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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May 11. 2022

23. 나의 첫 번째 어머니 날 Mother’s Day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 사람이 되다

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 날(Mother’s Day)’로 기념한다. 올해는 우연히도 한국의 어버이날(5월 8일)과 같은 날짜가 되었다. 작년에는 4월 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어서 출국 전에 시어머니와 형님께 선물만 전달해 드렸다. 올해는 이곳에 계속 머무르다 보니 어머니 날 즈음한 분위기를 조금 읽을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쇼핑몰이 가장 빨랐다. 어머니날을 겨냥한 화장품, 가방, 옷 등등 다양한 상품들을 기획 할인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형마트 카드 섹션도 바빠 보였다. 이날 주고받을 수 있는 카드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화사한 봄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모든 엄마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 나는 난생처음 주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이 되었다.


첫 번째 받은 선물은 나들이용 모자였다. TJ Max라는 철 지난 브랜드 제품 할인하는 쇼핑몰에 갔다가 발견했다. 딱히 살 것은 없어서 여기저기 구경하던 중 적당한 사이즈의 밀짚모자를 발견했다. 모자가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써보니 내 눈에는 괜찮아 보였다.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데 갑자기 욕심이 났다. 하나 사볼까? 그런데 그냥 사는 것보다 의미를 담고 싶었다. 남편한테 엄마의 날 선물로 사달라고 슬쩍 떠봤는데 좋다고 한다. 엄마 자격으로 처음 받은 선물은 그렇게 나들이용 모자가 되었다. 엎드려 절 받기 격으로 받았는데 기분이 좋았다. 튼튼하고 야무진 이 모자를 해가 나는 날이면 잘 쓰고 다니고 있다. 잘 관리해서 오랫동안 곁에 남기고 싶다.

첫 번째 선물, 나들이용 모자

두 번째 선물은 카드와 어린이 용품 브랜드 상품권이었다. 어머니 날 하루 전, 토요일을 맞아 근교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 왔다. 남편 조카가 어린이 집에서 이런 시간을 ‘Nature walk’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들이나 소풍도 그렇고, 자연 산책(Nature walk)도 그렇고 이런 시간을 부르는 말들은 참 예쁘다. 만 4살 조카는 걸으며 보는 모든 것들이 다 모험(Adventure)이라며 유심히 관찰하고 신나 했다. 함께 걷는 산책 시간이 끝나고 각자의 차로 흩어지는 데 갑자기 조카가 송 숙모(Aunty Song)에게 줄 것이 있다고 불러 세웠다. 차 안에서 분홍색 카드를 가져와서 나에게 전해줬다. 형님 부부가 준비한 어머니 날 카드였다. 이 날은 직계 부모님 뿐만 아니라 할머니, 숙모, 이모 등도 챙기는 하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드에는 ‘Aunt, you have a special place in my life…’이렇게 인쇄되어 있었고, 안쪽에는 형님과 형부의 메시지와 함께 조카가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알파벳으로 적어 준 것이 보였다. 형님 부부에게도 감사했고, 조카 역시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남편 조카도 함께 보낸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게 되니, 정과 마음이 더 커진다. 왜 예전에 엄마가 멀리서 사촌 언니, 오빠가 오면 꼭 맛있는 밥상을 챙겨주고 싶어 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앤티를 위한 카드. 감사합니다 :)

조카는 마지막 선물로 내 맘 속에 또 한 번의 홈런을 날렸다. 주일 늦은 오후, 교회에 다녀온 조카가 시어머니와 함께 집에 왔다. 화장실에서 막 샤워를 마치려고 하는데 밖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앤티 쏭!’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밖에 나가니 시어머니가 조카가 앤티 줄 거라고 챙겨 온 게 있다며 뭔가를 보여주셨다. 붉은색 카네이션 코르사주였다.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선물해드렸던 그 카네이션. 수줍어 딴청을 부리던 조카는 얼른 내게 꽃을 넘기고 다시 남편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자기 엄마와 할머니가 하나씩 받자 집에 있는 배 불룩한 앤티가 생각이 났었나 보다. 아니면 누가 시켰는지도 모르고. 하하. 그동안 생화로, 종이로 접어서 또는 그림으로 그려서 준비했던 엄마를 위한 카네이션이 내게 오니 신선하면서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 꽃을 받을 자격이 되나?

느낌이 또 많이 달랐던 어머니날 카네이션

예전에 교육에서 슈퍼바이저는 부모로서의 삶은 선택이라고 했다. 나는 결정했고 그렇게 엄마가 되는 삶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한 하루. 아직은 이르지만 묘한 소속감 속에서 앞으로 기대 그 이상의 묵직한 책임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설렘과 떨림을 갖고 올해 어머니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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