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추처럼

스승의 날, 예전 학생과 주고 받은 편지 (애니메이션 「시계추」를 보고)

by 박정호

[1] 프롤로그: [제목 없음] MMS

늘 묵직하게 반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보듬어주시고 신경써주신 덕분에 선생님 제자로 있는 1년 동안 아낌없는 스승의 사랑에 대해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부족함 많은 실장이었지만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제가 1년 동안 실장으로서의 역할을 그나마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신 가르침 잊지 않고 사회에서도 더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다음에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찾아뵐게요! 늘 건강 유의하세요. 감사해요 선생님 ☺️

- 2025.5.15. 어떤 문자의 일부

[2] 답신


유란이 오랜만에 소식을 들으니 반갑고 좋구나.

나의 제자라는 말에 부끄러우면서도 전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워서 편지처럼 닿은 문자를 한참 읽고, 또 몇 번 거듭 읽었다.

내가 유란이의 담임이었을 때가 2016년이니 강산이 거의 한 번 변했을, 10년 가까운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너희들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룬 것도 변한 것도 없이 세월을 허송하여 그대로인 듯한데 너희들은 사회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제 몫을 해나가는 것을 보며 대견함을 느낀다.

학교 밖의 일에는 문외한이라 잘 알지 못하지만, 직장이 강남에 있는 광고 회사라면 업무의 양이나 영향력이 적지 않겠구나. 게다가 그 일이 기획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이.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하겠다며 당차게 포부를 밝히던 꿈과 결이 비슷한 생활에 뿌리내렸다니 대단한 성취다. 불투명한 미래에 인생을 걸어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너의 선택과 그 여정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감히 부럽고, 또 존경스럽구나. 앞으로도 그런 성취를 더해가기 바란다.

유란이가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다하고 사는 데에 나의 몫이 컸다고 얘기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구나. 유란이의 성취와 성장은 오롯이 유란이의 몫인 줄 알면서도, 뜻깊은 날 전해진 따뜻한 말이 대단한 위로와 격려가 된다. 성심이 곱고 아름다운 학생들을 만나서 덕을 본 이는 오히려 나였거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인사를 받고 사니 이만한 호사가 없다.

내가 교직에 머물러 미약하나마 열의를 갖고 선생 노릇을 하는 데에는 너희들과의 시간이 가장 주요했으니, 도움을 받은 것은 오히려 나다. 유란이의 문자를 받고 너희와 만들었던 문집을 읽으니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느낀다. 문집의 머리말에 나는 아래와 같은 문장을 썼구나.

(문집 인용) 올 한 해 내도록 즐거웠지만, 벚꽃 필 무렵부터 여름이 오기까지는 특히나 좋은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무렵의 나는 요사이 몇 년 가운데 가장 많이 웃었고,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서른을 봄 같은 시간으로 만들어 준 우리 2학년 7반 공주들이 무척이나 고맙고 고맙다는 생각이다. 너희들이나 너희들과 같이한 시간이 나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아흔 혹은 온 백 살을 산다면, 그래서 나의 삶을 1년의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너희와 함께 한 서른즈음은 꼭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의 기간이더구나. 우연의 일치겠지만 나의 서른은 정말이지 봄 같고 또 벚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와 같은 아름다움으로 나의 삶이 눈부시고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아마 늙어서도 자랑처럼 그때의 봄을 반추하고 웃음 짓지 않을까 싶다. 꽃답게 예쁜 학생이었어서, 지금은 부끄럽지 않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고맙다.

유란이가 물은 안부에 대답을 하자면, 나는 무탈하다. 내 삶에 찾아드는 변화라고는 오로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고, 늙어감에 따라 기대되는 사회적 과업들을 밟아가는 것이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며 산다. 그것 하나만큼은 나도 대견하다만, 결혼과 육아의 공은 아내의 몫이니 나를 자랑할 일은 못 되는 듯싶다.

무탈한 삶 속에서 단 하나의 탈이 있다면, 바로 무탈함인 듯싶다. 나는 무탈함이 권태롭고 부끄러워서, 요즘에는 몇 가지 일을 벌여 본다. 마흔 전에는 책을 내보려고 글을 쓰는 모임에 다니고 있고, 학교 일도 잘해보려고 훌륭한 선생님들을 따라 수업을 배우는 모임, 진학지도를 배우는 모임에 다녀 본다. 잘하고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유란이가 안부를 물었을 때, 이렇게 무엇이나마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여러 구실로 너희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너희들과 조우하는 어떤 미래에는, 너희도 나도 더 행복한 인간, 그리고 나은 인간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고. 나는 그 약속 같은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 행복한 인간, 나은 인간의 주어에 너희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이유는,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고 싶어서였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어느 수필*의 결말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나는 너희들에게 준 것보다는 받은 것이 훨씬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란이에게는 그런 고마움이 특히 더 크다. 너의 생활기록부에도 쓴 문장이었던 바, 모질지 못한 담임을 대신하여 어린 나이에 나를 대신하여 급우들을 대신 다그쳤을 네게 늘 미안하고 고마웠단다. 내가 지금까지도 7반의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교유할 수 있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유란이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사과하고 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하나 더, 2017년 너희가 3학년이 된 후, 아마도 오늘처럼 스승의 날 내게 인사하러 여럿이서 나를 찾아온 일을 기억한다. 나를 찾아온 너희가 더없이 반갑고 고마웠는데, 수업 종이 야속하게 울린 것도 그러하거나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유달리 많이 찾아와 내게 반가움을 표하던 그 장면이 민망스럽고 죄송해서 너희를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유란이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을 보아서, 나는 그 일이 지금까지도 내내 미안했다. 지금과 같은 마음이라면 다른 선생님들께 조금 결례가 되더라도 무람없이 큰 소리로 너희와 인사를 주고받았을 것을.

문자 끝에 남긴 인사처럼, 언젠가 유란이를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친구들이랑 같이 찾아뵐게요!”라는 인사에 설레고 들뜨는 기분이 드는 내가 신기하구나. 내가 유란이에게 맛있는 밥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로서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밥으로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아서.

행여 가까운 날에는 보지 못하더라도, 사는 일이 그러하니 서운하거나 아쉬운 생각은 갖지 않을 테다. 이렇게 인사를 전해준 것만으로도 더없이 고맙다. 나도 오래전 약속이 부끄럽지 않게 선생으로서, 인간으로서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마. 늘 행복하고 또 건강하거라.

*어느 수필: 피천득의 「인연」에서, 작가는 청년기에 만난 일본인 소녀 아사코를 일생에 세 번 만난다. 거듭되는 만남 속에서 기억의 기대에 따라 청초하게 성숙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나 마지막으로 그녀를 조우했을 때, 일군(日軍) 장교의 부인이 되어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씁쓸함을 느낀다. 그는 수필에서 마지막 만남은 아니 가졌어야 했다는 말을 남기며 그 기분을 표현한다.


- 2025년 5월 15일 선생이었던 박정호 씀

[3] 에필로그: 시계추(振り子, furiko)


“시계추”라는 제목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다.

진자 운동의 궤적에 따라 한 사람의 생애가 그려지는 3분 남짓의 영상을 보며,

거듭 그랬듯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생각에 잠긴다.

지나고 보면 생(生)은 덧없고

아름다운 순간들은 분분한 낙화처럼 속절없이 느껴진다.

스승의 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예전 학생의 문자를 받고,

“시계추”를 보듯, 그 시절에 쓴 문집을 읽었다.

나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덧없지 지나고 만 세월을 떠올리며,

문자를 준 학생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는 답신을 썼다.

인생을 바꾼 5분이라는 주제에는 조금 어긋났지만,

5분에 걸쳐 떠올린 무렵의 기억이,

내 삶을 이곳으로 이끌어오는 데 큰 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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