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형식의 착각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고찰 (이현호, 「자취」를 읽고)

by 박정호

[1] 프롤로그: 이현호, 「자취」


모르는 사람과 잤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만큼 좋은 향기가 나고 이름을 몰라도 눈부신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나무뿌리처럼 얽혀 서로의 베개가 되어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어도 아무도 얼굴 본 적 없는 아이를 낳겠지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핏줄이 뜨거워졌다 어떤 빛 속이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꿈에서 깼을 때

누가 오래 머리를 두었다가 간 듯이 베개는 인간의 체온으로 젖어 있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 그만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는 손길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2] 정서둔마(情緖鈍麻)


정서둔마(情緖鈍麻)라는 말이 있다. 주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어인데 감정 반응이 약화되거나 줄어드는 상태를 일컬을 때 쓴다. 질환적 상태를 지시하는 말의 용법에 비춰 본다면, 나이가 들어 감응이 약해지는 마음의 변화도 병증처럼 이해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나이듦은 몸과 마음이 질환적 상태로 이행한다고 볼 수 있는지 나는 궁금했다. 나의 물음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몸으로써 물은 무례하고 무용한 질문이었다.


문득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덜 생기는 거라며* 의인화 된 감정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고 받는 대화를 듣고 나 역시 쓸쓸해지던 기억이 난다. 그 쓸쓸함은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이 불감해진다는 사실을 부지불식간 느끼고 받아들였던 경험적 자각에서 비롯한 마음이었다.


불감하여 잃은 감정들 중 가장 그리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나는 지금은 있지 않은 그 감정의 질감을 희구한다. 회춘을 희망하는 노인의 바람처럼, 연애 감정의 소멸이 불가역적인 변화임을 알면서도 무렵의 마음을 때로는 회복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내가 살아갈 그 어느 미래에서도 그 시절의 방식으로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연애 감정은 청춘의 특권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그런 형식의 연애, 사랑, 이별을 감당하지 못한다. 내가 사랑에 불감(不感)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불감당(不堪當)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에 불감하고 불감당하므로, 내가 다니는 청년 취미 모임-씀에세이에서도 사랑이란 주제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청년이 주축이 되는 모임이므로 사랑은 빠질 수가 없는 주제인데, 그것이 화두가 되는 대화 속에선 어쩔 수 없이 한 발치쯤 물러나고 만다. 적어도 연애에 관해서라면, 나이로 보나 결혼 여부로 보나 나는 원로처럼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적령기를 지난 연애 원로에게 참관인의 자격이 주어진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나는 필친들의 대화를 들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글쓰기 모임을 마친 어느 날 청년 시절 연애 감수성을 잃은 마음에 서운해져서 이현호의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를 꺼내 읽었다. 무딘 날을 보며 숯돌을 찾아 칼갈이를 하듯이 섬세함을 잃은 마음을 벼릴 때마다 이따금 찾는 책이었다. 시인이 그려내는 상실의 풍경 속에서 나는 실연당한 사람처럼 서러워진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연애 세포도 잠시 회춘한다. 그가 만든 화자들이 이별을 고백하는 말로 마음을 흔드는 순간, 나는 취기처럼 젖어드는 감정에 기대 젊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의 글쓰기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한다.


벼려진 마음으로 본 시집 안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자취」다. 나는 「자취」를 읽으며 제목에 주목한다. 자취는 청춘을 대표하는 주거의 형식이고, 독거와 불안정을 함의하는 생활의 양식이다. 자취가 환기하는 혼자와 불안정이라는 속성은 자취 속에서의 연애를 이별이 내재한 상태로 존재하게 한다**. 자취를 기반으로 하는 연애는 하나의 ‘뿌리처럼 얽혀 서로의 베개가 되’는 생활을 공유하면서도, 언젠가는 서로가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갖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 공유했던 삶의 풍경, 그 속에서 피고진 눈부신 꽃과 모르는 만큼 향기롭게 코를 간지럽히던 향기. 화자는 지나간 연애를 그렇게 규정한다. 화자는 그러한 연애 속에서 ‘아무도 본 적 없는 아이’를 생각하기도, ‘그 어떤 빛 속이라도 걸어’가 보겠다는 포부를 가져보기도 한다. 그 모든 사랑의 풍경은 그녀를, 그리고 사랑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랑은 몰라서 가능하고 모름으로써 완성되는 마음의 상태다.


하나의 뿌리처럼 얽힌 삶이 분리되는 순간, 얽혀진 그 모든 생활이 부서지고 파괴되는 순간을 어렴풋이 떠올려 본다. 하나인 줄로만 알고 그리하여 너와 나 사이에 나누지 못할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당신을 모르는 사람, 더 나아가 모르겠는 사람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순간. 나는 비로소 그 연애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종말하는 시점에서 지난 일들은 때로 꿈같다. 각몽처럼 소멸한 사랑은 일상으로 환원되고 나는 몽자류 소설의 주인공처럼 깨어난 현실 속에서 전과는 조금 다른 인간이 되고 만다. 있지 않은 당신의 온기와 두상을 형상으로 기억하는 베개를 끌어 안은 채, 사랑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더는 알지 못하는, 사실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당신과의 사랑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나는 무례한 물음 끝에 다시 무례한 대답을 내놓아 본다. 어쩌면 사랑은 습관이란 형식의 착각일는지도 모른다고.

사랑 속에선 누구나 너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믿음, 너와 분리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영원히 영원을 약속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습관처럼 갖는 이유로.


* Maybe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grow up, you feel less joy.

** 그의 다른 시 「명화 극장」에서는 이별이 내재된 연애의 사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영원히를 말한다. 너는

나는 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라고 표현한다.


‘나는’과 ‘미래를’ 사에에 생략된 것은 다름 아닌 이별이다.



[3] 에필로그: 습관


미니씀 공지: 나의 사소한 습관


허공처럼 검은 모니터를 마주하고 글을 궁리한다.

내게 내세울 만한 단 하나의 습관이 있다면 글을 쓰는 일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쓴 서두를 지우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사실은 글쓰기에 한하여서도 떨쳐내지 못하는, 과업을 유예하는 습관.

직업병처럼 말이 늘어지며 단문으로 만족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문장을 늘리는 습관.


습관이란 주제의 글을 내어 놓으며

나의 습관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한다.


(202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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