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라는 이름의 매니악

스토라 스쿠간의 문밀크

by 송희운


이전에 리퀴드 퍼퓸바에서 진행하는 도슨트 투어를 다녀온 뒤, 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깊이 인식된 향수 브랜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토라 스쿠간이었다.


SNS를 통해서 어렴풋이 존재만 인지하고 있었던 브랜드였기에 리퀴드 퍼퓸바 도슨트 투어에서 가장 궁금했던 브랜드의 향들을 실컷 경험하고 왔다. 사실 이 스토라 스쿠간은 우리나라 향수 시장에서 메인 스트림에 오를 만큼 대중적인 취향을 담고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브랜드 자체가 디자인 학교에 재학 중이던 다섯 명 예술가들의 협업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만큼, 향 자체가 실험적인 면모를 많이 띈다. 이 브랜드의 여러 향들을 맡아보았는데 대부분의 향들은 뿌리고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말 그대로 매니악한 향들이 가득했다. 독특한 병 모양에서부터 관심이 생긴 브랜드였는데, 막상 그 향의 독특함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딱 하나 마음이 가는 향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문밀크’였다.



때 마침 생일이 다가오는지라 마음에 드는 향수를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펜할리곤스의 미스터 톰슨과 스토라 스쿠간의 문밀크 중에 고민을 하던 중 결국 문밀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내가 뿌리고 다닐 범주에 들어오는 독특한 향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이 ‘문밀크’는 특정 석회암 동굴에서 형성되는 흰색 크림 같은 자연 물질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16세기 스위스의 유명한 자연학자 콘라드 게스너가 그의 저서를 통해 이를 묘사한 바 있다.


밤이 되면 달빛이 동굴 안으로 너무도 밝게 스며들어,
그 빛 자체가 마치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안개처럼 말이다.
그 빛은 천장에 모여 석회암 종유석들을 반짝이게 하고 빛나게 하며,
마르지 않는 바위 바닥의 웅덩이로 흰 액체의 눈물을 똑똑 떨어뜨린다.
출처 : www.storaskuggan.com



여기서부터 영감을 받은 문밀크는 처음에 블랙티로 포문을 연다. 이는 가향 홍차에서 느껴지는 달콤 쌉쌀함이 아닌, 홍차 그 자체의 쌉쌀함이다. 탑노트에 포함된 라임은 다른 이에게는 상큼함으로 다가왔지만, 내게는 상큼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고 전반적으로 스파이시 우디함에 가까웠다. 이 우디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다듬어지고 정제된 나무 향이 아니라, 비에 젖은 숲 속을 방황하면서 맡을 수 있는 나무껍질의 냄새에 가깝다. 이러한 자연적인 향에 미들노트에 포함된 카다멈이 더해져 스파이시한 우디로 완성된다. 이름만 보고 ‘크리미 하고 스위트한 향’을 생각하여 시향 한다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스파이시 우디 어디에서도 부드러움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토라 스쿠간 브랜드의 다른 향들을 맡아보았을 때도 어딘가 모르게 약초 향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는데, 이 향들도 사람들이 맡게 가공한 향이라기보다는 정말 자연 그 자체의 향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 브랜드의 지향점이 인공적으로 정제된 느낌이 아닌 자연물 그대로 날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 강한 듯하다.



같은 블랙티를 메인으로 하고 있는 향수인 BDK 그리 샤르넬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BDK의 그리 샤르넬이 무화과+블랙티+카다멈의 조합으로 달콤한 도시적인 세련됨을 가진 스파이시 우디라면, 문밀크는 자연이 품고 있는 스파이시 우디에 가깝다. 그리 샤르넬이 대중성 속의 매니악이라면, 문밀크는 매니악 속의 대중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이름이지만, 이름이 주는 느낌을 향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에 처음에는 이 향수의 이름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착향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부드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밀키 하거나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부드러움이 아닌,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이따금씩 느껴지는 편안한 부드러움이다. 미들노트에 있는 은방울꽃이 자연적인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어둠 속에서 등불이 켜진 듯한 차분한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스토라 스쿠간의 다양한 향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문밀크‘이지만, 이 대중성은 모든 이들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르라보의 어나더처럼 향에게 선택을 받아야 뿌릴 수 있는 향도 아니다. 향의 범주를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 도전해 보라고 권해보고 싶은 향수이다.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실패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성공한다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향의 또 다른 지경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