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핑거 스냅

복수에 대한 고찰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고)

by 박정호

탐욕스럽고 호전적이던 눈빛에는 그 어떤 패기나 욕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냄비를 젓기 시작했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지구 영웅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캡틴 마블이 타노스의 목과 손을 감았고 베너 박사가 조정하는 헐크 버스터는 그의 팔을 힘껏 당겼다. 앙상한 팔이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늘어났을 때 토르는 도끼질로 그것을 잘라버렸다. 숯검댕처럼 산화된 건틀릿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낡은 건틀릿은 더 이상 인피니티 스톤으로 반짝이지 않았다.

건틀릿을 내려다보며 영웅들이 추궁했다.

스톤은 어디 있나? (Where is the stone)

그가 말했다.

사라졌어. (Gone)

영웅들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사라지게 한 그날의 사건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아버지는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아. 네뷸라의 한 마디에 모두들 비로소 현실을 실감했다. 그 순간, 토르의 도끼가 공중을 가르며 타노스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다시, 툭.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의 복수극은 거기서 막을 내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대급 오프닝이 아니었을까. 타노스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극장을 휘감던 고요한 정적을 잊을 수 없다. 관객들 모두 미래를 잃은 듯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오두막을 나서는 영웅들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뒤통수에서 느껴지던 황망함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왜 복수에 실패하는가. 우주 끝까지 쫓아가 기어이 목숨을 거둔 순간, 그들이 느낀 감정은 왜 성취감이 아니라 절망감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상황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들은 복수를 완수함으로써 복수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애당초 목숨을 거두는 것 따위의 가해(可害)로는 나에게 가해진 위해를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고. 그리고 이 지점에서 다시 묻는다.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 삶이 상실을 안겨줄 때, 그 상실의 원인이 타인의 악의(惡意)와 고의(故意)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타인에 대한 복수는 가능한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미처 드러나지 않은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가해와 피해는 한 쪽이 다른 한쪽에게 개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위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관계이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는 왜 내재되어 있으며 또 역전될 수 없는가. 나는 그 까닭이 서로가 가진 삶의 조건의 비대칭성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불합리하지만 가해자는 언제나 권력을 가진 쪽이고 그러므로 둘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한다. 피해자가 가해로써 피해를 되돌려주려 한들, 피해에 상응하는 위해를 입힐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므로 대개의 복수는 미수(未遂)에 그치고 만다. 하여 타인에 대한 복수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미수(未遂)에 그친 복수의 대상들을 떠올려 본다. 학생들 앞에서 나의 교육 활동을 꾸짖고 모욕을 준 감 선생, 1년 동안 부서 공문 250개 중 단 4개만 생산하였던 임 부장, 자신의 당직 근무를 내게 미루어 42일 동안 19번 불침하게 한 채 과장 정도가 얼핏 생각난다. 인간에 대해 가졌던 선의와 믿음을 타노스의 핑거 스냅처럼 절반쯤은 소멸하게 했던 그들은, 내가 그들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복수를 미수에 그치게 한 관계의 비대칭성은 기수(既遂)한 사실에 대한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해의 사실을 기억하고 그 고통을 감내하는 쪽은 언제나 피해자 쪽이다.

그렇다면 관계의 비대칭성이 불러온 불합리함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나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잠언에 기대어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 어떤 비대칭적 조건 속에서도 인생에서는 누구나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다. 누군가의 가해로 인해 치명적으로 인생이 망가진 순간, 전심전력을 다해 그 피해를 가해로써 되돌려주겠다 마음먹는 일도 가능하겠지만, 한 발짝만 떨어져 인생을 관조할 수 있다면 삶이 가져다주는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어벤저스:엔드 게임』의 서사도 그렇지 않았나. 엔드 게임의 줄거리는 결국 복수가 아닌 회복의 과정이었다. 그들은 우주적 질서를 거슬러 과거로 혹은 다른 시간선의 우주로 나아가 스톤을 찾아오고,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진 일상의 회복을 다시 이루어낸다. 나는 어벤저스 시리즈가 분명한 선악의 대립 구도 속에 징벌적 처단을 완수하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궤적에서 비롯한 소신과 신념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완수해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져 좋았다.

허무맹랑하나, 만약 여섯 개의 보석이 모두 채워진 인피니티 건틀릿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내 심신이 그 장갑을 감당할 수 있다면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할 것 같다. 미수에 그친 복수를 완수하기보다는, 그들로 인해 가진 마음의 앙금을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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