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

관계에 대한 우주적 고찰 (지바 마사야, 『현대사상 입문』을 읽고)

by 박정호

애초에 책 한 권을 완벽하게 읽는 일은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책을 읽었다’는 경험은 참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설사 끝까지 통독해도 세부 사항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하게 말하면 대부분을 잊어버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책이었냐고 물으면 생각이 나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큰 ‘골격’이며, 혹은 인상에 남았던 세부 사항입니다. 이것은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완전한 독서도 독서입니다, 뭐랄까 독서는 모두 불완전한 것입니다.

- 지바 마사야, 『현대사상 입문』에서




비문학 지문에 소개된 데리다*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오랜 독서 끝에 기억나는 문장은 하나도 없었고, 저자의 말마따나 이항대립을 해체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평가와 독특한 독서 이론만 어렴풋이 남았습니다. ‘뭐랄까 독서는 불완전한 것’이라는 책의 주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그의 독서관이 기억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쨌든 그 말은 제게 큰 위안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뭐랄까 독서는 불완전한 것’이라는 말 대신, 어쩌면 ‘대화 역시 불완전하다’는 말도 성립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와 만난다는 게, 그리고 말을 주고받는다는 게, 결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였음을 의미하지 않을 거예요. 독서와 같은 이치로 그 누구도 어떤 이와 나누었던 발화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고, 강하게 말하면 대부분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니까요. '대화'와 '관계'라는 이번 씀에세이 주제를 두고 옛일을 더듬으면서, 저 역시도 주고받은 말들의 타래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나를 위함의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들도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문장들은 대체로 기억의 재현이라기보다, 기억에 기대어 만든 상상이나 재구성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쓰면서 의도치 않게,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허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진실이나 허구의 농도에 개의치 않고 많은 분들께서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해 주셨었죠. 특히 기억 남는 글과 대화의 주제는 아래 것들이었어요.



이석증: 이석(耳石)이 이석(移席) 하였습니다.

곁으로 건너가기: 친누나가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나의 투병 일지: 얼굴의 절반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슬픔의 쓸모: 밤새 행군하며 발목 인대가 끊어진 줄도 모르고 걸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대화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부분들이 흐릿해지고 말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것은 그날의 인상과 온기, 그로부터 받은 고양감 정도였죠. 그래서 언젠가는 기억할 수 없거나 기억되지 못하는 관계에 대해 회의를 가진 적도 있었어요. 기억이든 기약이든 오늘과 연결되지 못하는 어제, 내일로 닿지 못하는 오늘의 일들은 무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었죠.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잊힘과 잊음이 당연하고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지바 마사야의 독서 철학처럼요.



내게 기쁨을 주었던 속 깊은 대화들은 구체적인 발화나 풍경으로 기억되지 못하더라도, 잔상처럼 남겨진 의미와 울림으로 나의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글쓰기와 대화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저의 생각을 깨닫거나, 선뜻 할 수 없었던 일들에 용기를 내어 보기도 했었거든요. 가령 「곁으로 건너가기」를 통해 수십 년 동안 누나를 연민하고 누나에게 미안함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마음을 담아 편지 형식의 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가끔 생각해요. 씀에세이 글쓰기 모임은 어떤 곳이길래, 그리고 우리는 어떤 관계이길래 이런 글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걸까 하고요. 우리는 서로를 ‘필친’이란 관계로 자주 칭하곤 하는데요. 그 관계는 사적으로는 소원하지만 내적으로는 친밀하다 할 만한, 독특한 거리를 갖는 교유의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멀지도 가깝지도 그렇다고 애매하지도 않은 거리 속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긴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함을 가져다줘요.



우주의 어떤 천체들은요. 서로 독립된 듯 오랜 시간 각자의 궤도를 공전하다가, 근접 통과 지점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해요. 새로운 필친들과 만나는 시간은 그런 천체들의 마주침처럼 이해되기도 해요. 그런 의미로 내일 있을 새 시즌의 씀에세이 모임을 기대해 봐요. 천체들의 우주적 순간이 그러하듯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과 교유는 매번 소중하고 아름다우니까요.



*자크 데리다: 프랑스의 철학자.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심부와 주변부처럼 서로 다른 두 개의 대립 요소를 설정하여 대상이나 개념을 파악한 서양 철학(이항대립)의 전통을 비판하고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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