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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Song Mar 29. 2022

말이 느리면 행동이 앞선다 -1편

아이를 통한 경험,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아이가 또래에 비해 유독 말이 늦었었다.

사실 정말 느리다고 하는 소위 친구의 '건너 건너' 친구네 아이들 (나를 위로하기 위한) 보다는 조금은 더 빨랐겠다만...

말에 대해서는 조급하게 생각한 적은 없던 터라 또래보다  느린 것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었는데, 결정적으로   느린 것이 문제가  상황이 생겨버렸다.





3살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가끔 원에서 이마가 찍히거나 눈에 띄는 상처 외에는 따로 아이가 잘 지낸다고만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언어 발달의 유무는 중요치가 않았고,

4살이 되면서 기존 원이 좀 좁게 느껴져서 나름 아이의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기관으로 골라 '광'클릭을 해서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원에 막상 적응시키려고 보내자마자, 아이들이 적응력이나 사회성은 조금은 차이가 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기관 생활에 대한 익숙함의 정도가 다르고, 이에 대한 대응도 기관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여기서 부터 뭔가 기운이 좋지 않게 느껴졌다.

아이가 말이 느리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평소와 달리 자다가도 깨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특히 원에서 친구들을 가까이 오지말라고 미는  행동이 앞서는 동작들을 한다고 듣게 되면서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매우 놀랐었다.

(타인으로 인해 내가 놀람을 경험하는 경우가 어른이 될때까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육아란  상식과 다른 세계를 자주 보여주는  하다)


그러다 어느날, 선생님에게 아이 정말  봐달라고 여러번 당부를 드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냥  무섭게 느껴졌는지 자기에게 다가온 아이를 밀었고,  아이가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cctv 고장이랜다) 아이가 다쳤다고 마치 모든 게 원에서는 책임이 없고 아이 책임이라는 듯이 설명을 해줬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쳤다고 해서 너무 놀라 죄송한 마음에 진짜 살아 숨 쉬는 게 죄송했는고, 우리 애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넌 왜그러니 라는 아이에 대한 원망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기가 막히게도 원에서는 자기들 탓이 아니라는 말로 검사를 상세히 받아라 등의 이상한 말만 잔뜩해대는 것을 보며, 진짜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어미인 내가 무슨 마음으로 아이를 여기를 보냈나 싶은 후회감에  주 간을 잠을 못잤다.


다행히 다친 아이는 검사 결과가 괜찮다고 했으나 혹시나 해서 계속 부모와 확인은 했고, 그날  후로  아이를 바로 집으로 데려와서 기관에 보내지 않았다.


"사실, 워킹맘이, 양가 도움도 없는데, 갑자기 아이를 원에  보내면   있는 옵션이 얼마나 될까?"


신랑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여 육아 선배들에게 잔뜩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이 상담치료 받을 곳도 고르고, 이게 다 말이 느려 제 의사를 'right timing'에 표현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생각에 혼자 자책감과 살면서 느끼지 못한 '통제력 상실'을 느꼈다.


나는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를 항상 봤었고, 실수를 할때도 어느 정도 예상 범위에서 했었고, 항상 plan B 있었는데, 육아는 정말 ' 필요없다'.

내가 가진 경험과 사회에서 받는 인정과 나름 빠른 상황 판단력은 다 무용지물이었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상처입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었고, 놀이치료, 언어치료를 받는다해서 일부분은 마음이 놓일 지언정 뭔가 끝없는 터널로 들어가는  같은 기분에 '마감일이 없는 프로젝트' 하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한달 사이에 살이 3킬로 이상 빠진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과로로 인한 경험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누군가 우리 아이에게 나무로  프레임을 씌우며 '너는 다른 아이 밀어서 다치게  나쁜 아이야. 너네 엄마는 누구니. 도대체  그런 행동을 해서 남한테 피해를 주니.


 모든 엄마들이  아이에게 다가와 손가락질하는  같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지나가는 모든 부모들이 내게 자식을   키웠다고 손가락질하는  같았다.


한동안은 지나가는 모르는 엄마들 무리를 봐도 무서워서 돌아가고, 밤낮 가리지 않고 눈물이 나고, 아이 걱정에 온갖 검색을 하면서 '말로 소통되기 어려운' 자식에 대한 '무한 믿음' 가지면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를  세포로 느끼는 나날들이었다.


다친 아이 부모와 소통을 하면서 느낀 건, '워킹맘이어서 애를 제대로 안 돌 본거 아닌가, 이런 상태의 아이면 기관에 안보 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늬앙스였다. 이 부분에서 내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다시금 느끼며 내가 쌓아온 일에 대한 회의감과 그리고 정말 살면서 할 수 있는 온갖 생각을 다 한 것 같다.


이전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여러 번 아이가 원에서도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 여쭤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만 여러 번 대답을 들었다. 너무 잘 생활했었고 트러블도 전혀 없었다고... 나도 기미가 있었더라면 진작에 알았을 텐데 예민한 엄마라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이상하고 이상했다.




아이가 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이모님의 도움을 받다가, 둘이서 제주도 3 살기로 떠났다.


거기서 둘 다 자연을   벗 삼아 시간을   천천히 가지며 다른 사람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만의 페이스로  시기를  버텨 보리라 보내 보리라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느 날 제주도에서 책을 읽어주다 아이가 갑자기 어떤 장면을 보더니 -

"엄마! -집에서 OO이가  이렇게 밀었어!! 아팠었어!!"라고 말했다.


 너무 놀랐지만 침착하게 다시 물어봤다.

"밀었었어? ( 말 안 했어라고 하기엔 말이 느렸으니..) 누가? OO이가?? 많이 아팠어??

그러자 아이가 아주 구체적으로 여러 번 그랬다고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며칠 뒤 다시 자연스레 물어봐도 똑같이 그랬었다고 말해줬다.


그제야 퍼즐이 완성되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다닐  말을 못 했으니, 누가 밀건 다치건 피가 나는 상처가 아닌 이상 원에서는 말해줄 의무가 없었고, 하지만 아이는 이렇게 하는 행동에 대해 누가   되었다고 크게 말하지 않으니, 자기도 해도 된다고 내심 생각했던  같다.

그러다가 다른 기관에 가서 불안을 느끼고 마치 야생에  듯한 기분이 들자 유일하게 자기가 아는 행동인 미는 행동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용인되는  같았던 나쁜 행동이 나온 것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그나마도 어린이집에서 낮잠도 재우지 않고 데려왔었는데, 그러면서도 아침마다 가기 싫다고 우는 너를 엄마는 회사 가야 하니 꼭 가야 한다며 단호하게 팔을 잡아끌던 내가 너무 미웠고,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 다음 편에 계속 -


난 내가 처음부터 지금 모습처럼 그나마 사회적인 인간으로 태어나서 죽 커온 줄 알았는데, 널 보면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자꾸 되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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