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뚫었더니 새로운 걸 보기 시작한 남자
야마모토 히데오의 만화 ‘호문쿨루스’는 리뷰쟁이로서 이렇게 표현하는게 성의없어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명작’ 중 하나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 뒤에 타인의 심층심리를 볼 수 있게 된 노숙자 사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만화로, 단행본 15권 분량으로 완결되었다. 자동차 안에서 숙식 생활을 하고 있는 홈리스 나코시. 모든 일에 거짓말을 하는 그는 자 자신조차도 속이며 산다. 화려한 고층 호텔과 노숙자들이 사는 공원 그 중간의 길에서 지내는 나코시. 이 나코시에게 의대생인 마나부가 접근하여 머리에 구멍을 내는 수술인 ‘트리퍼네이션’을 제안한다.
이 수술 후 나코시는 왼쪽 눈을 가린 상태로 특별한 시야를 갖게 되고, 주인공인 나코시는 사람들의 호문쿨루스를 보고 이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췄다. 작품 속에서 나코시는 왼쪽 눈을 가린 채로만, 즉 정상적인 관점이 차단되어야 비로소 호문쿨루스, 즉 사람의 내면이 일그러진 형상들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가 보는 것은 곧 타인의 내부, 무의식의 형체이다. 그 형체는 기괴하거나 일그러져 있다. 었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나코시가 보는 기괴한 형체들이 결코 단순히 “타인의 것”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인의 형상이 나코시의 내면에 되돌아오고, 결국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한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게 된다. 즉 ‘본다’는 것은 타인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행위와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을 보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구조에서 관찰자인 나코시는 단순한 관찰자 혹은 투시자가 아니라 접속자가 된다. 그는 타인의 호문쿨루스를 통해 자신을 알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내면과 무의식, 결핍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모든 인물은 거대한 고독의 구멍을 지니고 있다. 트리퍼네이션으로 뚫린 나코시의 머리는 이 구멍의 가장 직설적인 상징이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상처를 보고 느끼면서도, 스스로의 내면은 도무지 통찰하거나 치유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나코시는 자신이 보는 호문쿨루스를 치료해줄 수 있지만, 자신의 호문쿨루스만큼은 치유할 수 없다.
이 구멍은 각성의 촉발제보단 존재의 조건, 메울 수 없는 결핍의 틈이다. 모든 인간은 그 구멍을 가진 채로 살아가며, 타인이 그것을 완전히 메워줄 수도, 완전한 이해를 줄 수도 없다. 이 고독은 공유될 수 없는 내밀한 결핍이다. 나코시는 타인의 호문쿨루스를 들여다보지만, 그 들여다봄이 자꾸 그의 내부 구멍을 더 명료하게 드러낸다. 마치 타인의 상처를 ‘치료’함으로써, 자신이 더 깊은 균열 위에 놓였음을 발견하는 역설처럼. 작품 내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정신과 의사가 목줄에 묶인 개로 표현된 것이 그 은유 중 하나다. ‘
‘호문쿨루스’를 읽은 후 남는 질문은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이다. 작품은 그것을 허락하는 듯 허락하지 않는다. 작중 초반 부에는 나코시가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설명함으로써 이해와 치유가 가능한 것을 보이지만, 정작 나코시는 점점 더 고독으로 빠지면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모호해진다. 즉, 나코시의 ‘특별한 시야’조차 진정한 이해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이해란 무엇일까? 나의 시선으로 타인을 볼 수 밖에 없는 한계 속에서 우린 정말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코시에게 뚫린 구멍은 메워지기는 커녕 더 늘어나지만, 그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들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 결핍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둡고 우울한 작품이 왜인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