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돌아보기
나는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다.
기억나는 것은 네 살 때인가 부모님 지인이 집에 놀러왔었는데
나는 방 문 뒤에 숨어서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에 책으로 도망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은 항상 곁에 있었다.
이사를 한 집에서 내 방은 한쪽 벽면이 다 책장이었다.
백과사전, 60권짜리 만화삼국지, 고전 문학, 현대 소설 등등
책만 봐도 배가 불렀다.
주말에는 하루종일 책 읽는 시간이었다.
나만의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이 공부만을 강요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교과서들만 주구장창 봤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그 시간들이 아깝다.
그렇게 정말 책과는 멀어져 공부하는 기계가 되었다.
더 이상 숨막히는 공간에 살고 싶지 않았다.
독립을 했다.
그 와중에도 책을 챙겨 나왔다.
여행가방 트렁크 한 짐을 챙겨서 나오는데 그 와중에 절반이 책이었다.
그 당시에는 광고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인문학으로 광고하기, 창작면허프로젝트, 퍼플멍키는 아시나요 등 책을 가지고 나왔다.
나의 방은 없어졌고
마찬가지로 그 많던 책들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가슴이 아프지만 어찌하겠는가.
스무살에 50만원으로 독립하여 얻은 자취방에는 그 많은 책들을 다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중학생 때 이후로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이 허할 때 서점에 들렀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좋고 책도 좋은데 읽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읽혀지지가 않았다.
습관이 안되서 그런것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멀리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일까
어떠한 이유인지는 찾지 못한채 시간은 계속 갔다.
그리고 올해 코로나가 터졌다.
이전에 돈을 벌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지친 몸을 충전하느라 보냈던 시간들에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여유.
코로나가 터지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이 몇 개월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자라오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더욱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들로
겉으로는 무덤덤했지만 사실 속은 매우 차갑고 두꺼운 철벽이 쌓여있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쌓아올린 벽이었지만
그 벽으로 인해서 나 자신도 나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다.
그 이전에도 많은 계기들과 사건들이 나의 마음을 서서히 녹였고
올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를 정말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나의 감정은 어떠한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싫어하는 것과 상황들은 어떤지, 나는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등
나에 대해서 솔직하게 마주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최근에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던 활자들이
드디어 마음 속에 들어오고 머리 속에도 들어왔다.
책은 나의 내면을 드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이 보일까 두려웠고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보는 것이 두려웠다.
책을 읽으면 내가 보이기 때문에.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어서 책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이 사실을 깨닫고 나 자신을 보고 나니 이전처럼 책이 정말 술술 읽힌다.
근 몇 년간 읽지 못했던 책들을 다 읽고 싶다는 그 욕망과 지적 욕구가 마구 올라온다.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하다.
나를 알게 되어 행복하다.
나를 알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