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폰> 단평
※ <웨폰>의 스포일러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잭 크레거 감독의 <웨폰>이 10월 15일 바로 오늘 개봉하였다. 국내 개봉 전부터 로튼 토마토, 메타 크리틱 스코어 등 미국에서의 평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개인적으로 하반기 호러 영화 중 가장 손꼽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웨폰>은 미국의 어느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날 새벽,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같은 반 17명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학부모는 이 사건의 배후에 선생님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도 이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자신의 누명을 벗고 싶어 한다. 담임 선생님, 학부모, 교장 선생님, 그리고 홀로 남은 한 아이 등 아이들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드디어 사건의 실체에 다다르고 숨겨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실망한 부분은 분명 있었지만, 영화의 초중반까지 봤을 때 <웨폰>은 분명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한 인물의 이야기가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또한, 화자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 방식, 연출 방식이 서로 달라진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담임 선생님 저스틴의 이야기로 전개될 때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공포감을 자아내고,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 아처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는 추격 스릴러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가장 탁월하게 연출되었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바로 마약 중독자인 제임스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이다. 제임스가 경찰에게 걸려 달아날 때의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공포에 질려 자신의 텐트에 숨어 있다가 텐트의 지퍼가 열리는 연출은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심리 및 상태를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이야기의 시점에 따라 같은 인물이 서로 다르게 묘사되는 지점도 흥미롭다. 저스틴 시점에서 저스틴은 학부모들의 원성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아처의 시점에서 저스틴은 이전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던 너무나도 수상한 인물이다. 아처가 자신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들 매튜는 알렉스의 시점에서는 자신을 항상 괴롭히는 못된 아이일 뿐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동시에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 다른 면을 갖고 있는 인물들의 입체적인 모습은 각 인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감을 더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글래디스가 등장하면서 다소 힘이 빠진다. 글래디스가 알렉스의 집에 머물러 살게 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글래디스가 정확하게 누구이고, 왜 이러한 일을 벌이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마치 교통사고와 같이 갑자기 발생한 일처럼 글래디스의 악행을 묘사한다. 영화 초반 글래디스는 저스틴, 아처의 악몽 속에서 얼핏 묘사되기는 하나 후반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이 영화 속 모든 이야기를 해결하기 위해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점프스퀘어를 뒤틀어 클리셰를 깨는 연출들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고어 수위를 보여주었지만 글래디스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다소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좋았던 지점은 알렉스가 자신의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글래디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는 장면들이 아동학대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알렉스는 자신이 글래디스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경우 부모가 어떻게 될지 똑똑히 보았고 그의 말을 무조건 따른다. 아버지가 데려다주셨던 등하굣길을 혼자 다니고, 자신의 부모를 위해서 마트에서 혼자 엄청나게 많은 수프를 사다 먹이는 장면은 영화가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한 아이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공포 영화라는 장르 속에서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영화의 놀라운 지점은 글래디스 마녀의 최후이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공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알렉스는 기지를 발휘해 글래디스의 주술을 이용해 타깃을 글래디스로 바꾼다. 이에 알렉스의 집 지하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뛰쳐나와 글래디스를 일제히 추격하기 시작하고, 겁에 질린 채 도망 다니던 글래디스는 아이들에 붙잡혀 처리된다. 사실 아무리 잔인한 호러 영화라고 해도 영화 속에서 어린이가 살해되는 장면을 넣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이 영화는 이를 역이용하여 다수의 어린이가 악을 끔찍하게 처단하는 장면으로 호러 영화의 클리셰를 파괴해 버리는 파격적인 엔딩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웨폰>은 아쉬운 영화이다.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나 몇몇 호러적인 장면에 대한 연출이 좋았던 것만큼 마녀인 글래디스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좀 더 파격적인 연출을 했으면 어땠을까. 올해 가장 기대했던 호러 영화 중 한 편이었던 만큼 곱씹어볼수록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