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반영
지구 야경 사진을 보았다. 지표면을 촘촘히 밝힌 인공광들의 대열이 성탄을 기념하는 트리의 전구처럼 밝고 아름다웠다. 저렇게들 모여, 열심히들 사는구나. 산다는 건 찬란하고 아름답구나.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가진 날도 있었다. 나의 마음도 촘촘한 조명처럼 밝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어떤 인터넷 강사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 동아시아 여러 국가 가운데 유독 어두운 나라가 있었다. 북한이었다. 마치 반딧불처럼 한 점 불빛만 밝혀진 나라. 강사는 점을 가리키며, 저곳은 평양이라며 김정은이 리니지를 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영상 속에선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학생들과 같이 웃었다. 그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지구 야경 사진을 보았다. 지표면을 촘촘히 밝힌 인공광들의 대열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조명의 범위와 밀도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본의 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자본을 빛으로 가난을 어둠으로 표현하는 그 솔직하고 잔혹한 사진의 도법(圖法)을. 나는 도법을 이해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강사의 유머에 얼마나 크게 웃었던가.
나는 알고 있었다. 조명의 범위와 밀도는 자본의 범위와 밀도라는 것을. 자본주의 지구에서 그것은 욕망의 범위와 밀도이기도 했다. 욕망이 퍼지고 모이고 쌓이는 자리는 별자리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두운 자리를 사는 사람들의 삶, 그러니까 욕망을 욕망할 수 없는 생을 저도 모르게 조소하고 멸시했다.
“그곳은 지옥일 거야.”라고 저도 모르게 되뇌었다. 이곳이 지옥이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빛을 모으고 밝힘으로써 욕망의 영역을 넓혀야 했다. 욕망의 빛은 날마다 찬란하게 불을 밝히며 확산되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티베트고원 라다크 지역을 다녀간 후 『오래된 미래』를 썼다. 그녀는 라다크 사람들이 문명화되며 ‘오래된 미래’를 잃고 불행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지구 야경 사진의 빛이 밝아갈수록 영혼을 밝히는 마음의 빛은 잦아들었다.
*지구 야경 사진: 인공위성으로 지구의 야경을 촬영했을 때, 지표면에서 인공광이 방출되는 분포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사진 혹은 영상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