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오후 마켓과 세 번의 뿌듯함
9.17. 토
(약간 비위 상하는 이야기 포함. 심하지는 않고요. ㅎㅎ)
어제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잠들 만하면 커다란 풍뎅이가 머리 위 모기장을 박치기하는가 하면
난데없는 문을 긁어 대는 소리에 소스라쳐 확인해 봤더니
주인집 개 판다였다.
낮에는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밤에는 개가 주무신다, 내 방 앞에서.
2시 30분에 동네 수탉들이 떼로 합창을 하는 걸 들으며
구시렁대다 겨우 잠든 것이다.
8시.
눈이 반짝 떠졌다.
공기가 맑아서인가.
오늘은 그동안 밀린 구렁 내 나는 빨래들을 해치워야 한다.
마크로 대형 백에 차곡차곡 쌓인 빨래를 검은 백팩에 밀어놓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가는 길 커다란 빨래 바구니 가득 온 가족 빨래들을 밀어 넣고 마지막으로
아이를 싣는 아주머니와 마주 쳤다.
아주머니와 나는 빨래 방 앞에서 조우한 뒤 사이좋게 난 20밧 아줌마는 30밧 세탁기를 이용했다.
자.
67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뭘 한담.
우선은 아침부터!
시내 중앙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치앙 콩 세븐일레븐은 2개.
시내 중앙과 치앙라이 로컬 버스가 드나드는 버스정류장 마켓 건너편에 있다)
옆에 위치한 노점 식당에서 팟카파오 무를 시켰다.
친구와 수다를 떠느라 정신없는 아줌마는 또 계란 프라이를 잊어 버리셨다.
그래도 고추 안 넣으신 게 어디냐 싶어 푸짐한 아침을 즐기고 슬슬 동네 산책을 하려는 찰나.
배에서 아주 심하게 신호가 오게 시작했다.
세상 구경하시겠단다.
이 근처 화장실이 어디인가.
은행 옆에 화장실 표시가 있길래 서둘러 가보니 닫혀 있다.
그래. 사찰이나 관공서에는 있겠지.
근처 관공서로 보임 직한 건물에 들어가니 오호라! 화장실이 있다.
한바탕 힘을 주고 물을 내리려고 더듬더듬 레버를 당기는데
시원한 물줄기 대신 힘없이 툭 고개를 떨구는 레버.
망했구나.
어떻게든 비데로 응가들을 내려 보내려 했건만 택도 없었다.
그 수압으로 감히 나를?
비웃으며 응가들은 끊임없이 고개를 내밀어 댔다.
그래도 이대로 갈 순 없다.
나는 옆칸으로 들어가 대야에 물을 받아 몇 번이나 왕복한 끝에 드디어!
응가들을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있었다!
책임을 다한 뒤라 마음이 아주 뿌듯했다.
의기양양 나와 상설 마켓에서 족욕할 대야를 10밧에 사고 난 뒤
자전거를 세워둔 세븐 일레븐으로 가는 길
다리가 똑. 꺾여버렸다.
치앙 콩 오는 날 잃어버린 조리 대신 멋쟁이 분홍 구두를 신었더니
방으로 드나드는 사다리는 물론 평지나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조차
몹시 불편한 것이다.
테스코 로터스에서 50밧인가 했었나.
그런데 그곳은 멀다.
그깟 조리 이 큰 (?) 동네에 없을까 소냐
해서 신발 가게란 신발 가게는 다 뒤져 봤는데
사이즈가 없거나 조리 하나에 100밧을 불렀다.
아. 작은 (?) 동네라지만 국경마을은 국경마을이구나.
별 기대도 안 하고 마지막 신발가게에 들어가니
아주 신발마다 싯누런 먼지가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장사는 그저 취미로 하시나
여긴 아니로구나 하는 마음에 나오려니
아저씨가 너 어디서 왔니?
물으시더니 난데없이 서울이야 평양이야 로 시작
혼자 들뜨셔서 명동 간다고 자랑 자랑을 헤대고는
분홍색 메이드 인 타이 도라에몽 조리를 49밧에 주셨다.
아저씨 나이쓰!!
아저씨의 명동 자랑을 맞장구 쳐주며 땅땅한 도라에몽 조리를 신고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사온 바나나와 사과를 갈아 셰이크를 만들려 는데
주인집 딸 요코가 휴일이라고 친구들을 3명이나 데리고 와 한참을 까르륵 대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잘 익은 사과를 하나 가득 잘라 믹서 컵에 넣다가 그중 한 명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어른이 되가지고는 혼자 먹기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두 번째 사과를 사정없이 쪼개 (귀찮아 깎지 않고 그냥 쪼개 먹는다) 주었더니
자기들끼리 소곤대더니 동시에 맛나게 집어 먹었다.
오늘 중으로 두 번째 뿌듯한 순간이었다.
점심도 먹었겠다 어디 돌아갈 비행기표 확인이나 해 볼까 싶어 이스타 항공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10월 26일 비자가 끝나니 한 25일쯤 가면 될까 싶어 확인 해 보니 그 주에 다 매진이었다!
아 이런 이런 이런...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가장 싼 티켓이 매진이고 그다음 가격은 남아 있었다.
갑자기 급한 마음이 되어 부랴부랴 28일에서 25일로 여정을 변경하려고 보니
추가 요금을 42000원이나 내야 했다.
50000원 정도 싼 티켓인데도 여정 변경 수수료 30000원에 짐이 늘어 난 덕에 해피 운임으로 수수료 추가!
괜찮아. 바꿀 수 있는 게 어디야!
모두 마치고 결제 단계에서 이르자 해외에 나와 있는 탓인가 자꾸만 다운로드가 제대로 안되었네,
보안이 강화되었네 하며 튕겨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와이파이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다시 처음부터 했는데 이번엔 잘 되다가 본인 인증 과정에서 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로그인 비번이 생각이 안나는 거다.
분명 어딘가에 써 놓은 것 같은데 그것조차 깜깜했다.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최후의 순간으로 단계를 조목조목 정리해서
친구한테 부탁의 메시지를 넣었다.
작년에도 신세를 졌건만... 미안하다, 친구야...
오후 무렵에는 숙소 주인이 알려준 대로 반 파이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열린다는
토요 오후 마켓에 가기로 했다.
어제 금요 오전 마켓은 싸구려 중국산 옷이며 약간의 부식거리가 다 였는데
이번엔 아주 조그마하다는데 과연 뭘 팔 것인가 싶어 갔더니...
정말 아주 아주 조그맣게 야채와 과일을 소소하게 팔고 있었다.
이거 그냥 버스 정류장 마켓 가도 다 파는 거잖아...
실망감에 이대로 로터스나 가버릴까 싶어 페달을 굴리니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덜거덕 덜거덕 했다.
근처 오토바이 숍에 가니 겨우 5밧에 성심성의껏 빵빵하게 공기를 넣어 주셨다.
잘 굴러 간다!
역시 있을 건 다 있긴 하구나!
로터스 문을 여는 순간 쌀쌀한 에어컨 바람에 막혔던 숨이 확 뚫렸다.
운동 삼아 로터스를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어느새 손에는 뽀글 머리 아저씨의 코코넛 과자가 들려 있고
한주먹 집어 앙팡지게 씹어 먹으며 내려오는 길.
웬 아이스크림 트럭이 서있는데 아니 글쎄!
분홍색 딸기 아이스크림을 파는 게 아닌가!
내 라임맛이며 코코넛 맛, 바닐라 맛은 봤어도 딸기 맛은 처음이로세!
흥분된 마음에 얼른 하나 사서 입에 넣어보니.
이건 싸구려 색소를 분유에 넣어 대강 얼린 아이스께끼가 아닌
부드럽고 고소한 제법 우유맛 나는 고급 아이스크림이었다.
앞으로 단골 맺기로 하고 수도 없이 맛있냐고 묻는 아저씨의 질문에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 호응해 주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아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토요 오후 마켓은 제법 알록달록한 파라솔을 늘어놓고
규모가 커져 있었다.
징그럽고 커다란 메뚜기들이 양파망에 갇혀 몸부림을 치는가 하면
숨 쉬라고 꽂아 두었나 대나무가 꼭 하나씩 박혀 있는 비닐엔 두꺼비들이
시장에 으레 있는 오코노미 야키와 와플, 소시지빵, 고기 꼬치부터
옷, 신발, 야채, 과일과 육고기까지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그중 눈길을 잡아채는 건 후식처럼 생겼는데 처음 보는 삼각형 모양의 떡이었다.
안에는 바나나며 땅콩들이 얇게 저며 있어 호기심에 사보니 아주 담백하고 쫀득했다.
인심 후한 할머니가 잔뜩 뿌려준 코코넛조차 고소하기 이를 때 없었다.
대성공!
이름을 물어 보았건만 할머니는 자꾸 가격만 말씀 하셨다.
괜찮아. 맛나니까.
오래간만에 돼지 꼬치까지 입에 물고 떡이며 땅콩 과자며 모두 끝낸 뒤에야 메콩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걷었다.
오늘 뭔가 아주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아 세 번째로 뿌듯하다.
아니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해 내서인가. ㅎㅎ
9.17.토---65.3
냠냠
-팟카파오 무와 계란 후라이
-바나나 사과와 불가리아 베리 요거트를 넣은 쉐이크
-콩, 바나나 떡 2팩, 코코넛 과자 1개, 딸기 아이스크림 한컵, 돼지꼬치 한개 : 16시대에.
돈
-팟카파오 무 45
-바나나 20, 세탁 20
-대야 10, 메모지 10, 도라에몽 조리 49
-떡 20, 과자 18, 아이스크림 10, 꼬치 10, 자전거 에어 5
207
오늘 과식 했으므로 내일은 쥐알만한 사과 두개, 바나나 쉐이크와 밥한끼로 충분.
오늘 밤 운동 하고 내일 또 운동한다!
치앙콩 메콩 강변 상어 조경.
뭔가 우렁차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