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으로 조우한 미지의 장소

리셉터 - 토포스

by 송희운



예전에 트위터(현 X)에서 다소 독특한 모양의 시향지를 접한 적이 있었다. 평평한 종이로 되어있지만, 잘 접으면 반지가 되는 시향지는 시향지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인식시켜 주었다. 그 브랜드에 대해서 언젠가는 꼭 향을 맡아봐야지 하고 기억 속에 잠시 보관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브랜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브랜드의 이름은 리셉터(receptor)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브랜드의 이름은 인체의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세포에서부터 출발한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상상과 감각을 향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브랜드 명의 기본적인 뜻 외에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새롭게 받아들이는 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리셉터에서 처음 접한 향은 토포스이다. 토포스의 향 구성은 굉장히 독특하다.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탑 노트에 위치한 미네랄과 오존이다. 정말로 이런 향이 있는 것일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챗지피티에게 약간 도움을 요청했다. 검색해서 확인해 보니 실제로 있는 물질에서 향을 채취한 것이 아니라 미네랄은 염분의 느낌을, 오존은 마린과 아쿠아틱과 같은 계열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토포스의 시작은 평범하지 않다. 미네랄과 오존이라는 향의 표현이 흙의 느낌을 표현한 듯한데, 아무도 없는 태초의 자연에 첫 발을 내디딘 느낌보다는 마치 광활한 우주 속 아무도 밟지 않은 미지의 행성에 첫 발을 내딛을 때 나는 향을 표현하는 느낌에 가깝다. 자연적인 느낌은 분명 있지만 조금 더 낯선 자연의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미들 노트에서는 코스투스와 감초가 보이는데, 이 토프스의 핵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 감초가 아닐까 한다. 감초는 어린 시절 한약을 먹은 뒤 쓴 입맛을 달래는 용도로 씹어먹고는 했는데, 이렇게 향으로 만나니 낯설면서도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아내는 느낌이다. 미네랄, 오존과 같은 독특한 향에서 시작하다가 중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감초는 달큰하지만 인공적인 달달함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달콤함에 가깝다. 광물이라는 향수의 첫 시작을 이 감초가 중화시켜 주면서 베이스 노트로 넘어간다.


마지막에는 베티버, 패출리, 오우드로 마무리된다. 우디 계열의 향수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오우드를 쓰는 향수는 거의 맡아보지 못한 편이다. 우디 중에서도 다크한 우디를 표현하는 오우드가 베이스에 위치하면서 처음에 우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차분하게 지구로 안착시켜 주며 마무리한다.



토포스의 향을 맡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그리스어로 장소와 대지를 뜻하는 이 향수의 이름과 향수의 향이 정말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광물과 약초라는 낯선 조합은 세상의 다양한 향수들 중에서도 참 찾아보기 어려운 조합인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조합이 태어나서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장소를 미리 가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기에 낯선 장소에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이 향수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흔한 향수의 문법을 따라가지 않는 매니악한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 매니악이 단순히 소수 사람들만 좋아하는 매니악함이 아닌, 다름 사람들과 쉽게 겹쳐지지 않을 자신의 인장과도 같은 독특한 향을 찾는 이들에게 맞는 매니악처럼 보인다. 이러한 유니크함을 찾는다면, 리셉터의 토포스를 꼭 맡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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