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댄서> 단평
흔히 영화 속에서 환상 장면은 암담한 현실과 대조되어 더욱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는 절대로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하여 환상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어둠 속의 댄서> 속 환상 장면도 그렇다. 단 다른 작품들과 비견되는 특징이 있다면 <어둠 속의 댄서>에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참담하고 비극적으로 크게 다가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커다란 간극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슬픔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어둠 속의 댄서>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뮤지컬 장면은 셀마가 자신의 끔찍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만든 환상들이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셀마의 모습들을 비추던 현실과는 다르게, 이 환상 속에서 셀마는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독특한 음색으로 자신의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노래한다. 이러한 현실과 환상 사이 절대로 좁혀질 수 간극은 기묘하게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어떤 완성되고 매끄러운 것으로부터 자아내는 아름다움이 아닌, 불균질적이고 추한 것으로부터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그 감정은 모든 이들이 겪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원색적으로 빛나는 화면, 독특한 음악(특히 뷔욕의 음악은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과 어우러져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 <어둠 속의 댄서>는 비극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며, 오히려 한 인물을 파국을 향해 깊게 내몰아가며 극단적인 끝에 내몰렸을 때 피어오르는 비극의 아름다움을 꺼내어 보이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봤을 때 모든 이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영화적 형식에 대한 불편함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영화를 둘러싼 진실이 드러난 이후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마냥 편하지 만은 않았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본 이후에도 느꼈지만 예술적인 완성도와 영화 밖 개인의 과오를 동일선상으로 놓고 봐야 할 것인가 여전히 많은 고민이 들지만, 예술적인 완성도를 논하기 이전에 영화를 만든 개인의 범죄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잘 만들어진 <어둠 속의 댄서>가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