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향을 기억하는 방식

딥티크 34번가 생제르망 오드뚜왈렛, BDK 312 생또노레 오드퍼퓸

by 송희운


공간은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풍경으로 기억될 수 있고, 혹은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의 감정으로도 기억될 수 있다. 때로 공간은 향으로 기억되기도 하는데, 그 공간에서 나는 향이 인상 깊었다면 이후 같은 향을 맡았을 때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에 ‘향’을 판매하는 향수 매장에서는 어떠한 향이 나는지 제일 중요하게 여길 듯하다. 주로 백화점이나 인터넷으로 향수를 구매해 오던 나는 선물 받은 향수를 다른 향수로 교환하기 위해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다. 매장에서 딥티크의 수많은 제품들의 향을 맡아봤었지만 딱 이거다! 하고 꽂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딥티크 특유의 바틀 디자인과는 다른 바틀의 향수를 하나 발견했다. 기존 바틀 모양과 달리 길쭉한 원통 모양의 바틀 위에는 34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향수를 보고 시향을 요청했는데, 맡아보는 순간 바로 이 향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향수의 이름은 ‘딥티크 오드뚜왈렛 34번가 생제르망’이었고, 현재 딥티크 플래그십 매장에서도 나고 있는 향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프랑스 파리 34번가에 있는 딥티크 부티크에서 영감을 받은 향으로 직원분의 말로는 판매하는 나라도 많지 않고, 우리나라 백화점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플래그십 스토어에만 들어와 있는 듯했다.


파리의 매장에서 나는 향이라니! 향 자체도 호감이었지만, 이 향수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듣자 더욱 호감이 생겼다. 34번가 생제르망은 블랙 커런트의 달달함으로 시작하지만, 단순히 달달함만 갖고 있지는 않다. 카다멈, 제라늄과 같은 향이 섞여 오리엔탈적인 느낌을 구현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제라늄 향을 좋아하는 편인데, 플로럴이며서도 묘하게 허브가 섞인 알싸한 느낌이 중성적인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듯하다. 이러한 향들이 섞이면서 오드뜨왈렛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지속력이 오래가고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지는 느낌은 아니다. 공식홈에서는 딥티크 매장의 모든 향초와 향수의 향기를 모아 만든 만화경 같은 향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공간을 가지 못하고 향만 맡아본 사람으로서는 그 공간을 직접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딥티크의 34번가 생제르망 외에도 부티크의 영감을 받아 제작된 향수가 있는데, BDK의 312 생또노레이다. 생또노레에 있는 BDK의 부티크는 파리에서 첫 번째로 오픈한 부티크로 이 향수는 해당 거리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재인 유리, 콘크리트, 화이트 버건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생또노레의 메인은 핑크 페퍼콘인데 개인적으로 착향 했을 때는 베이스에 있는 암브록산이 가장 잘 올라왔다. 흔히 살냄새로 화자 되는 암브록산이 도시의 콘크리트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향으로 쓰인 듯한데, 마냥 어두운 회색 도시가 아닌 살짝 화사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도시의 일면을 표현하는 듯하다. 암브록산의 대명사로 불리는 르라보의 어나더 13은 개인적으로 정말 안 맞는 느낌인데 핑크 페퍼, 머스크가 함께 결합된 생또노레는 아주 마음에 들었고 가장 선호하는 향 중에 하나가 되었다. 착향 했을 때는 오렌지 블러썸의 꽃향이 미묘하게 올라와 콘크리트 도시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도 살짝 생기 있는 일면을 꽃이라는 화사함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각 브랜드의 매장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두 향수의 향이 너무나 다른 것처럼 각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게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딥티크는 매장 자체가 주는 느낌처럼 따뜻하고 아늑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진중한 느낌을 풍기고 있고, BDK는 딥티크에 비해서는 최근 들어 만들어진 브랜드인 만큼 세련된 도시의 트렌디한 매장의 전경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 각각 다른 두 향은 내게 있어서 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보통 공간에 먼저 방문한 뒤, 그 공간을 향으로 기억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해당 공간에 들어간 것이 아닌, 그 공간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된 향수들을 먼저 맡아본 나로서는 매장의 사진과 향수의 향을 매치시키며 그 공간을 실제로 방문했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향으로 구현된 그 공간들이 더욱 궁금해지고, 실제로 방문했을 때 그 향이 나에게 어떻게 다시 새롭게 다가올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