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데스 + 로봇 시즌3> 단평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 각 에피소드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러브, 데스 + 로봇>의 시즌 3가 공개되었다.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컨셉을 잡았지만, 시즌 2가 지난 시즌 1에 비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을 받자 이번 시즌 3에는 작정했다는 듯이 '청불'을 걸고 돌아왔다. 편수는 지난 시즌과 거의 유사한 9편이지만, 관람가가 달라진 만큼 지난 시즌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잔인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하다. 이번 시즌은 시즌 1에서처럼 선정성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시즌 1의 수위를 뛰어넘는 고어도가 가득해 마니아층으로부터는 확실하게 지지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이번에도 각각 작품별로 어떤 상상력을 보여주었는지 간단하게 리뷰해보고자 한다.
<세 대의 로봇: 출구 전략>
전 시즌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이어지는 에피소드인 1화는 시즌 1에서 멸망한 인류의 도시를 바라보던 로봇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인류가 살아남고자 노력해주는지 그 흔적들을 찾아가는데, 로봇의 냉정한 시선으로 인간들이 갖고 있는 이기성에 대한 풍자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이기성의 극한에 달한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까지 취하는지 보여주면서 자칫 잔인해 보일 수 있는 묘사가 등장하나 로봇들의 나름 유쾌한 개그로 그 부분을 무리 없이 넘어간다. 인간들이 어떻게 인간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지 경고해주는 듯하다가도 엔딩에서는 유쾌하게 마무리지으며 본편 자체가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는 것이 이 에피소드의 매력이다.
<어긋난 항해>
비 내리는 어두운 밤 항해를 하던 선원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수 타나팟에 의해 살육당한다. 인간들을 잡아먹던 괴수는 갑판 아래로 떨어지고, 살아남은 선원들은 괴수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내려갈 사람을 뽑는다. 하지만 뽑힌 선원은 자신이 이제부터 리더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대신해 내려갈 사람을 투표하고 거기서 뽑힌 갑판장 토린을 갑판 밑으로 밀어 넣는다. 타나팟은 그를 죽일 듯이 공격하지만 타나팟이 시신의 입을 이용해 자신과 대화를 하려고 하자 토린은 기지를 발휘해 타나팟과 거래를 한다. 음울한 분위기에 시즌 3에서 가장 수위 높은 고어씬을 자랑하는 이 에피소드는 안티 히어로적인 면모를 지닌 토린 캐릭터까지 더해져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호러물과 심리 스릴러의 적절한 조화, 여기에 고어도까지 갖춘 이 에피소드는 <러브, 데스 + 로봇>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뽑는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
마사 키블슨과 줄리엣 버턴, 두 명의 우주 비행사는 목성의 위성 이오에서 탐사 활동을 진행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발생한 분화구의 폭발에 휘말리게 된다. 그 폭발 활동의 여파로 마사는 왼팔에 골절상을 입고 버턴은 우주복 헬멧이 깨져 그대로 사망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마사는 잔해로 만든 썰매에 죽은 버턴을 싣고 41km 떨어진 기지로 복귀하기 위해 애쓴다. 이 에피소드는 마치 <마션>처럼 시작해 마사라는 인물이 우주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마사가 고통을 둔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모르핀을 주입한 뒤 누군가 자신의 무전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을 들으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환각과 환청이 더욱 심해지고 우주복의 공기마저 점점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마사는 살아남기 위해 암페타민까지 투여한다. 마사는 결국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다름 아닌 위성 이오이고, 위성 이오가 거대한 기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사는 이오와 대화를 나누면서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던 자신의 목적이 이내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느낀다. 이 에피소드는 짧은 분량 속에서 '살기 위해 존재하는가? 존재하기 위해 사는가?'라는 꽤나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나이트 오브 미니 데드>
그동안 수없이 많이 등장했던 좀비물을 디오라마로 보여주는 신박한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좀비물의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는 장면이 없지만, 좀비물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을 보여주지 않고 전체 샷(일명 버드 아이 뷰)으로 보여주는데, 단순히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만 통일감을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지구가 터져 인류가 멸망하는 장면까지 소소하게(?) 보여줌으로써 형식과 내용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말 그대로 '짧지만 강렬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만큼 이번 시즌 중에서 꼭 보기를 추천하는 에피소드.
<킬 팀 킬>
미국 특수부대와 CIA가 비밀리에 사이보그 군사 병기로 개조한 회색곰 간의 치열한 사투를 그리는 작품. 미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림체에 미국식 유머가 넘쳐나고 거기에 수위 높은 고어 씬들까지. 작품 자체가 마초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으며, 한 마디로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화끈하게 즐길 수 있을만한 에피소드이다.
<스웜>
고대의 외계 생물 집단인 스웜. 아프리엘 박사는 이 생물 집단을 연구하기 위해 다른 외계 종족의 도움을 받아 스웜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미 스웜을 연구하고 있었던 미르니 박사를 만난 그는 그의 도움을 받아 인간들을 위해 스웜을 자신들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하려 한다. 스웜 속에서 자신들만의 집단을 만들어 알을 훔치는 데 성공한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일벌레들이 먹이를 공급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만 전투 개체들에게 공격받고 어디론가 끌려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단편보다는 장편으로 끌고 가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스웜이라는 종족에 대한 설명을 받아들이기에는 러닝타임 자체가 너무 짧았으며, 스웜의 지성과 아프리엘의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될듯한 여지만 남겨둔 채 급하게 끝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실사영화로 하여 장편으로 발전된다면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듯한 에피소드이다.
<메이슨의 쥐>
농부 메이슨은 자신의 헛간에 살고 있는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헛간에 들어갔다가 쥐들이 무기를 만들어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쥐들을 퇴치하기 위해 전문 방역업체 직원을 불러 쥐를 퇴치할 병기를 도입한다. 이 에피소드는 보통 쥐가 등장하는 작품처럼 쥐를 혐오하는 인간으로 시작하지만, 쥐가 단순히 퇴치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반격하기 시작하면서 일반 작품들과의 궤를 달리 하는 것처럼 보인다. 쥐가 자신보다 더욱 거대한 인간에게 굴복하지 않고 반격한다는 점에서 초반에는 참신한 듯 보이나, 잔학한 방식으로 쥐를 살해하는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면서 인간과 쥐의 대립은 쉽게 사그라든다. 인간과 쥐가 서로 화해하는 엔딩은 희망적이나 쥐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을 시작한 인간을 쥐가 쉽게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제목은 <메이슨의 쥐>가 아닌 <메이슨과 쥐>라고 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
인질 구조 작전에 투입된 특수 부대는 인질들이 동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뒤따라 간다. 동굴 속을 탐색하던 도중 백골만 남아있는 시신을 발견하지만 그 시신이 자신들이 구출하려 했던 인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허탈해한다. 계속해서 적을 섬멸하기 위해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던 대원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거미떼에 공격당하고 거기서 몇 명의 대원들을 잃고 세 명만 남게 된다. 거대한 광장으로 나온 그들은 탈출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전진하다가 그들을 추격하는 다른 거미떼에 대원 한 명 마저 잃고 거대한 신전 앞에 도착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로 크툴루 신화의 현대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크툴루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살아남은 대원 중 한 명이었던 스펜서와 하퍼 간의 대화를 통해 뒷이야기를 예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것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코스믹 호러의 진수로 자신의 눈과 귀를 훼손하고 사막을 정처 없이 걸어가는 하퍼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에피소드이다.
<히바로>
다른 기사들과 함께 숲을 행군하던 귀가 들리지 않는 기사 한 명이 숲 속의 거대한 연못에서 황금빛 비늘을 줍는다. 자신의 연못에 들어온 침입자를 눈치챈 세이렌은 수면 위로 올라와 기사와 사제들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서로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내밀던 기사와 사제들은 결국 세이렌을 향해 연못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유일하게 귀가 들리지 않던 기사는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간다. 자신의 유혹을 견디고 도망간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세이렌은 기사의 뒤를 따라간다. 세이렌과 기사 간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히바로>는 시즌 3의 모든 에피소드들을 통틀어서 압권인 표현력을 자랑하며 비주얼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에피소드이다. 다만, 감독의 이전작인 시즌 1의 <목격자>처럼 여성의 신체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관점을 가진 듯하다.(세이렌이 기사를 유혹할 때 하는 몸짓과 이때 세이렌을 비추는 화면 등) 전작보다는 이런 지점들이 확실히 덜한 느낌이지만 화려한 표현력과 더불어 성인용이라고는 하더라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안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러브, 데스 + 로봇>은 이번 시즌을 통해 자신들만의 특징을 확고히 다지려는 것처럼 보이다. 시즌 1과 같은 잔인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선정성은 줄이고 시즌 1에서 보여주었던 뛰어난 상상력은 훨씬 더 업그레이드하는 것.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포지션을 확실히 갖고 가면서도 후환이 될 만한 요소들은 남기지 않도록 최대한 깔끔함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러브, 데스 + 로봇>이 갖고 나갈 정체성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가 앞으로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좀 더 다양한 관점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매니아를 넘어서 좀 더 다양한 층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되어서는 오직 나만이 알고 싶은 시리즈가 될지도.
+) 덧, 이번 시즌 3까지 보고 난 뒤 개인적으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관람을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즌 2(순한 맛) → 시즌 1(입문용) → 시즌 3(심화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