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온유 Apr 20. 2023

유산이 종료되었습니다.

뼈 마디가 시린 두 번째 유산

먼저 한국에 들어간 신랑과 페이스톡을 하는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곱게 보이고 싶은데, 

밤새 진통같은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해 퉁퉁 부은 얼굴로 화면 절반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일그러진 화면 속의 내 얼굴. 스스로 표정을 통제하기 어려워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태낭이 배출되어 있었다. 

두 번째 유산이라 그런지, 오히려 배출되고 난 것이 시원스러운 느낌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첫번째 유산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미 만삭이 되었을 기간을

계류유산으로 두 번 보내고 나니 차라리 이제는 빨리 끝났으면 하는 심경이었다. 

밤새 통증을 겪고 나니 이제는 바늘같은 추위가 밀려왔다. 

계류유산이 종료된 후,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몸은 얼음에 갇힌 듯 회복되지 않고 있다. 출혈도 멈춰지지 않은 상태. 

그래도 살아내야 하기에, 산부인과에 검진을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한국은 지금 어떤지 모르겠지만, 독일은 병원에 예약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나 사보험과 달리, 공보험 (gesetzlich versichert)의 경우에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예약을 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두번째 계류유산이었기 때문에.

 

계류유산은 영어로 독일어로 verpasste Fehlgeburt oder verhaltene Fehlgeburt 라고 한다. 

유산은 Fehlgeburt 또는 Abortion, Abgang이라고 얘기하면 되는 것 같다. 

또, 아기집이 배출된 경우는 Die Fruchtblase(아기집, 태낭) ist raus gekommen이라고 말하면 된다.

아래와 같은 대화로 병원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나: Hallo, ich möchte einen Termin vereinbaren

    진료 예약잡고 싶습니다. 

접수원:Geben Sie bitte Ihr Geburtsdatum.

         생년월일을 알려주세요

       

나: (생년월일을 말한 후)

접수원: Bei Frau. Dr. Müller?

           뮬러선생님한테 받으시는거 맞죠? 

나: Ja, ist sie, wer ich immer gesehen habe?

     그래요, 저 매일 보던 그 분이죠? 

접수원: Ja, genau. Haben Sie Beschwerden?

            네, 맞아요! 통증이 있으세요? 

         

나: Nein, ich möchte zur Kontrolle den Termin vereinbaren, weil die Fruchtblase raus gekommen ist. 

    아뇨, 그냥 검진때문에 예약하려고요, 아기집이 배출되었거든요

(중략)


접수원은 건조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날짜를 잡아주었다. 첫번째 유산때는 아예 접수대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검진예약을 잡고 갔었는데, 그래도 두 번째라고 씩씩하게 예약을 마쳤다. 


8주차에 최종적으로 배아가 자라지 못한 것을 확인했을 때,

의사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선택권을 3가지 주셨다.

1. 자연배출 기다리기

2. 약물배출

3. 수술


1<2<3 순서로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별다른 증세가 없었기에 나는 자연배출을 "다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의사선생님도 동의하며,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진단서(Überweisung)를 발급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진단서가 있으면 대학병원에 따로 진료예약없이 바로 응급으로 갈 수 있다.


첫 유산에도 그랬듯 "다시" 11주차에 자연배출을 통해 유산을 종료했다. 보통 계류유산 자연배출을 기다릴 때, 12주차까지는 괜찮다고 하더니 정말 12주 직전에 배출이 되었다. 우리 몸은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시계가 우리 몸을 압도하고 있다. 이 시계도 언젠가는 멈추겠지. 그 전까지는 똑딱똑딱 걸으며 살아내야 한다.


실은 지금 석사논문을 쓰고 있는 중인데, 

두 번이나 아기를 떠나보내고 졸업논문을 쓰려니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래도 지금은 해내야 한다. 그래야 아기천사들이 머물다 간 나 자신에게 덜 부끄러울 것 같다. 


독일에서 계류유산 자연배출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3가지 포인트.

1. 자연배출은 (검진 후 몸에 이상이 없을 경우) 12주차까지 기다려도 좋고 나의 경우에는 두 번 다 11주차에 배출되었다. (11주차부터 출혈이 시작되고 4일 이내에 종료됨)

2. 유산의 독일어는 Fehlgeburt, 태낭이 배출되었다.라는 말의 독일어는 Die Fruchtblase ist raus gekommen. 

3. 3번째 유산이 되면 그때부터 공보험에 적용이 되어 각종 검진등을 별도 비용부담없이 진행할 수 있다..만 아무도 3번째까지 유산이 안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 글은 아무 이름도, 형체도 없이 떠난 두번째 아기천사를 기릴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몸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품은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처럼, 제가 잠시 품을 수 있었던 무언가를 의미있는 존재로 나타낼 수 있도록, 저의 짧은 경험담을 나눕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참고가 되어 "의미"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멜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