갔대요. 근데 그 손님이 전에도 엄청 늦게 갔단 말이에요."

"아, 그랬구나."

"그래서 아빠가 가게 때려치라 그랬죠. 그래서 엄마가 울었죠."

"아이고, 그랬어?"

"근데 어쩌면 이사 안 가도 될 수도 있어요."

"그래?"

"전에도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 외할아버지 집에 간 적 있는데 두 밤 자고 다시 왔거든요. (한숨을 내쉬며) 근데 이번엔 진짜 이사 갈 수도 있거든요."

"그래?"

"엄마가 울었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엄마한테 이사 가냐고 물어봤단 말이에요. 근데 화내면서 이따 학교 끝나면 말해준다 그러잖아요. 불길하게."

"불길해?"

"네. 전에 이사 가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아니야', 그랬거든요. 근데 이번엔 이따 말해준다 그러니깐요."

"아, 그렇겠네."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엄마가 가게를 그만하면 되는데 자꾸 하잖아요. 그러다 아빠랑 또 싸우면 진짜로 전학 갈 수도 있다구요!"

"아이고,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엄마도 그럴 사정이 있으신가?"

"가게 말고 다른 거 하면 되죠."

"그러게. 근데... 엄마도 생각이 있어서 하실 거 같은데?"

"그럼 일찍 와야죠. 그러면 아빠가 뭐라 그러지도 않겠죠."

"엄마도 일찍 오고 싶을 거 같아. 근데 가게 하시다 보면 사정이 있나 봐."

"그래도 와야죠. 손님은 다음에 오라 그러고."

"손님이 왔을 때 그냥 가라고 하고 일찍 집에 오실지, 조금 늦게 오시더라도 손님을 맞이하고 돈을 더 벌지 고민하셨을 거야. 그렇게 번 돈을 너를 위해 쓰실 생각에 기운 나셨을 것 같은데?"

"네, 그니깐요... (잠시 생각하더니) 근데 아직 사물함에 제 물건 그냥 다 있다고요. 이사 가려면 큰 가방 갖구 와서 저거 다 담아가야 되는데 저 오늘 큰 가방 안 가져왔단 말이에요."

"아, 그래?"

"전 외할아버지 집에 안 가는 게 더 좋아요."

"안 가는 게 더 좋아?"

"거긴 와이파이가 없거든요. 엄마가 핫스폿도 안 해줘요. (시무룩해지며) 그래도 엄마 따라가야 해요."

"그래?"

"엄마 혼자 가니까요. 그럼 외롭잖아요. 저라도 같이 가야죠."

"아, 그렇구나."

"아빠는 집에서 테레비도 보고 삼촌네 집에 가서 술 마실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엄마는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 방안에만 계속 있으니깐요."

"그래?"

"지난번에 그랬어요. 그래서 외할머니가 엄마더러 저 데리고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지 방에만 있냐고 뭐라 그랬죠."

"아, 그러셨어?"

"그니깐 제가 가야 한 바퀴 돌고 오죠. 안 가면 엄마가 또 방에만 있겠죠."

"아이고, 엄마는 좋겠네. 너처럼 든든한 아들이 있어서."



*







저학년 아이들은 담임에게 자기 삶을 숨기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다툰 이야기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학부모의 사생활에 관해 알게 된다. 누구네 아빠가 어떤 일로 이웃과 다투지, 누구네 엄마가 돈 때문에 시부모와 갈등 중인지. 대부분 학부모가 임에게 알리지 않는 이혼이나 재혼에 관한 것도 아이를 통해 안다. 담임에게 좋은 인상만 주고 싶어 하는 학부모 처지에서는 아이가 담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탐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색하지 않는다.

사실 아이들이 집안 사정을 굳이 담임에게 말하는 건 부모를 망신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이 남에게 흉 잡힐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집 상황이 그러하면 남의 집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혼자 감당하기 힘든 불안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이럴 때 난 아이 말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들으려 애쓰면서 아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감정을 드러내게 돕는다.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지 않고 아이가 하는 말을 따라 무채색의 추임새를 넣는다. 아이가 자기감정을 유지하면서 걱정거리를 풀어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특히 아이가 부모님을 창피해하지 않게 조심한다. 아이들이 별 일 아닌 듯 내게 말하므로 나 또한 섣부른 위로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가볍게 들으려 애쓴다. 하지만 고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게 아니어서다. 아이 부모님의 다툼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 엄마는 시내에서 주점을 한다. 엄마의 귀가 시간이 늦어 아이는 여러 학원을 돌다가 아빠가 퇴근할 무렵 귀가한다. 평소 돌봄은 아빠가 하는 것 같다. 상담 때 혼자 온 아빠는 다소 민망해하며 '아내 일이 늦게 끝나서...'라는 표현을 여러 번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아내'라는 낱말이 남을 일컫듯 마르게 느껴졌다. 그의 sns에는 꽤 좋은 카메라로 찍은 듯 보이는 아이 사진 몇 장과 낚시 장비, 자동차 사진들이 있는데 아내의 삶과 다르다고 말하는 듯했다. 엄마의 프로필 또한 디저트 카페에서 찍은 셀피 위주인 걸로 보아 아이로 연결되는 여느 부부와 달리 서로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는 엄마의 주점 운영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일부 손님으로 인한 늦은 귀가는 다툼의 원인이다. 아무리 단골이어도 마감 시간이 되면 내보내라는 것이 아빠의 요구고 경제적인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엄마 입장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아이들의 가정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물리적인 분리를 선택하는 건 아이의 불안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수업을 시작했다. 집중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 놀이 시간을 길게 주었을 때에도 아이는 평소와 달리 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멍한 표정었다. 이어지는 수업과 점심시간에도 아이는 얼굴에 활기가 느껴지지 않다가 하교 시간이 되었을 때 내게 와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전학 가면 제 사물함 물건 택배로 좀 보내주실래요?"

"택배?"

"네, 오늘 전학 가면 못 오잖아요."

"아, 오늘 기운이 없어 보이던데 전학 갈까 봐 그랬니?"

"네. 제가 학원 끝나고 집에 가면 결정이 나겠죠."

"엄마가 선생님한테 아무 말 안 하신 걸 보면 전학 안 갈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번엔 진짜 불길하다니까요."

아이가 가방을 챙겨 학원 차를 타러 나간 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영선이가 전학을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데 혹시 계획이 있으신지요?
- 아, 그게... 선생님, 영선이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학 안 가는데...
- 아, 그러시군요. 아이들은 자기 편의대로 상상을 덧붙여 이야기할 때가 있으니까요.
- 영선이가 뭐라고 했나요?
- 엄마가 가게에서 늦게 오신 일로 아빠랑 다투는 걸 들었나 봐요. 외갓집으로 가실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 그건 신랑이랑 대화하다 그냥 나온 말인데...
- 영선이가 어려서 불안했나 봅니다. '불길하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 (웃으며) 아, 그래요? 애가 런 말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암튼 별 일 아닌데... 제가 영선이 집에 오면 잘 말할게요.
- 알겠습니다. 참, 영선이랑 대화하면서 기특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엄마가 외갓집 가면 자기도 따라가서 엄마 편이 되어주겠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아이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내 주변을 오가면서도 끝내 아무 말 안 했다. 난 혹시 몰라 집에 가기 전에 아이를 잠시 불렀다.

"어제 엄마랑 전화했는데 전학 안 간다고 하시던데?"
"그니깐요. 근데 전학은 안 가도 외할아버지네 집 갈 수는 있어요."
"그래?"
"엄마가 어제 저더러 방에 들어가 자라 그러고 아빠랑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그랬어?"
"네, 아빠가 또 그러면 엄마가 저 데리고 할아버지네 집에 간다고."
"아, 그렇구나."
"(소곤거리며) 근데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문자 보내지 마세요."
"문자?"
"어제 엄마가 등짝스매싱 할 뻔했잖아요!"

 내가 안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는 데도 아이는 못 미더운 듯 신신 당부했다. 아이가 집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담임에게 한다는 걸 알면 부모는 당혹스러워한다. 그래서 아이 입단속을 시켰나 보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는 그 사실도 다 말한다. 아이 처지에서는 불안을 줄이려는 안간힘이었을 테다. 엄마 아빠 상황이 너무 걱정되는 것이다. 그 뒤로, 아이는 몇 차례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내 주변을 서성였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갔다. 내가 엄마에게 말할까 봐 조심하는 건지도 몰랐다.


계절이 지나 학년 말이 되어 눈이 날리는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체험학습 신청서를 가져왔다. 외갓집에 가서 농촌을 체험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갓집 가는구나? 좋겠네."

"네. 엄마가 가게 접었거든요. 아빠가 뭐라 그래서."

"그래?"

"네. 이모랑 전화하는 거 들었어요. 큰일 났죠. 돈 못 벌잖아요."

"아이고, 그래?"

"아빠가 돈을 홀랑 까먹었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엄청 화났죠."

"아, 그러셨구나."

"이번에 외할아버지네 가면 진짜 전학 갈 수도 있어요."

"그래?"

"네, 불길해요."

"불길해?"

"네, 엄마랑 아빠랑 말을 안 하잖아요. 그러다 이혼하면 어떡해요."

어른들이 복잡다단한 삶을 아이에게 감추는 어려서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의 유대 관계는 본인 생존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그래서 부모 관계미세하게 생기는 균열의 조짐도 본능적으로 는 것 같다.


부부가 헤어져야 할 일이면 헤어져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의 불안을 높이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불길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이의 모습이 쓸쓸한 해학으로 느껴졌다. 아이의 느낌대로 체험 학습이 끝날 무렵, 엄마는 전학하겠다고 문자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사물함 속 아이 물건을 택배로 보내드릴까요,라는 질문에 2학년도 거의 다 끝났는데 버려주세요.라고 답이 왔다. 사물함 속에 가족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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