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

<어쩔수가없다> 단평

by 송희운

※ 이 리뷰는 <어쩔수가없다>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지난 9월 24일 개봉하였다.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의 신작이기에 다소 기대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박쥐>, <아가씨>와 같은 이전작들처럼 '걸작'까지는 아니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라는 것이 처음 보고 났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25년의 제지 전문가 만수는 꿈에도 그리던 내 집 마련까지 이루고 앞으로 행복한 삶만 사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아내에게 금방 다시 직업을 구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구직기간은 점점 더 걸어져 1년에 이르게 된다. 집안이 어려워져 가족 같은 반려견 두 마리를 결국 시골로 보내게 되고, 자신이 어릴 적 살았다가 팔린 뒤 겨우 다시 구한 자신의 집마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만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려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구직은 쉽사리 잘 이뤄지지 않고, 결국 만수는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마련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스스로 자리를 찾는 방법에서부터 평범함을 거부한다. 만수는 자신보다 잘난 경쟁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유령 회사를 만들어서 그 회사에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지원자들 중에서 자신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만수는 이를 위해 발로 뛰고 동분서주하면서 아내에게는 이 행위를 ‘면접’이라고 말한다. 만수의 ‘면접’은 참으로 직관적이다. 흔히들 사회에서 말하는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비유적인 표현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정말로 경쟁자가 현실에서 제거된다.



이 경쟁자들은 하나같이 만수와 비슷한 위치에 처해있는 사람들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 업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회사에 필요 없어져서 회사에서 제거된 인물들. 해고된 이후에는 집안에서 필요 없어진 존재가 되었고, 다른 회사의 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과 비슷한 인물들은 없어져야만 한다. 처음 만수는 첫 번째 경쟁자인 범모에게 조금이나마 동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면접’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망설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특히 마지막으로 선출의 집에 가서는 그가 권하는 술에 ‘어쩔 수가 없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합리화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앓던 충치를 펜치로 뽑아버리고 선출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처럼 현장을 위장하기도 하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만수의 세 번의 '면접'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두 번째 고시조와의 면접이다. 고시조라는 캐릭터가 자체가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이 시체를 대하는 만수의 태도이다. 바닷가 바로 옆에서 고시조를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수는 그 시체를 자신의 집으로 갖고 와 마치 분재처럼 철사로 고정시켜 하나의 고깃덩이처럼 만든다. 다른 이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는 시체를 왜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집에 묻었을까?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만수는 자신의 처리한 경쟁자를 자신의 집에 있는 사과나무 밑에 묻음으로써 그 시체를 자신의 양분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러한 만수의 행위는 만수의 아내 미리와도 연결된다. 미리는 자신의 아들이 옥상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말을 통해 사과나무 밑을 파보고 그곳에서 만수가 어떠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미리는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만수의 행동을 묵인한다. 미리는 이미 이전 결혼에서 한번 실패를 경험한 인물이다. 만수는 첫째 아들인 시원이 친아들이 아님에도 자신의 아들로 품어준 인물이고, 자신의 이전 결혼에 대해서도 흠을 잡지 않은 인물이다. 미리의 입장에서는 단 한 번만 눈을 감으면 만수와의 결혼 생활을 '행복한 것처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만수의 입장은 미리에게도 전염되어, 미리도 만수의 오점을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합리화하게 만든다.


결국 만수는 모든 경쟁자들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새로운 제지 회사로 취업을 성공한다. 새로운 제지 회사에서 만수가 하는 일은 AI 프로그램이 알아서 잘 돌아가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도 만수의 결말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시대에서 만수가 어렵사리 다시 얻은 일자리는 언제든 자동화된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면접에서 다른 직원이 일일이 나무막대로 치면서 종이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만수는 자신이 새롭게 취업한 곳에서도 종이를 나무막대로 치면서 확인하려고 한다. 새로운 직장에서도 이전 자신의 습성을 포기하지 못한 만수의 모습은 언젠가 또다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쩔수가없다>의 엔딩에서 인간들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삼림을 마구 파괴하는 모습은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는 만수의 모습과 닮아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파괴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자연이건, 같은 인간이건 말이다. 만수의 아버지는 돼지 농장을 하다가 돼지병에 걸린 돼지들을 한꺼번에 살처분시킨 뒤 정신 이상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만수는 그저 동물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경쟁자’를 제거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의 살인까지 침묵해야 하는 상황. 이러한 끔찍한 상황들 위에서만이 가족의 행복이 유지될 수 있는 아이러니. 기존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도 이러한 아이러니는 존재해 왔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아이러니의 깊이가 달라지고 조금 더 블랙 코미디의 요소가 강화되었다. (특히 범모와 아라, 만수가 벌이는 육탄전은 정말 박찬욱 감독의 모든 영화 중 가장 대폭소하면서 본 씬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기존 팬들에게는 이 영화가 다소 얕아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얕아 보임으로써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더욱 많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은 아닐지언정,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순수하게 보는 재미가 돋보이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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