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라는 안일함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단평

by 송희운

※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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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 2022년 들어 처음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이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이 드라마는 좀비를 전면에 내세우는 만큼 공개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개인적으로 원작 웹툰을 오래전에 흥미롭게 봐왔던 만큼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공개된 첫날부터 워낙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보니 보기 전부터 걱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총 12부작으로 이뤄져 있는데 결코 짧지 않은 12부작을 보고 난 뒤의 소감은 완전히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12부작이라는 방대한 길이가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원작 자체가 내용이 짧지 않고 길다 보니 어느 정도 긴 길이의 작품이 될 것은 예상하였으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원작에다가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추가하여 더욱 긴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에서 긴 분량은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긴 분량이 이야기를 몰입하는데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기존 원작에서는 비중을 거의 차지하지 않았던 로맨스가 드라마의 주축이 되면서 장르적인 특성상 박진감 넘치게 빠르게 진행되어야 할 전개는 지지부진하게 늘어지고 길이가 늘어난 만큼 로맨스 외에도 추가된 여러 가지 곁가지들은 드라마를 오히려 정신 사납게 만들어 버린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게 느껴지는 지점은 귀남이 좀비에게 감염되지 않고 살아남아 청산을 미친 듯이 추격하기 시작하는 7화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7화까지 보기 위한 6화의 모든 전개 과정이 지나치게 길고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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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캐릭터가 바로 귀남이다. 사실 주인공 일행들에게서는 크게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고 원작 속에서 가장 최악인 캐릭터 나연도 그저 그랬으며 원작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미진은 원작과 달리 오히려 비호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귀남은 이 드라마에서 좀비를 능가하는 메인 빌런인 만큼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도 중요한 캐릭터이다. 귀남 역을 맡은 유인수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히 소화해내며 극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높여준다. 높은 텐션을 가진 원작과 달리 서늘한 톤으로 귀남을 연기해내며 더욱 소름 끼치는 캐릭터로 만들어내었다. 다만, 원작에서 귀남 캐릭터가 워낙 엽기적인 행동을 많이 하다 보니 이를 드라마로 옮기는 과정에서 귀남의 행동을 많이 순화시킨 것들이 보이는데 차라리 이를 그대로 가져갔다면 드라마의 매력도를 높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좀비에 물려도 살아남은 면역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귀남 캐릭터만큼 엽기적인 악행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찾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귀남 캐릭터 자체가 여타 좀비물과는 다른 차별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원작 속에서 드러난 차별성은 사라지고 생각보다 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이 드라마는 영화 속에서 가장 잔인한 귀남의 행동을 제외한다고 해도 드라마 전체가 묘사하고 있는 폭력에 대한 수위는 낮아지지 않는다. 원작 속에서 독단적으로 행동하던 귀남에게 양아치라는 서사가 붙으면서 귀남이 자신이 괴롭히던 여자애의 속옷을 억지로 벗기고 강제로 촬영하게 하는 장면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불법 촬영물로 인한 범죄가 만연해진 요즘 시대에 적절하지 않은 묘사로 보인다. 인물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당위가 필요했다면 굳이 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나도록 자세히 보여줘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드라마 속에서 폭력은 결국 이병찬 선생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초토화시켜버리는 방아쇠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만드는데 일조한 폭력성과 잔인성은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을 묘사하는 수위를 높여 폭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드러낸 수위 높은 묘사밖에 남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악을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야기 속에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만다.


또한 드라마는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 속에서 이기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던 것처럼 보인다. 이에 원작 속에서는 아예 없는 청산 어머니, 온조 아버지 등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냈는데 이 중에서도 학생 미혼모인 희수 캐릭터는 불쾌한 느낌마저 든다. 드라마 초반 모든 비극이 벌어지기 전 희수는 학교를 몰래 빠져 나가 공중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고 버리고 간다. 그러다 좀비 사태가 발발하자 자신이 버리고 간 아기를 다시 안고 도망친다. 좀비에게 물리면서도 아기를 지켜낸 희수는 아무도 없는 빈 가게에 들어가 자신도 좀비로 변할 것을 대비해 자신의 양손을 묶어버린다. 이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서 모성애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모성애를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미성년자가 출산하는 장면을 드러내면서 강조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희수가 좀비가 된 뒤 형사인 재익이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아기를 발견해 구하는데, 아기는 이후 잠깐 스쳐 지나갈 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 흐름 상 적재적소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희수 캐릭터와 아기는 그저 여성의 출산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용으로 드러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원작 웹툰도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 정서가 등장할 때가 있으나, 드라마에서 오리지널로 창조해낸 캐릭터가 오히려 옛날 작품의 정서보다 낡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단점만 나열하여 이야기했지만, 사실 드라마 자체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청산과 귀남의 갈등은 오히려 원작 속 하리와 귀남의 갈등보다 흥미로웠으며, 학교의 여러 공간 내에 있는 사물들을 활용하여 좀비들과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긴박함과 긴장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불필요한 서사들을 빼고 총 6~8부작까지로만 줄였어도 훨씬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이다 보니 호평보다는 아쉬움이 더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원래는 미국 영화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장르였던 좀비물은 <부산행>을 기점으로 하여 국내 대중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이제는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전부터 좀비물을 흥미롭게 봐왔던 사람으로서 좀비가 대중문화 속으로 녹아들어 다양한 좀비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나, 다른 나라에는 없는 K-좀비물의 특성으로 신파나 로맨스 같은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더 이상 내세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은 우리나라 정서에 익숙한 신파로 안일함을 택하지 않고 전형적인 좀비물의 특성을 떠나 좀비를 소재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준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은 신선한 소재를 가진 원작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K-좀비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해주었으면 하는 또 다른 바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