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욕망이란 이름의 재난
<콘크리트 유토피아> 재난을 대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세
※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여름 개봉하는 한국 영화 빅 4 중 하나로 불리며 기대을 모았던 작품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했다. 개인적으로 원작인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었던 [유쾌한 왕따]를 좋아했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컸지만, 사실 그와 동시에 완성도 높은 원작이 영화화되었을 때 영화가 원작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해 실망스러운 경우들도 많았기에 이번 작품도 그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관람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갑자기 서울에 정체불명의 대지진이 발생하고 세상이 온통 파괴된 상태에서 오로지 황궁 아파트만 다른 아파트와 다르게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한동안 아파트는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과 외부에서 들어온 외지인이 섞여 살고 있었는데, 입주민의 집에 살고 있던 외부인이 입주민을 칼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자 입주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아파트에서 자신들만이 안전하게 살기 위해 큰 결정을 내리는 대표 인물을 뽑기로 결심하고 큰 화재로 번질 뻔한 불을 꺼준 영탁을 동대표로 정해 주민들과 함께 회의를 거쳐 외지인을 본격적으로 내보내기로 결심한다. 외부인들은 입주민들의 말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반발하지만, 몽둥이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나가라고 말하는 영탁과 물건을 내던지는 주민들의 기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아파트에서 물러난다. 이로서 입주민 대표인 영탁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지고,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규칙을 세우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동안 한국 영화 속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디스토피아를 정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재난을 마주한 군중들의 심리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에서 사실 영탁은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파트 전체가 불에 타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몸소 나서서 화재를 진압했던 그의 행동력을 높이 사 주민들은 그를 아파트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대표로 선발한다. 사실 이 지점에서 영탁이 대표로 선정된 것도 사람들의 이기심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부녀회장이 그러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여자가 대표를 해서는 안된다'는 어떤 화면 밖 목소리에 따라, 그리고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부녀회장의 의지에 따라 그녀는 대표가 되지 않았다. 아파트에 모인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영화의 첫 시작에서 경비실에 모여들어 경비원에게 도대체 물이 언제 나오냐고 아우성을 치던 것처럼 누군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결정을 해주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안고 갈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불구덩이에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었던 영탁이 딱 그 자리에 적절한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대표가 된 영탁은 망설임 없이 그 자리를 받아들였고, 그 자리는 온전히 영탁의 것이 되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최악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기심이 점점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순간이 가장 처음 극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입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처음으로 내쫓기 시작했을 때이다. 남은 집을 배분해 준다는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밖으로 나온 외부인들은 나가라는 영탁의 말에 반발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엄청나게 원성을 일으키며 무력으로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웹툰에서 유사한 장면을 처음 봤을 때도 참으로 무서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을 본 순간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신이 좀 더 안락하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양심을 버리고 타인, 그것도 대 다수의 타인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에서 외부에서 있다가 들어온 혜원이 밖이 어떠냐는 명화의 질문에 '지옥'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황궁 아파트 입주민들이 외부인들을 내쫓는 순간부터 그곳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이 아니라, 이미 악마들이 살고 있는 지옥이 되어버렸다.
입주민들을 쫓아내고 아파트의 실세가 된 영탁은 식량을 조달해 오는데도 성공하면서 점점 기세등등해진다. 그가 누구보다도 아파트 일에 앞장서는 이유는 그가 실제로는 아파트의 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를 확실히 드러낼 수 없었기에 우물우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파트에서 점점 영웅으로 대접받으면서 더욱 아파트의 일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가 쓰고 있는 김영탁이라는 이름은 그가 죽인 이의 이름으로 그는 김영탁으로부터 아파트 값을 사기 당해 오갈 데가 없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이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강렬하면서도 무서웠던 이유는 바로 그가 우리 주변에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몰고 다니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아파트에 들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 이러한 사람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 나도 그러한 사람에 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영화의 첫 시작에서부터 드러난다. 처음에 아파트는 인구 밀집으로 주택이 부족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파트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점점 가격이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부의 상징이 되기 시작하였고, 서민들이 서울에 있는 몇십억씩 하는 아파트를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부를 측정하는 가치의 기준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의 욕망으로 이뤄진 공간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아파트만 살아남고 이 아파트에 들어오고자 애를 썼던 외부인이 대표가 되어 이 아파트를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영탁의 욕망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영탁이 외부인들을 모두 쫓아낸 뒤, 주민들과 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그 장면 속에서 영탁은 마치 아파트 광고를 찍는 것처럼 거대하고 위압적인 아파트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이 장면이 아파트 광고와 차이가 있다면, 아파트 광고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로 그 아파트를 가지지 못한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서 영탁은 실질적으로는 아파트를 소유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아파트를 거의 지배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황궁 아파트에도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외부인을 숨겨주었다가 영탁에게 발각된 도균이 마찬가지로 외부인들을 숨겨주었던 입주민들이 아파트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할 때 나타나 투신자살한 이후로 아파트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명화에 의해 영탁의 정체가 아파트 주민들에게 드러나고 이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배신자가 끌고 온 외부인들이 나타나 아파트 주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민성과 명화는 겨우 아파트 밖으로 도망치지만, 칼에 맞은 민성은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홀로 남아 울고 있는 명화 앞에 또 다른 생존자들이 나타난다. 생존자들이 살고 있는 곳은 고급 아파트였다. 여기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언어적으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처음 또 다른 생존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고급 실내 아파트로 벽에 가있는 금만 아니라면 럭셔리한 아파트 내부라고 생각했을 법한 외양이다. 하지만 카메라 옆으로 회전하면서 일반적인 아파트의 모습이 아닌 옆으로 기운 아파트의 모습임이 드러난다. 이는 황궁 아파트만이 홀로 남아 똑바로 서있었고 주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진으로 인해 뒤집힌 세상 속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뒤이어 아무런 대가 없이 호의를 받은 명화가 생존자들에게 "정말 살아도 되나요"라고 물어보고 생존자 중 한 명은 그녀에게 '살아 있으면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황궁 아파트의 가치와는 완전히 정반대 되는 말이다. 황궁 아파트 속의 세계에서 세워진 규칙은 오로지 주민들만 거주할 수 있었고, 아파트에 대한 기여도가 따라 식량 배급을 차등 지급받았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홀로 싸워왔던 명화였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무런 대가 없는 호의를 받는 것이 낯설어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생존자들 중 한 명이 명화에게 그 아파트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냐고 물어본다. 명화는 아파트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서 90도로 기울어진 아파트 밖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영화는 이로써 끝이 난다. 황궁 아파트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평범했던 사람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 놓이면서 자신들의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악마'와도 같이 변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황궁 아파트의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 명화가 있게 된 생존자 집단의 사람들처럼 다 같이 화목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과연 나는 저 상황에 처했을 때, 영화 속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 끝까지 자신의 인간성을 버리지 않았던 도균일 것인가 혹은 앞장서서 세력을 조장하는 영탁일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다른 이들의 의견을 열심히 따랐을 뿐인 정말 평범한 인물이었던 민성일 것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결말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희망찬 엔딩으로 끝났지만, 보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도 쉽사리 내릴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