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과 L의 운동화

신발장을 보며 떠올린 상념

by 박정호

[1] 신발장

(별채) 구두 세 족(블랙 2, 브라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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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 뉴발란스 574 - 그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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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 컨버스화 2족(足) - 블랙, 베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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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 금강제화 단화 화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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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 뉴발란스 w480 베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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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 뉴발란스 w480 네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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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 뉴발란스 w480 그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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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 뉴발란스 v1080 검정 ] (장외) [ 뉴발란스 w480 화이트 ], [ 슬리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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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대한 글을 쓰려다 잠시 신발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층층이 쌓아 올린 신발의 모습은 저층(低層)의 아파트와 닮아 보였습니다. 저는 신발장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으로부터 낯설지만 낯익은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감정은 아마도, 수납의 장(欌)이 가구가 아닌 연립의 주택처럼 느껴지는 데에서 비롯한 낯섦과, 연립의 주택에서 몸을 웅크리며 글을 쓰는 삶에서 연유한 낯익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낯선 낯익음을 뒤로하고 신발의 수를 헤아려 보니 전부 열세 켤레였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손이 닿지 않는 칸까지 쌓아 올리고 별채처럼 다른 열(列)의 수납장까지 빌려 가며 신발을 모아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신발장에서 느낀 또 다른 낯섦이었습니다. 애착하지 못한 물건을 망각하는 습성과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기질도 한몫을 했겠습니다만, 변명할 여지없는 욕망의 반영이라는 것을 시인합니다. 제가 쌓아 올린 신발의 높이는 이를테면 욕망의 층고(層高) 같은 것이 아닐까요.

신발장에서 잠깐, 고개를 숙이고 저의 발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주초석(柱礎石)처럼 넓고 평평한 발을 보며 애(愛)와 증(憎)의 마음이 교차합니다. 모양이 별나서 기성품 중에서는 알맞은 신발을 찾을 수 없는 발이 원망스럽습니다만, 그래서 딱하다는 생각 역시 지울 수 없습니다. 신발에 발을 맞춰. 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대에서요. 275EEE* 전투화 속에서 앞뒤로 헛돌던 저의 발은, 발등이 높고 볼이 지나치게 넓은 평발입니다. 260mm 남짓한 길이임에도 등과 볼의 너비에 맞춰, 저는 일상화를 항상 280, 285mm로 타협해야 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처럼 다소 괴랄한 해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변명을 하자면 신발 수집벽(蒐集癖)은 발바닥의 별난 생김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길이에 맞추면 등과 볼이 아파서 신을 신지 못하고, 볼과 등에 맞추면 항상 앞뒤로 겉도는 신발 구입 수난사 끝에 뉴발란스 워킹화 W480과 러닝화 V1080이 그나마의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발가락 한 마디만큼의 공백이 신발 코에 남아 아쉽지만요.

뉴발란스 574와 컨버스 2족, 그리고 구두들은 미련이라 일컬어 두겠습니다. 잘 빠진 생선처럼 날렵한 신발을 신고 싶지만 발이 허락하지 않아 신을 수 없는, 그렇지만 착화에 대한 욕망이 떨쳐지지 않아서 미련처럼 남은 몇 켤레라고요. 이번 미니씀을 읽을 즈음에는 헌 옷 수거함에 못 신을 저의 신들을 보내줄까 합니다.

자리를 옮겨 글을 쓰는 지금은 W480 화이트가 저의 발아래 놓여 있습니다. 4E(볼이 매우 넓음)라는 형태로 출시되었음에도, 신발의 형상은 제 발의 생김에 따라 볼을 부풀린 복어처럼 넙데데하고 투박하게 늘어나 있습니다. 유선형을 잃어버린 그 변형된 형상이 제 발과 신발의 투쟁사가 아닐까 합니다. 신발은 스스로의 형상으로 제 발과의 투쟁사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어쩌면. 내려다 본 제 발을 향한 저의 애증은, 떨쳐낼 수 없는 저의 생(生)에 대한 애(愛)와 증(憎)이 아니었을까요.

*275EEE: 전투화는 E의 개수로 볼의 넓음을 표현하는데요, E가 셋이면 가장 넓은 규격입니다.

*신발이 형상으로써 삶을 드러낸다는 통찰은 나희덕의 시 「벗어놓은 스타킹」에서 얻었습니다. 짧게 인용하자면,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 여기 쓰러져 있다 /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 (중략)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나 있다 /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와 같은 구절에서요.

[2] 에필로그: L의 운동화

신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몇 년 전 출간 행사로 매체에 오르내리던 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라는 소설이었죠.

이한열이라는 이름의 이니셜 L을 빌려

연대 앞 시위 광장에서 열사(烈士)가 떨구고 간

신발 한 족(足)을 복원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L”에 방점을 찍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처럼

민주화를 향한 항쟁의 서사를 기대했지만

김숨 작가는 “운동화”에 방점을 찍어

물건에 깃든 기억과 기록,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복원의 의미를

묻고 밝히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L의 운동화는 L이 아니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또 보존할 것인가

복원과 보존은 바람직한가로 나아가는

작가의 물음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의 글쓰기 역시

어떤 면에서는 소실하고 망각된

기억의 복원처럼 느껴졌고

제가 신는 모든 신이

신의 변형으로써 현재의 삶을 기록해가는 행위라는

생각이 번뜩 떠올라

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글을 쓰는 것과 신을 신는 것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언젠가 「L의 운동화」를 주제로

저의 문제의식을 담은 사적 후기를 남길 날을 기약해 봅니다.


(202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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