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 아카이브 (1)
에반게리온과 트랄랄렐로(이탈리안 브레인 롯 밈)는 전혀 다른 문화적 출발점을 갖고 있지만, Z세대의 밈 소비 양상 속에서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하나는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무겁고 상징적인 텍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만들어낸 의미 없는 반복과 과잉의 산물이다. 그런데 두 밈은 모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발생하는 소속감과 우월감, 즉 Z세대식 스노비즘을 자극한다.
에반게리온은 태생적으로 해석 과잉의 작품이었다. 신화적 기호, 철학적 개념, 심리학적 상징이 뒤엉켜 텍스트는 끝없이 확장되었고, 팬덤은 그 위에 수많은 해석을 덧붙였다. 정답은 없지만, “아는 사람만 안다”는 배타성이 작품의 힘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요즘까지 문화적 힘을 원천이 되었다. 오늘날 일부 Z세대에게 에반게리온은 오히려 ‘나는 저 난해한 텍스트를 이해했다’는 순간이 주는 우월의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즉, 텍스트 자체보다 그걸 해독했다고 자임하는 자기 연출이 핵심이다. (사실 에반게리온은 비단 Z세대 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서 이런 소비 양상이 보이긴 했다)
반면 트랄랄렐로는 생성 과잉의 전형이다. AI가 만들어낸 기묘한 목소리와 어색한 반복은 애초에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무의미한 자극은 “웃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웃긴다”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콘텐츠의 질이나 맥락이 아니라, 과잉된 생성물 속에서 소수만이 공감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결국 해석 과잉의 에반게리온과 생성 과잉의 트랄랄렐로는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하나는 지나치게 복잡해서,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무의미해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통의 지점을 공유하는 것이 Z세대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자본이 된다. 정보가 민주화된 시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지식으로는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Z세대의 스노비즘은 지식을 독점하는 대신, 과잉을 견디고 해독할 수 있는 감각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최근 한국의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유행하는 ‘삣삐’ 밈도 이와 이어지는 맥락이다.
에반게리온의 과잉 해석과 트랄랄렐로의 과잉 생성은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오늘날 같은 사회문화적 욕망에 봉사한다. 그것은 바로 “나는 다수와 다르게 이해한다”는 선언이며, 동시에 Z세대가 자신들의 집단성을 확인하는 가장 빠른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 넓은 사회와의 불통이 강화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작은 공동체는 청년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결국 이는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과잉의 시대가 낳은 문화적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