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더스내치>에 대한 단평
※ <밴더스내치>의 엔딩에 대한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블랙 미러의 <밴더스내치>의 선택지는 소소한 것에서부터 인간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게 되어 있다.(선택에 따라 플레이어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의 다양함이 아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인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어 공포스럽게 만든다.
H.P 러브크래프트와 같은 류의 고딕 호러 소설 속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악한 것(‘크툴루’와 같은)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공포가 되었다. <밴더스내치>도 공포의 근간은 거의 유사한 양상을 띄지만 이 공포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밴더스내치>의 공포는 자기 자신보다 더욱 큰 존재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며,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대상은 나의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조종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는 내가 익숙하고 스스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대상들인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기 등의 기기로까지 확장된다.
<밴더스내치>의 하루는 언제까지나 무한정으로 반복할 수 있다. 그것은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엔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지치지 않는 한, 영화 속에서 버틀러의 행동을 계속해서 선택할 수 있다.(공식적으로 알려진 엔딩은 총 다섯 가지이지만, 알려진 엔딩은 약 10~12개 정도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이를 관객이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라고 칭하는 이유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을 맡기는 수동적인 형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행동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즉, 게임의 참여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바로 <밴더스내치>의 독특한 지점인데, 인터랙티브 필름을 표방하여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과연 이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단순히 프로그래밍화된 시스템 속에서 제한된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환각에 빠진 버틀러가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지 누군가가 자신의 선택을 조종하는지 혼란스러워했던 것처럼 플레이어도 버틀러와 똑같은 상태에 놓인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번 플레이하는 순간 <밴더스내치>의 게임 안에 있는 것처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필자는 총 3개의 엔딩을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엔딩은 21세기에 게임을 다시 리메이크하는 엔딩이었다. 개발자가 게임을 분석하다가 오류가 나는데, 이때 컴퓨터를 부실 것인지 컴퓨터에 차를 쏟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가 나온다. 이 엔딩에서 버틀러-플레이어-개발자는 모두 동일선상에 놓인다. <밴더스내치>를 트는 순간, 플레이어는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닌 플롯의 일부로 <밴더스내치>의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과 자만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 <밴더스내치>라는 거대한 미궁에서 괴물은 PAC나 PAX가 아닌 버틀러가 돼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그 괴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