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 사람이 되다
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 날(Mother’s Day)’로 기념한다. 올해는 우연히도 한국의 어버이날(5월 8일)과 같은 날짜가 되었다. 작년에는 4월 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어서 출국 전에 시어머니와 형님께 선물만 전달해 드렸다. 올해는 이곳에 계속 머무르다 보니 어머니 날 즈음한 분위기를 조금 읽을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쇼핑몰이 가장 빨랐다. 어머니날을 겨냥한 화장품, 가방, 옷 등등 다양한 상품들을 기획 할인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형마트 카드 섹션도 바빠 보였다. 이날 주고받을 수 있는 카드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화사한 봄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모든 엄마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 나는 난생처음 주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이 되었다.
첫 번째 받은 선물은 나들이용 모자였다. TJ Max라는 철 지난 브랜드 제품 할인하는 쇼핑몰에 갔다가 발견했다. 딱히 살 것은 없어서 여기저기 구경하던 중 적당한 사이즈의 밀짚모자를 발견했다. 모자가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써보니 내 눈에는 괜찮아 보였다.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데 갑자기 욕심이 났다. 하나 사볼까? 그런데 그냥 사는 것보다 의미를 담고 싶었다. 남편한테 엄마의 날 선물로 사달라고 슬쩍 떠봤는데 좋다고 한다. 엄마 자격으로 처음 받은 선물은 그렇게 나들이용 모자가 되었다. 엎드려 절 받기 격으로 받았는데 기분이 좋았다. 튼튼하고 야무진 이 모자를 해가 나는 날이면 잘 쓰고 다니고 있다. 잘 관리해서 오랫동안 곁에 남기고 싶다.
두 번째 선물은 카드와 어린이 용품 브랜드 상품권이었다. 어머니 날 하루 전, 토요일을 맞아 근교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 왔다. 남편 조카가 어린이 집에서 이런 시간을 ‘Nature walk’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들이나 소풍도 그렇고, 자연 산책(Nature walk)도 그렇고 이런 시간을 부르는 말들은 참 예쁘다. 만 4살 조카는 걸으며 보는 모든 것들이 다 모험(Adventure)이라며 유심히 관찰하고 신나 했다. 함께 걷는 산책 시간이 끝나고 각자의 차로 흩어지는 데 갑자기 조카가 송 숙모(Aunty Song)에게 줄 것이 있다고 불러 세웠다. 차 안에서 분홍색 카드를 가져와서 나에게 전해줬다. 형님 부부가 준비한 어머니 날 카드였다. 이 날은 직계 부모님 뿐만 아니라 할머니, 숙모, 이모 등도 챙기는 하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드에는 ‘Aunt, you have a special place in my life…’이렇게 인쇄되어 있었고, 안쪽에는 형님과 형부의 메시지와 함께 조카가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알파벳으로 적어 준 것이 보였다. 형님 부부에게도 감사했고, 조카 역시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남편 조카도 함께 보낸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게 되니, 정과 마음이 더 커진다. 왜 예전에 엄마가 멀리서 사촌 언니, 오빠가 오면 꼭 맛있는 밥상을 챙겨주고 싶어 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조카는 마지막 선물로 내 맘 속에 또 한 번의 홈런을 날렸다. 주일 늦은 오후, 교회에 다녀온 조카가 시어머니와 함께 집에 왔다. 화장실에서 막 샤워를 마치려고 하는데 밖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앤티 쏭!’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밖에 나가니 시어머니가 조카가 앤티 줄 거라고 챙겨 온 게 있다며 뭔가를 보여주셨다. 붉은색 카네이션 코르사주였다.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선물해드렸던 그 카네이션. 수줍어 딴청을 부리던 조카는 얼른 내게 꽃을 넘기고 다시 남편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자기 엄마와 할머니가 하나씩 받자 집에 있는 배 불룩한 앤티가 생각이 났었나 보다. 아니면 누가 시켰는지도 모르고. 하하. 그동안 생화로, 종이로 접어서 또는 그림으로 그려서 준비했던 엄마를 위한 카네이션이 내게 오니 신선하면서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 꽃을 받을 자격이 되나?
예전에 교육에서 슈퍼바이저는 부모로서의 삶은 선택이라고 했다. 나는 결정했고 그렇게 엄마가 되는 삶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한 하루. 아직은 이르지만 묘한 소속감 속에서 앞으로 기대 그 이상의 묵직한 책임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설렘과 떨림을 갖고 올해 어머니 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