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의 일생> 단평
※ 이 리뷰는 <척의 일생>의 스포일러, 결말에 대해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과 마이크 플래너건. 이 두 거장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르는 단연 공포 영화이다. 이 두 거장이 함께 만난 작품인 <척의 일생>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하였다. 다만 이번에는 호러가 아닌, 판타지를 곁들인 드라마이다.
스티븐 킹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척의 일생>은 총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ACT THREE 고마웠어요 척, ACT TWO 버스커여 영원하라, ACT ONE 나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포칼립스적인 면모를 띤다. 교사인 마티는 수업을 하던 중 캘리포니아에서 큰 지진이 나고 인터넷이 갑자기 먹통이 되어 버리는 것을 목격한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이제는 모든 방송마저 중단되고, 세계는 점점 더 멸망을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티의 전부인 펠리시아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이상한 징후를 목격한다. 모든 환자가 병원을 나가 버리고, 그 병원에 남아 있는 심박층정기에서는 환자가 없는데도 심장이 뛰는 것처럼 움직인다. 결국 세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별들마저 사라지는 순간, 마티와 펠리시아는 함께 최후를 맞이하며 끝이 난다. 이후 두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해서 등장했던 척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특이하게도 척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 시간순서대로가 아닌, 거꾸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특히 가장 독특한 지점은 영화가 가장 먼저 보여준 세 번째 막인 ‘고마웠어요 척’이다. 별들마저 사라지는 다소 공포스러운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던 이야기 속에서 두 주인공은 사랑한다는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끝을 맞이한다. 모든 인물이 죽은 것처럼 보인 뒤 등장한 이야기는 그전 이야기 속에서 등장했던 척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척의 삶에서 잠깐 동안 기억될 만한 버스킹에 관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이야기에 다다르서야 척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영화가 왜 이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는지 드러난다.
처음 등장했던 아포칼립스적인 이야기는 척이라는 인물의 내면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였다. 마티와 펠리시아는 모두 실존하는 인물이지만, 척의 내면 속에서 이들은 또 다른 세계의 등장인물이 된다. 마티는 현실과 동일하게 교사를 하고 있지만, 펠리시아는 간호사가 아닌 마티의 동료 교사이다. 마티가 전부인에게 가던 중 만난 장의사는 척의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준 사람이고, 스케이트를 타는 여자아이는 척이 버스킹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던 중 스쳐 지나간 여자아이였다. 척이라는 인물의 우주가 사라지는 순간, 이 결말은 다소 급작스럽고 공포스럽게 보이지만 영화의 엔딩에 이르렀을 때 척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가장 마지막에 드러난 첫 번째 이야기에서 두 번째 이야기의 척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척은 춤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남자였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현실적인 조언에 따라 회계사가 된다. 그는 분명 수학에 재능이 있었고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늘 춤에 대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리에서 들은 즉흥 연주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이 먼저 반응했고, 자신과 함께 춤을 출 파트너를 즉석에서 찾아 거리에서 멋진 공연을 펼친다.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다가온 마법 같은 순간은 척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고, 공연이 끝난 뒤 흘러나오는 척의 죽음을 암시하는 나레이션은 삶의 아름다움 이면에 있는 비극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엔딩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이야기는 척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비극으로 가득 찼는지 보여준다.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태어날 여동생까지 한 번에 잃은 척은 조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한다. 비록 슬픔에 젖어있던 순간이 있었지만 척은 조부모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춤을 사랑하는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춤 동아리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 이후 댄스파티에서 보여준 실력으로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는다. 이때 척의 집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다락방이다. 굳게 닫힌 문은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척은 홀로 잠든 할아버지에게서 열쇠를 훔쳐 문을 연다. 척을 다락방 앞에서 밀쳐낸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보고 크게 충격받고, 이후 정신을 차려 놀란 척을 위로한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뒤, 외조부모님이 오시기 전 척은 할아버지의 유품에서 열쇠를 들고 올라가 다락방문을 연다. 밝은 빛이 비치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이내 심박층정기 소리가 들리고 척이 뒤를 돌아보자 병상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이내 척은 할아버지가 다락방에서 본 것이 다른 이들의 죽음이었고, 그가 마지막에 본 모습이 자신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척은 그 모습을 보고 “삶이 끝날 때까지 내 삶을 살 거야. 나는 경이로워. 나는 많은 것을 품고 있어. “라고 말하며 문을 닫고 영화는 끝이 난다.
흔히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우주가 있다고 표현하면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의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고는 한다. <척의 일생>은 이를 온전히 체험하게 하는 영화이다. 초반에 아스러진 하나의 우주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그리고 그 삶 안에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는지 마지막에는 끝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 것인지. 역순으로 재생된 영화의 이야기는 영화를 본 관객의 내면에서 곱씹어지며 순서대로 재생된다. 자신의 끝을 알면서도 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고 이를 통해 완성된 우주가 비록 끝이라는 비극을 맞이하더라도 그 삶 자체가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척의 일생>은 단순히 말로만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하지 않고, 우주 속에서 찰나에 불과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는지 직접 경험하게 한다.
공포라는 극한의 감정 속에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드라마를 담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척의 일생>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추운 계절 속에서도 느껴지는 연말의 따스함을 만날 수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 이 영화를 통해 무엇보다 오래 마음에 남을 위로를 만나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