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스틱 트웬티> 리뷰
<매치스틱 트웬티>는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이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에게서 빠져나가는 이야기다. 빠져나가는 조건은 테러리스트에게 ’세계 최고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조건은 청중의 공감 범위가 좁은 상태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로 정의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마디로 이 작품의 주제는 ’공감 범위가 좁을 수록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이다.
나는 반대로 얘기하면 이 주제는 공감의 어두운 면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공감하는 청중 범위가 적을수록 이야기의 재미는 극대화된다”는 말은 단순히 스토리텔링 기법을 넘어, 공감이 작동하는 근본적 원리를 보여준다.
특정한 지식, 문화적 배경, 가치관을 공유하는 소수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일수록 더 강렬한 공감과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곧 공감의 배타성을 의미한다. 내부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 암묵적 코드, 공유된 경험들은 그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외부자들을 소외시킨다. 공감은 본질적으로 선택적이고 편향적이다. 우리는 나와 비슷한 사람, 내 집단이자 내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한다. 이러한 ‘내집단 편향’은 강한 결속력을 가진 공동체를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외부에 대한 경계와 배제를 만들어낸다.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끔찍한 혐오와 폭력도 강한 내집단 결속에서 시작되었다. 나치, 르완다의 대학살,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청소 모두 “우리”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과 그에 따른 “그들”에 대한 비인간화에서 출발했다. 공감은 내집단을 향할 때는 사랑이 되지만, 그 경계 바깥을 향할 때는 무관심이나 적대감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바로 이 원리를 악용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가장 강하게 반응할 만한 콘텐츠, 즉 그들만의 편향된 공감대를 자극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정치적으로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상대편을 조롱하는 콘텐츠, 특정 집단의 우월감을 부추기는 게시물들이 높은 참여도를 기록하는 이유다.
이런 콘텐츠들은 마사토끼의 법칙을 완벽하게 따른다. 공감하는 청중의 범위는 좁지만, 그 좁은 범위 안에서의 재미와 만족도는 극대화된다. 문제는 이러한 ‘재미’가 타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웃으면서 증오를 학습한다.
우리는 공감을 무조건적 선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 더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마사토끼의 통찰이 보여주듯, 진정한 소통은 때로는 ‘재미없는’ 선택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특정 집단만 공감하는 이야기보다 덜 자극적일 수 있지만, 더 많은 상대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