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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May 17. 2022

24. 나는 미국에 오면 왜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나?

자유인가, 나 자신에 대한 방종인가?

막바지 겨울이 한창 인 올해 2월, 나는 미국에 입국했다. 애당초 4월 중순경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고 왔기 때문에 가지고 온 옷들은 모두 겨울 옷들이었다. 코듀로이 원피스 2개, 후드 원피스 1개, 기모 바지 2개, 넉넉한 상의 1개, 레깅스들 몇 개, 조금은 얇은 봄 원피스 2개, 긴 회색 카디건 1개 그리고 혹시 4월 들어갈 때 너무 더우면 입으려고 얇은 셔츠 원피스 1개랑 반팔 원피스 1개를 지고 왔다. 준비 한 대부분의 임부복들은 당근 마켓을 통해 이웃들에게서 구입했다. 고작 열 달 입는 데 새 걸 사기 아까웠고 자원 순환의 측면에서도 나에겐 더 좋게 느껴졌다. 다행히 내가 산 임부복들은 상태가 좋아서  지금까지 잘 입고 다니고 있다. 얇은 원피스 2개는 친정 엄마가 주셨다. 잘 입지 않는 풍성한 원피스를 주셨는데 만삭인데도 잘 맞는다. 긴 카디건은 막내 이모의 협찬품이다. 역시 새것은 아니고 이모가 잘 안 입는 걸 혹시 필요하면 입으라고 주셨다. 베이지 색 코듀로이 원피스랑 흰색 넉넉한 상의는 임부복 전문 쇼핑몰에서 새 걸로 사 왔다.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 그리고 색깔 하나 정도는 자신에게 선물로 주고 싶기도 했고, 혹시 좀 차려입어야 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합리적이고 나름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체류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상기후로 인해 봄인데도 비가 오고 으슬으슬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가지고 온 옷들은 아직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잘해주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안타까운 점들이 생겨났다. 일단 자주 입는 옷들이 후줄근해졌다. 중고였음에도 처음엔 새것 같았던 바지, 레깅스, 그리고 후드 원피스에 찬란한 보풀 꽃이 피어났다. 새 옷으로 구매한 흰색 옷은 시골생활 및 밥순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새빨간 김치 자국, 알 수 없는 여러 검은 자국들로 흉이 져버렸다. 원피스들의 상태는 괜찮은데 계속 돌려 입다 보니 내가 좀 질렸다. 한 켤레밖에 없는 흰 운동화는 비와 진흙을 너무 많이 맞아 회갈색 물이 들어버렸다. 때때로 바지와 맞춰 입을 상의들이 부족하면 남편 옷을 자주 빌려 입기도 한다. 그는 순도 100% 공대생. 옷들은 모두 어둡고, 오래되고, 낡았다. 내 옷들과 매치시켜 놓고 룩을 분류하면 얼추 그냥 ‘청소 룩’ 혹은 ‘아무거나 룩’ 정도가 되겠다. 이렇게 입고 나는 산책도 가고, 마트도 가고, 운동도 하고, 일도 보러 가는 등의 일상을 보낸다.


그래도 명색이 시댁에 온 결혼 2년 차 새댁인데 차림에 이렇게 무심해도 괜찮은가? 식구들은 개의치 않으신다. 만약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서울처럼 격식을 차린 일자리가 많고 화이트 컬러 인구가 많은 도시였으면 좀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공장이나 농장 혹은 각자 개인사업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연중 몇 달은 비가 계속 내리는 곳이니 편안하고 기능적이며 실용적인 차림들을 가장 선호한다. 옷이 아주 더럽지 않은 이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그냥 남들이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기가 좋고 편하면 그만이다.


돌아보면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옷이나 메이크업에 많은 투자를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는 선크림 외에 다른 화장품은 잘 사지 않게 되었다. 콜롬비아에서는 계절 변화가 크지 않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10벌 이내의 옷을 돌려 입으며 만족해했다(장롱이 늘 한산해서 참 좋았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초반에는 옷도 사고 화장도 하면서 다시 발그레하고 잘록한 아가씨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 역시 적당한 가격의 브랜드 옷가게를 들락거리고 면도를 하고, 이발소도 자주 가며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취향과 성격 등이 잘 맞았던 우리는 서로가 익숙해지자마자 곧 힘을 빼게 되었다. 내 눈썹은 다시 정직한 팔자가 되었고, 그의 턱은 다시 까칠한 턱수염으로 덮였다. 이에 더해 다니는 회사 분위기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고, 이 마저도 주 2일 출근하는 데다가 때마침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많아지는 상황을 겪으니, 나의 패션 센스도 덩달아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충실히 따르게 되더라. 그러니까 말인즉슨, 한국에서도 옷차림에 대한 내 기본자세는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서 피곤했다. 은근슬쩍 옷매무새를 누군가와 부단히 비교했고, 상황에 지나치게 혹은 모자라게 입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검열했다. 한국 여자들 특유의 촉촉하고 광채 나는 피부에 세련된 메이크업, 단정하고 에지 있는 패션 센스 속에서 때에 따라 위축되기도 했다. 작은 땅에 붙어살다 보니, 보고 싶지 않아도 상대방이 너무 잘 보여 자동적으로 그런 비교 기제가 작동하게 된 것일까?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 내가 있는 지역에서는 다들 유명 브랜드들을 입고 다니는 것 같은데 보면 별게 없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남들 입는 옷을 보며 저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잘 봐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한 벌 정도는 사서 기분 전환하기도 했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대량생산 자본주의 나라 미국이니, 가까운 쇼핑몰, 아울렛에는 패션 아이템을 사려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늘 넘쳐난다. 하지만 내 맘에 드는 스타일도 잘 보이지 않고, 사이즈도 나에겐 좀 애매해서 선뜻 사고 싶다는 마음이 나질 않는다. 내 눈에 특별할 것이 없으니 쇼핑몰은 구경만 하고 그냥 나온다. 게다가 이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도, 관계가 얽혀있는 어려운 모임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만약을 대비하여 미리 사두고 준비해 둘 옷도 신발도 없다. 계속 이런 패턴의 반복이다. 결국 가진 옷들에서 피어난 섬유의 새 순들이 보풀로 만개하여 이 추운 날, 홀로 봄을 부르짖고 있으니, 오호통재라!


나는 자유의 나라 미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 관리와 표현의 욕구를 게으르게 방치하며 자신에 대한 방종을 행하고 있는 것인가? 경계에서 나는 오늘도 가진 옷들을 조합하며 알쏭달쏭 나만의 미국 룩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엄마가 주신 이 가을색 얇은 원피스는 꽃무늬가 있다는 이유로 가지고 온 옷들 중 가장 봄과 어울리는 옷이 되어버렸다. 만삭 사진은 그렇게 G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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