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마음이 부서질지라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인간적인 <프랑켄슈타인>

by 송희운

※ <프랑켄슈타인>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13번째 장편 연출작 <프랑켄슈타인>이 일부 극장에서 10월 22일 개봉하였다. 넷플릭스에서는 11월 7일 공개될 예정이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알게 된 이후 극장에서 개봉하는 그의 작품은 모두 챙겨봤었기에 이번 영화도 극장에서 관람을 고집하였고, 역시나 그 관람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동명 고전 SF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빙하 위에서 구조된 한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 자신을 밝히며, 어머니가 죽은 이후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집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과정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생명은 빅터의 기대와 달리 인간적인 교감을 하지못했고, 빅터는 그 존재를 두려워하며 파멸의 길로 향한다. 한편 버려진 크리처는 인간의 따뜻함을 그리워하며 눈먼 노인과 교류하지만, 오해와 폭력으로 다시 세상에서 쫓겨난다. 결국 빅터와 크리처는 서로 증오에 휩싸여 끝나지 않을 추격을 시작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의 기본적인 골격은 같지만, 그 엔딩이 전혀 다르다. 감독은 자신의 무수한 영화 속에서 세상 속에 속하지 못한 괴물들의 삶을 그려왔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크리처‘의 감정에 무게를 싣는다. 영화는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이고, 2부는 괴물의 이야기이다. 빅터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한 인간이 어떻게 신의 권위에 도전했는지 보여준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것으로 인해 어떻게 내면이 삐뚤어지게 되었는지, 그 광기가 어떻게 죽음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뒤틀리는지를 드러낸다. 빅터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묘사되는 사람의 시체는 상당히 기괴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특히 재력가인 헨리히의 도움을 받아 폐허가 된 거대한 성에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려고 하는 모습은 감독의 전작인 <크림슨 피크>를 떠올리게 한다. 괴물이 탄생하는 공간의 비주얼은 가장 중요한 공간인 만큼 미장센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그 방 배경에 있는 메두사 조각은 빅터의 행동이 얼마나 경악스러운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중세를 다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빅터이다. 빅터의 착장에는 늘 붉은색이 자리하고 있다. 스카프, 장갑과 같은 붉은색은 피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빅터의 광기를 나타낸다. 처음 빅터의 어머니가 등장했을 때도 붉은색 옷을 입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빅터의 꿈속에서 등장한 붉은 천사가 빅터에게 계시를 내려주는 것처럼 등장하는 이러한 것들이 빅터에게 영향을 주어 빅터가 결국 광기에 빠진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빅터는 생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이후 생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만든 생명이 단지 ’빅터‘라는 말만 할 줄 알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실망하여 그를 높은 성 가장 어둡고 음침한 지하 속에 가둔다. 생명을 주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있다가 성의 가장 낮은 곳으로 위치시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생명을 두려워하고 하찮게 여기는 빅터의 행동은 빅터의 광기와 교만함을 나타내는 듯하다. 빅터와 크리처의 관계를 결국 걷잡을 수 없이 파국을 맞이했지만, 이 모든 행동의 원인은 빅터에게 있었다. 빅터는 너무나 교만하였고 자신이 만든 생명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기에 빅터는 결국 괴물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파국을 맞이했던 것이다.



빅터의 이야기가 화려한 비주얼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괴물의 이야기는 상당히 정적인 화면으로 전개된다. 성의 폭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괴물은 숲 속을 떠돌다가 한 작은 오두막에서 자리를 잡는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어린아이와도 같은 상태였던 괴물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고,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과의 교감을 통해 사랑 비슷한 것을 배운다. 괴물은 그곳에서 노인의 요청에 따라 책을 읽으며 언어를 배운다. 이 부분은 빅터가 괴물이 빅터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과 상당히 대조된다. 빅터는 괴물을 하찮게 취급했지만 괴물이 배에 숨어있는 빅터를 찾기 위해 선장의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수준 높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문학을 통해 언어를 배운 괴물은 그의 외양에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괴물은 비록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괴물이 아닌 인간에 가까운 존재였다. 빅터와 괴물은 모두 인간과의 교류, 애정을 갈구하던 존재였지만 그들이 이를 위해 추구하는 방식은 달랐다. 빅터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여 자신이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고, 괴물은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만을 원했다. 괴물은 빅터와의 추격전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이는 빅터가 초래한 결과에 가까웠다. 즉, 인간의 외양을 가지고 있던 빅터의 내면은 오히여 괴물에 가까웠고, 괴물은 외양은 끔찍했지만 그 내면은 인간에 가까웠다.


괴물의 이야기까지 모두 끝난 뒤 괴물과 빅터는 모든 증오를 버리고 서로 온전히 마주한다. 빅터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자신의 모든 과오를 깨닫고 괴물을 향해 비로소 ‘아들’이라 부른다. 원작 소설과 달리 서로를 용서하는 장면은 말로 다 형용하기 힘든 울림을 선사한다. 빅터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였고, 괴물도 자신을 창조한 빅터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그들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러 서로의 목을 조르게 되었지만 빅터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괴물을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것은 변화한다. 엔딩에서 빅터의 죽음 이후 괴물은 얼음 속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배를 자신의 힘으로 구해주고, 계속해서 탐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배의 선장은 자신의 고집을 꺾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이후 뜨는 문구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여 보여준다.


그리하여 마음이 부서질지라도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본인의 장기를 다시 한번 발휘하여 일상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괴물이란 존재를 고딕 호러를 통해 문학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영화가 끝난 뒤 여전히 마음 깊이 남아 울리는 여운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은 11월 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팬이라면, 동명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마스터피스의 압도적인 경험은 오직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