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잭의 집> 단평
※ <살인마 잭의 집> 엔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살인마 잭의 집>.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불쾌한 포인트는 여성과 어린아이에 대한 무자비한 살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성의 살인 장면을 유난히 과하게 부각하여 보여주는 포인트뿐만 아니라, 살인을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예술로 다루는 감독의 태도에 오히려 불쾌감을 느꼈다.
이 영화는 과거 <악마를 보았다>와 비슷한 기시감을 갖게 한다. 아니, 오히려 이 영화가 한층 더 불쾌하다. <악마를 보았다>는 장르 영화와 작가주의 영화 사이에서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던 영화였다면, <살인마 잭의 집>은 이보다 더욱 고약하게 살인을 예술의 한 행위로 포함시키려 한다. 장르 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살인에 대한 길티 플레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그렇게 했다면 장르 영화라는 틀 안에서 그럴 수 있다고 납득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정작 관객들이 보게 되는 것은 살인마의 장황한 예술론이고, 더군다나 그 예술론을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시키려 한다. 영화 속 살인마 잭은 단순히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살인이 또 하나의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라스 폰 트리에의 극 중 화자가 된다.
지옥으로 내려가는 살인마 잭과 그를 지옥으로 안내하는 버지는 마치 단테 [신곡]의 악한 버전과도 같아 보인다. 잭은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면서 영화 속에서 이뤄진 살인의 모든 행위들을 마치 하나의 예술품을 풀이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어린아이 둘을 죽인 뒤 그 아이들의 엄마와 식사하는 장면, 아이들의 엄마까지 죽인 뒤 나무로 된 프레임 속에 시체들을 안치한 장면, 살인할 때마다 계속해서 남기는 사진, 시체로 만든 집, 지옥으로 내려가는 여정 등. 잭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그는 지옥의 가장 깊은 층으로 떨어지지만 그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단죄처럼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옥의 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잭의 뒷모습은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을 연상시키며 결론적으로는 그를 순교한 예술가의 이미지로 위치시킨다. 살인에 대한 옹호가 이 영화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태도가 영화를 더욱 불쾌하게 만든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어둠 속의 댄서>,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 등 을 만들면서 가장 논쟁적인 예술가로 불렸던 그의 작품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