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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Jun 19. 2023

정반대에서 찾은 진짜 '나'의 모습

<엘리멘탈> 단평 

※ <엘리멘탈>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사의 27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엘리멘탈>이 지난 6월 14일 개봉했다. 불과 물 그리고 공기와 흙 등 다소 낯설어 보이는 존재들이 주인공으로 있는 이 영화는 불인 엠버와 물인 웨이드가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흐름은 완전히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앰버와 웨이드가 어떻게 서로에게 빠져드는지를 주로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가까워 보이지만,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적인 요소만 있다고 하기에는 다른 지점들도 분명히 있었다. 



<엘리멘탈>은 원소들이 가득한 엘리멘트 시티에 처음 도착한 버니와 루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물이 주로 도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뒤이어 공기와 흙이 들어와 새로운 세계를 이루게 된 엘리먼트 시티에서 불인 버니와 루멘은 배척당하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해서 거기서 땅을 일구고 자리를 잡아 불만의 공간을 일궈낸다. 버니와 루멘 사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엠버는 날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아버지를 따라 가게를 이어받으리라는 꿈을 꾼다. 그런 엠버에게 아버지는 항상 나중에 엠버가 준비되면 가게를 물려주겠다고 말을 한다. 그러던 엠버는 어느 날 가게의 중요한 행사인 레드 닷 세일을 혼자 도맡아 하던 도중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고 그로 인해 지하실의 파이프가 터져 그곳으로 새어 나온 물 웨이드를 만나게 된다. 시청 조사관인 웨이드는 가게의 이런저런 불법적인 행태들을 발견하고 보고하기 위해 시청으로 가려 하지만, 아버지의 꿈인 가게를 지키기 위해 엠버를 웨이드를 막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최악의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엠버와 웨이드는 서로가 가진 다른 모습을 보면서 끌리기 시작한다.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 속에서 모든 연인들은 서로 최악의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서로가 가진 다른 모습으로 인해 반하고 서로가 가진 다른 모습으로 인해 다투게 되기도 하는 모습들을 그려낸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영화 속에서는 주로 어떤 상황들을 통해 표현하는 편인데, <엘리멘탈>에서는 이를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불과 물 서로 대립되는 존재들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들이 가진 서로 다른 특성들은 서로를 해치게 만들기도 하고 서로 절대 이뤄질 수 없다고 정해놓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이러한 편견들을 모두 극복해 나가려고 한다. 이러한 지점이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엠버와 웨이드의 사이를 눈치챈 루멘이 둘을 자신의 점 보는 곳으로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불이 가진 특성을 이용, 각자 향을 태우는 것을 통해 서로가 운명의 상대인지 봐주는 점 보던 루멘은 엠버가 쉽게 향을 태울 수 있는 것과 달리 웨이드는 그 향을 태울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웨이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향에 불을 붙이는데, 바로 엠버의 빛을 자신의 몸 안으로 투영시켜서 그 빛을 모아 향을 태운 것이다. 모든 세상이 안된다고 말할 때에도 그리고 심지어 엠버조차 안된다고 말할 때에도 웨이드는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는 캐릭터였다. 이 장면에서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환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감탄하고 울컥하게 하는 감정들이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엠버와 웨이드. 이들의 사랑은 서로 다른 각자의 모습을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가깝다. 특히. 엠버를 향한 웨이드의 사랑은 여태까지 타인이 정해준 삶을 따라 살아왔던 엠버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리게 만들어주었다. 웨이드의 초대로 간 웨이드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엠버는 가족들 중 한 명이 깨뜨렸던 유리병을 자신만의 특기를 발휘하여 새롭고 아름다운 유리병으로 재창조시킨다. 이를 본 웨이드의 어머니는 진지하게 엠버에게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을 한다. 엠버는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파이어타운에서만 자라서 그 세계만을 자신만의 세계로 인지했던 엠버에게 웨이드가 사는 곳은 분명 별천지였을 것이다. 엠버는 그곳만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이상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넘어선 또 다른 세계가 있었고 엠버는 그곳에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분명 이 장면은 좌절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정말 많은 것들에 제약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을 좌절이라고만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지 못했던 사람에게 한 번도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반대의 길을 가보면 자신이 진정 찾고 있었던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는 장면이라고도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의 속성을 가진 엠버도 자칫 자신을 꺼뜨릴지도 모르는 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엠버는 웨이드를 만나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켰지만, 결국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킨 것은 두려웠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나간 엠버 그 자신 덕분이었다. <엘리멘탈>은 너무나도 다른 두 원소가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그 이면 속에서는 자기 자신도 몰랐던 진짜 '나'를 찾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 엠버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다소 뻔해 보이는 외양 속에서도 <엘리멘탈>이 빛나보이는 것은 진짜 '나'의 모습은 내가 태어나서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힘들더라도 그 세계로 가보는 것은 어떤지 조금은 용기를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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