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다
7.19. 화.
뜨겁다.
세면대에도 비데에도 뜨거운 물이 나온다.
오늘은 아주 더운 날인가 보다.
이런 날은 초가을 선선한 곳으로 가야 한다.
마야나 로빈슨 또는 센트럴 페스티벌!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던 공공 썽태우를 타보기로 한다.
치앙마이는 모든 게 좋은데 단 하나 대중교통이 참 나쁘다.
물론 썽태우나 뚝뚝을 흥정하면 어디든 갈 수는 있다.
가끔 바가지를 쓰거나 기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몇 대나 보내야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여러 번 공공버스가 시도되었으나 썽태우 기사들의 압력으로 무산되었고
현재는 하얀색 에어컨 버스 두대와 두 개 노선의 공공 썽태우가 운영 중이다.
다만 하얀색 에어컨 버스는 거의 40분여 간격으로 오고 공공 썽태우는 30분 간격이다.
(요술 왕자님 에어컨 버스 설명
http://blog.naver.com/thailove/220673009721)
그동안 시절 좋았다.
말만 하면 어디든 실어다 주는 남자 친구가 현재 비자 때문에 라오스에 가는 바람에
요 며칠 내내 집에만 죽치고 살았다.
하루 종일 인터넷 아니면 텔레비전.
가끔 탄닌에 가서 식량 구해오는 정도.
정말 어디든 가고 싶었다.
집을 나서자 집 근처 절인 왓 꾸따오 에서 미얀마 인들이 모여 행사를 하고 있었다.
구슬과 반짝이들이 잔뜩 박힌 미얀마 전통 의상에서부터
음식, 인형 뽑기, 기념티셔츠나 열쇠고리 등을 팔고 있길래
슬쩍 들어가 봤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잔뜩 차려입고 왔다.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기도하고 부처님 상에 금박 입히고
파인애플 하나 사들고 나왔다.
스테디움을 가로질러 정류장에 가니
아이고야.. 시간표를 잘 못 알았다.
인터넷에서 1시로 알았는데 보니 12시 50분이다.
이미 지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땡볕에 10분을 기다려 봤지만 허사였다.
그때.
웬 썽태우가 불쑥 내 앞에 섰다.
할아버지가 묻는다.
-어디가?
-센트럴 페스티벌이요!
앞유리에 버스 번호도 없고 가격인 학생 10밧, 일반 15밧도 표기 안되어 있지만
혹시나 싶어 물으니 대번에
-80밧!
그렇군...
그냥 사설 썽태우구나.
얼른 뒤로 물러서니 60밧 50밧.. 가격이 점점 내려간다.
할아버지 연세도 많으신데 영어도 참 잘하신다.
영어 잘하는 썽태우 기사는 조심해야 한다. 늘 바가지니까.
포기하고 올드시티 쪽으로 걸어 썽태우를 잡아 타려 건너자마자
바로 4번 썽태우가 지나간다.
여기요 여기!
부랴부랴 건너갔지만 이미 썽태우는 스테디움으로 쏙!
에고. 항상 이런 식이지.
하는 수 없이 다시 건너가 걸으려니
오늘따라 햇살이 어찌나 강렬한지 도저히 못 걷겠다.
단 1초도 더 걷기가 싫다.
아무대로나 가자.
창푸악 터미널로 가 노란색 매림행 썽태우에 탔다.
달랑 나 혼자.
기사는 목이 터져라 매림 매림~ 노래를 부르는데
한낮에 사람은 없고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니
왓 꾸따오에 다녀온듯한 미얀마 아가씨 셋이 재잘대며 썽태우에 올랐다.
다들 어린 나이인지 참 곱게도 생겼다.
한 명은 루이뷔통, 한 명은 입생 로랑 가방을 메고
뭐가 그리 신난 지 한참을 깔깔대며 웃는다.
덕분에 썽태우는 출발했으니 고맙지 뭐.
치앙마이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녹색 청청 지대가 시작되었다.
시원한 바람에 나무며 산이며 마치 소풍 가는 기분이 든다.
덩달아 들뜬다.
썽태우는 골프장과 지하터널을 지나 매림 시내를 거쳐
나 혼자만을 태운 뒤 허허벌판 도로에 뚝.
멈춰 섰다.
뭐지? 여기가 어디지?
여기가 바로 종점이란다.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16밧을 내고 허무한 마음에 휘휘 돌아봤다.
여기저기 노란색 썽태우들이 삐죽삐죽 서있다.
목이 타들어 갈듯 해서 근처 노천카페에서 25밧짜리 타이티를 마시고
무작정 오던 길을 되짚어 걸어나갔다.
무섭다.
뻥 뚫린 고속도로라 차들이며 오토바이 대형 화물차들이 무섭게 달린다.
결국 다시 썽태우를 타서 매림 시내로 라도 돌아가야겠다 싶어
길을 건너기로 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있으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작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이후로
공포증이 생겨버렸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치고 지나가던 오토바이는
내가 노려보자 이렇게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라져 버렸다.
-싸바이 싸바이~
뭐가 싸바이야!!!!!!!
치앙마이 병원비가 얼만데!
아는 사람은 오토바이에 치여 이가 다 부서졌는데 뺑소니를 당해 보상비 한 푼
못 받았단다.
횡단보도도 별로 없고 신호등은 더 없다.
신호등이 있어도 잘 안 지킨다.
오토바이에 일가족이 헬멧 하나 안 쓰고 타는 것도 많이 보인다.
한 번은 5명이나 탄걸 본 적도 있다.
딱 봐도 겨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애들이 미치 듯한 속도로 달리기도 한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가 가끔은 버거울 때가 있다.
암튼 인도도 없는 고속도로를 걸어가니 비가 후드득후드득.
급하게 노랑 썽태우를 잡아 타고 시내로 왔다.
운전사는 아주머니였는데 처음으로 보조석에 앉아 오는 행운도 누렸다.
10밧.
매림 시내의 작은 재래시장을 휘 돌아보고 마크로로 향했다.
저 멀리 새빨간 마크로 간판이 보여 그것만 보며 걷는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가 않았다.
가는 길 할인마켓이 있어 에어컨이나 쐬볼까 해 들어갔더니
그곳은 플라스틱의 천국이었다.
어마어마한 잡동사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신나게 보다 마스크나 사갈까 싶어 둘러보는데
물건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직원한테 물어봐야지 하고 두리번거리다 찾아내 직원이 이쪽으로 올 때
갑자기!
뽀봉...
방귀를 뀌어 버렸다.
오랜만에 얼음 동동 띄워 연유 잔뜩 뿌려댄 타이티를 마셨는데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기어코 사달이 난 것이다.
큰 소리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주아주 무거운 침묵이었다.
서둘러 정신을 수습하고 마스크 쓰는 시늉을 내니
직원도 무안한 지 조금 비실비실 웃으며 마스크를 찾아 주었다.
비닐 한 푸대 가득 든 마스크가 90밧 정도 했다.
너무 양이 많다.
마스크 장사해도 되겠다.
배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요동을 쳐서 서둘러 나오니
조금 가라앉았다.
마크로 가는 길 약국에 들러 어제 멍 때리며 걷다 테이블 모서리에 심하게 박아버린
허벅지에 바를 야몽을 65밧에 샀다.
약국 선생님이 어찌나 나긋나긋하고 친절한지
하마터면 바람날 뻔했다.
ㅎㅎ.
마크로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마스크, 해물라면, 생선포, 식빵을 사들고 다시 썽태우를 잡아타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15밧. 갈 때보다 1밧 싸다.
오는 길 으레 오믈렛 가게에 들려 20밧 오믈렛을 사고 돌아오니
남자친구가 돌아와 있었다!!
아!
어제 하루 종일 연락이 안돼서 사람 속을 시커멓게 태우더니
거짓말처럼 침대에 누워 인터넷 중이시다.
가슴팍에 얼굴을 마구 비벼대며 환영 인사를 해주고
마크로에서 득템 한 물건들을 자랑했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가 돌아왔다, 한 달 비자를 받고.
이로써 세 번 연장한 거다.
한국인은 3달 일본인은 1달 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기본 비자.
바라건대 어서 일본인도 3달 비자받았으면 좋겠다.
(라오스 태국 대사관에서 관광비자를 신청하면 3달 받을 수 있단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부리며 항상 국경에서 내주는 비자나 프로메난다 사무실에서
비자 연장만 해오고 있다.
아휴.. 고집쟁이!)
오믈렛을 먹고 샤워를 하고
부리나케 그의 앞으로 가 귀엽게 손을 모으고 말했다.
-내 선물!
없단다.
치앙 콩 하루 루앙남타 이틀 다시 치앙 콩 하루
이렇게 4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자친구한테 줄 선물을 안사오다니!
내가 특별히 라오스 종 모빌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건만...
-아 맞다! 선물 있어.
하더니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킨다.
그럼 그렇지!
열심히 보물찾기 하듯 뒤져보는데 아무것도 없다.
이상하다.
-어디 있다는 거야?
재차 물어보니 뜸만 들이고 그때 테이블 위에 다소곳이 놓인 푸른색 작은 비스킷이 보였다.
-이거?
-응. 그린버스에서 공짜로 줬어!
장난하십니까?
울분의 주먹질을 날리려는 찰나.
-냉장고에도 있어!
정말?
-라오스 특산품 사 온겨?
득달같이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고에 있는 파인애플과 멜론.
-라짜밧 대학 앞에서 사 왔어. 먹어.
걸어서 5분 거리 라짜밧 대학....
마구 두들겨 준 뒤 파인애플과 멜론을 먹고
그의 밀린 빨래를 신나게 돌린 뒤 우리 둘은 며칠 전 내가 발견한 식당으로
팟카파오를 먹으러 갔다.
그 골목 식당 모두가 닫혀 있었다.
아...
오늘따라 라자밧 대학 앞 노점상들도 안 열려 있고
세븐일레븐 인스턴트는 먹기 싫고
오믈렛은 아까 먹었으니 집에서 해물라면이나 물 부어 먹어야 하나
하고 절망하다가 그럼 로터스 가는 길 노점상에 가보자 싶어
길을 틀어 조금 걸으니 이게 웬일!
일본 식당이 있는 거다!
가격도 싸고 깨끗한 일본 식당!
나는 돈카츠 나베, 남자 친구는 야끼우동을 시켰는데
그릇이 작긴 해도 된장국도 나오고
두 개 합쳐 겨우 98밧!
살짝 달긴 해도 맛도 있다.
아주 단골 삼기로 하고 신이 나서 영업시간을 물어보니
9:30~10:30 란다.
시간도 아주 좋다!
아예 이 근처 맨션을 얻어야 하나 어쩌나 흥분하며 마구 떠들다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요구르트며 말린 망고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말린 망고에는 설탕이 20%나 들었는데 중간 크기의 작은 조각 두 개와
새끼손가락 만한 조각 2개 달랑 4조각뿐이었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분노에 차서 앙칼지게 씹어 먹었지만
맛은 있었다.
하모, 설탕이 이래 많이 들었으니 맛있지!
빨래는 마르고
남자 친구는 아까 한숨 자더니 쌩쌩하니 근력운동을 해대고 있고
나는 우울한 영화인 '아무도 모른다'를 보며 분노하고.
이렇게 밤이 깊어간다.
행복하다. 진심으로.
왓 꾸따오 인형 뽑기.
20밧을 내면 캡슐 하나를 뽑고 그 안에 있는 번호에 따라 인형을 고를 수 있다.
태국 단골 축제 아이템 중 하나.
내가 뽑은 원숭이 인형.
현재 숙소 주인집 개와 같이 이용. ㅎㅎ
미얀마 전통 의상은 태국보다 비즈나 반짝이를 많이 써서 좀 더 화려하다.
한마디로 내 취향!!
스테디움 앞 공공 썽태우 정류장.
홈페이지 확인해보니 2번과 4번 노선도만 있더라.
나머지는 아마도 사라진 모양.....
팔자 좋다!
매림행 노랑 썽태우 종점 근처 노천카페에서...
매림 작은 테스코 로터스.
태국 사람들이 도라에몽을 좋아라 한다.
내가 본 가네샤 중 제일 이뻤던 가네샤!
689밧이면..... 22406원...
가네샤는 인도 행운과 부의 신~
태국 사찰마다 꼭 있다.
400M의 압박. 있긴 있었음.
와이, 태국 인사를 건네는 아름다운 조각상.
와이를 건네면 태국 사람들 엄청 좋아해준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한국식으로 꾸벅 목례를 하게 된다. ㅎㅎ
저 아기 인형이 돈 복을 가져다준다던데...
오늘 와로롯 가서 함 사볼까나....
야몽 종류가 이토록 많은 줄이야.
크림과 액체 중 크림으로 선택.
저 아저씨 사진 붙은 야몽이 유명하다던데 주로 벌레 물릴 때 바르는 거고
돛단배 그려진 야몽과 벌꿀 사진 야몽중 엄청 고민했다.
두 개다 성분이 비슷한데 가격도 같다.
돛단배는 오리지널 마사지용이고 벌꿀은 허브가 많이 들었다나...
양 많은 게 최고!!
돛단배 구입 후 발라보니 오오!!! 장난 아님. 완전 후끈후끈.
참고로 노란색이 더 세다. 65밧.
플라스틱 천국 태국 할인마켓.
방귀만 안 뀌었어도 다 보고 나오는 건데........
담에 또 가지 뭐. 15밧 인디. ㅎㅎ
마크로.
로터스나 빅씨가 우리나라 이마트몰이나 홈플러스처럼 소량으로 판다면
마크로는 코스트코처럼 창고형 판매다.
그래서 순식간에 돈을 쓰게 됨.
생활용품 가전 식재료 식품부터 없는 게 없이 다 있다.
매림 쪽에 하나, 항동 쪽에 하나.
매림은 창푸악터미널에서 노랑 썽태우 15밧.
항동은 치앙마이 게이트 쪽에서 노랑 썽태우 10밧.

남자 친구 귀환 후 다시 마구 먹기 모드.
그래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