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디비전과 토킹헤즈를 중심으로
브베는 본래 “엽기 유튜버”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되어 왔다. 논란과 기행, 자극적인 영상은 그를 대중적 담론에서 주류 음악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인물로 고정해버렸다. 그러나 해체주의적 관점은 바로 이 고정된 이미지와 의미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브베의 음악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순간, 그의 엽기성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포스트펑크·뉴웨이브적 유산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그의 곡은 싸구려 같은 90년대 디지털 신스를 전면에 깔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를 택한다. 겉으로는 허술하고 유치해 보이지만, 이 반복성은 오히려 토킹 헤즈가 보여주었던 리듬의 집착적 실험과, 조이 디비전의 드럼·베이스 위주의 구조적 긴장감을 연상시킨다. 표면의 가벼움이 내부의 긴장을 숨기는 셈이다.
가사는 더더욱 단순하다. “안 좋은 기억들은 모두 잊어버려 / 즐거운 상상들만 가득 담아보렴”이라는 구절은 긍정적 자기암시처럼 들리지만, 반복될수록 세뇌송 같은 불안을 남긴다. 특히 “욕심없는 부모님, 욕심없는 로보트, 욕심없는 선생님“ 같은 나열은 원래 욕심이 없을 로보트까지 굳이 강조하면서 언어의 불필요함 속에서 역설적 힘을 획득한다. 단순한 나열이지만, 듣는 이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욕심을 떠올리게 되고, 이 순간 노래는 유치함을 넘어 풍자가 된다.
브베의 무대 퍼포먼스, 즉 괴상한 안무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완성한다. 엉성하고 걷는 듯한 동작은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을 연상시키며, 음악의 단순성과 몸짓의 기괴함이 맞물려 밝음과 불안, 유머와 기묘함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는 곧 브베가 “엽기 유튜버”라는 기표에 갇히지 않고, 해체적 아이러니 자체를 무대화하는 행위자임을 드러낸다.
결국 브베 음악은 주류/비주류, 유치함/진지함, 웃음/불안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가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컬트적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브베는 단순히 기괴한 인터넷 인물이 아니라, 의도치 않게 포스트펑크적 유산을 현재적 아이러니로 소환하는 퍼포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