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임> 단평
※ <차임>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차임>이 국내 개봉하였다. 2024년에 제작된 45분 정도의 중편이나, 국내에서는 기자와의 30분간 대담을 붙여 총 75분으로 상영한다. 국내에서 오랜만에 개봉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이다 보니 망설임 없이 관람하러 갔다.
<차임>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하다. 요리 교실의 강사로 일하고 있던 마츠오카는 자신의 수강생 한 명이 계속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차임벨이 울린다는 말을 하던 수강생은 결국 요리 교실에서 충격적인 행동을 보이며 자살한다. 그 뒤로 마츠오카도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며 그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차임>은 여러모로 <큐어>가 많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대도시의 모습, 살인이 일어나리라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이뤄지는 살인의 현장들, 한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에게로 전염되는 증오와 악의 등. <큐어> 속에서 묘사되었던 많은 부분들과 유사한 지점을 지니지만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면 <차임>이 조금 더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며 마치 스테인리스와 같은 차가운 금속성 같은 느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수강생의 광기를 이어받은 마츠오카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한다.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레스토랑 면접을 망쳐버리고, 급기야 자신의 요리교실 수강생의 이상한 말을 참지 못하고 살인까지 저질러 버린다. 마츠오카가 시체를 숨긴 뒤 어느 시골 숲이 우거진 강가 근처에서 다리를 건너가며 뛰어가는 모습은 마츠오카라는 인물이 이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차임>에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이러한 광기와 공포의 근원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 수강생의 모습이 드러날 때도 그의 기이한 모습만 드러날 뿐, 왜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눈앞에서 수강생의 자살을 목격한 마츠오카도 왜 그러한 변화를 겪는지 뚜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 현상만은 뚜렷이 드러나는데, 수강생의 정신이 무너지고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은 요리교실에 있는 수강생 뒤로 기차의 빛이 지나가는 장면이다. 실제로 기차가 지나가는 곳 바로 옆에 있는 요리교실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기차의 빛이 지나가면서 수강생을 비추고 수강생 뒤로 빛과 그림자가 드러났다 사라지며 일렁이는 모습은 어떠한 경계를 넘어서 버린 인간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무너진 인간의 정신은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잔인성을 꺼내 보인다. 마츠오카는 자신의 수강생을 아무렇지 않게 칼로 찔러 살해하고, 화면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봉지에 가득 찬 캔을 시끄러운 소리로 버리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아내까지 살인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의 경계를 넘어선 인간은 마침내 궁극적인 한계까지 넘어서버린다.
엔딩에 이르러 마츠오카는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 차임벨을 누르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간다. 이때 그가 나간 밖은 다른 질감으로 촬영된 화면으로 자글거리는 노이즈가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바깥에서 잠시 헤매던 마츠오카는 이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집안에 빛이 비치는 공간으로 걸어간다. 영화는 끝나기 직전 마츠오카가 문을 닫고 들어간 현관과 그 집 앞에 있는 흰꽃을 비춘다. 마츠오카의 집은 마치 마츠오카의 내면을 상징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츠오카에게 있어 바깥은 이제 현실이 아닌 비현실적인 세계가 되었고,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이제 그 집 즉 자신의 내면세계이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미묘하게 흐르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나무의 흰 꽃은 마츠오카가 이제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4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그동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쌓아왔던 세계를 한 번에 응축해서 보는 듯한 단편이었다. 영화 자체는 만족스러웠지만, 상영 전 영화의 실제 러닝타임을 고지해 놓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임>을 보는 관객이라면 기자와의 대담도 괜찮겠지만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