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 단평
※ 이 리뷰는 <시라트>의 결말과 스포일러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꼭 영화를 관람한 뒤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5년부터 기다려왔던 <시라트>가 드디어 개봉했다. 작년 수많은 이들로부터 2025년도 최고의 영화 중 한 작품으로 손꼽혀왔던 이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스피커 옆에 작게 위치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강렬한 포스터와 어떤 아버지가 사막의 레이브 파티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뿐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관람했던 영화는 절반 좀 안 되는 시간까지는 살짝 지루함마저 느껴졌지만, 그 이후 시간부터는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시라트>는 사막에서 거대한 스피커를 설치하며 레이브 파티를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웅장하고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레이브 파티의 모습은 이 영화의 공개된 스토리를 예측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레이브 파티에서 춤추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행방불명된 딸을 찾으려 하는 루이스와 루이스의 아들 에스테반이 드러난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았던 레이브 파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군대로 인해 해산된다. 그러던 중 두 차가 무리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질주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따라가면 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루이스도 그들을 따라간다. 또 다른 레이브 파티를 가기 위해 레이버들과 기묘한 사막 횡단을 하기 시작하면서 루이스의 앞길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까지 영화의 스토리를 보았을 때, 낯선 이들과 동행하는 로드 무비를 떠올리기 쉽다. 영화는 이러한 로드 무비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이야기 속에서 레이버들과 루이스, 에스테반 부자의 서로 다른 모습이 드러나게 하고 서로 부딪혔던 이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동화되는지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평범한 사람들과 매우 다른 레이버들의 모습으로 인해 루이스는 처음에는 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꺼려하지만, 레이버들이 자신의 반려견을 찾아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루이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들과의 여행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한다. 딱하긴 해도 낯선 이들은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던 레이버들은 자신들의 기름값에 보태주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루이스의 모습을 보며 루이스와 에스테반을 마치 가족처럼 챙겨주기 시작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변모하는 시점은 에스테반의 죽음 이후부터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영화는 늘 불길한 전쟁의 기운을 암시하고 있었다. 처음 레이브 파티에 들이닥친 군인들부터 시작해서 레이버와 루이스 부자가 여행을 떠날 때 주유소 앞으로 길게 늘어선 피난 행렬과 라디오에서 전쟁 관련 뉴스가 들리자 꺼버리는 레이버들의 모습은 이들의 현실 속에서 전쟁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이들은 이러한 징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묵살한다. 가까운 곳에서 이미 징후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현실 속 삶과 전쟁은 자신들이 평소에 전쟁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처럼 멀리 동떨어져 있다고 인지한다.
이러던 이들의 여정 속에서 에스테반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높은 산을 넘어가던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맞이한 에스테반의 죽음은 처음에는 전쟁과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에스테반의 죽음 이후 평지로 나오고 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평지에서 자포자기하는 듯한 심정으로 레이브 파티처럼 음악을 틀기 시작했을 때 또다시 나타난 죽음은 이것이 전쟁으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상기시킨다. 말라붙은 사막 한가운데 숨겨진 지뢰로 인해 맞이한 레이버들의 죽음은 이들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전쟁의 한복판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단순한 사고처럼 보였던 에스테반의 죽음은 말라붙은 사막 한가운데 숨겨진 지뢰로 레이버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한 이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끝을 알 수 없이 아무런 예고 없이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해 버리는 전쟁의 민낯이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다. 전쟁은 타인의 일이라 믿었던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고, 이들의 여정은 더 이상 로드무비가 아닌 생존을 위한 스릴러로 변모한다.
특히 이 영화 속에서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갖는 것은 사막 위 벌어지는 레이브 파티의 둥둥거리는 거대한 사운드이다. DJ들이 만들어내는 전자 음악 중심의 사운드는 처음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게 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드러낼 때, 사막 한가운데 전자 음악 뒤로 이어지는 지뢰가 폭발하는 사운드는 두 소리 간의 괴리를 극대화한다. 향락을 위한 소리 뒤로 이어지는 죽음으로 추락하는 소리. 사뭇 건조하기까지 느껴지는 초반 일렉트릭 사운드가 거대한 폭발음과 이어질 때, 영화는 두 소리의 간극을 통해 전쟁의 지옥을 화면 속에서 재현한다.
영화는 이야기의 극적인 전환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인 루이스와 레이버들뿐만 아니라, 화면 너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까지 얼마나 전쟁에 무감각해져 있는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충격만큼이나 관객들이 영화를 경험하며 느끼는 엄청난 충격은 전쟁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킨다. 단 세 명만이 남게 된 이야기의 끝에 이르기 전, 영화는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사막을 마음껏 달리는 차들의 모습 사이로 기차에서 내려다본 기찻길을 잠시 비춘다. 선택 없이 이어지는 이 기찻길은 처음에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엔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피난민들 사이에서 피난민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낸다. 이들의 삶은 결코 전쟁 이전의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시라트>는 관객들에게 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묻지 않는다. 다만, 등장인물들과 함께 관객들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들고 그 이야기 속에서 거대한 변칙과 충격을 주며 전쟁을 알지 못한 이들에게 전쟁에서 사는 지옥을 경험하게 한다. 전쟁이 끔찍하다고 말하는 대신 그 끔찍함의 한복판으로 직접 들어오게 하는 것, 그만큼 강렬한 영화적 경험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