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기회를 만든 이야기
1년 9개월, 퇴사 이후 다시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어떻게 보면 공백기로 보일 수 있는 이 시기, 오랜만에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하며 저의 취업 소식을 전달하니 아직까지 하고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은 제게 ‘내 커리어를 스스로 선택하는 연습의 시간’이었습니다.
미디어에는 탁월한 일잘러들이 넘쳐나죠. 그런데 너무 멀리 있는 롤모델을 보는 것보다 한 발 앞서 걸어본 사람의 이야기가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의미로, 저의 이야기가 지금 고민 중인 누군가에게 작은 힌트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6년 정도 정부산하기관에서 교육 사업을 담당했고 그 전에는 2년간 교육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월급이 80%만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안정성’을 좇아 공공 분야로 이직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렇게 교육부서에서 안정적으로 지내왔지만 언제부턴가 퇴사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버거웠고, 사람 때문에 지쳤고, 의미 없이 반복되는 루틴이 지루하기도 했죠.
하지만 제가 진짜 퇴사를 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 따로 있었는데요. 바로 ‘조직과 내가 지향하는 가치가 너무 다르다’고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공공기관은 직무 순환이 필수입니다. 6년 간 운 좋게 교육부서에 있었던 저도 감사부서로 이동하게 되었고 법령과 규정 중심의 새로운 업무가 낯설고 어렵더라고요.
이때 많은 고민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 조직은 ‘어디든 보낼 수 있는 사람(제너럴리스트)’을 원하지만 저는 ‘HR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고 싶다는 근본적인 지향점의 차이였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퇴사 결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는 제가 이 조직에서 있는 한 계속 반복될 문제이고, 장기적으로 저의 커리어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당차게 회사를 나왔습니다.
호기롭게 퇴사를 하긴 했지만 갈 곳을 정해놓고 나온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방향에 대한 고민이 따라왔고요.
막연한 불안과 함께 처음 들었던 질문은 ‘나는 뭘 잘하지?’, ‘무엇을 좋아했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힘이 날까?’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질문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여러 진단 도구도 활용해봤어요. 강점, 흥미, 관계 욕구, 스트레스 반응, 학습 유형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나라는 사람의 결을 조금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 했죠.
그렇게 스스로 탐색하다보니 키워드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조직문화’였습니다.
예전에 교육 컨설팅 회사에서 공공기관으로 이직하면서 일하는 방식의 차이를 엄청 크게 느꼈었거든요. 같은 사람이 있어도, 문화에 따라 일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커리어의 방향을 고민하며 교육을 넘어 조직문화와 HR 전반으로 저의 업을 확장하고자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저의 교육 커리어만 가지고 다른 회사의 조직문화 담당자로 지원하기엔 한계점이 명확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너무 큰 프로젝트나 계획은 오히려 무겁고 부담스러워 포기하게 되니까 작지만 확실하게 시작할 수 있는 걸 찾기로 했는데요.
그때 떠오른 게 ‘조직문화를 주제로 한 인스타툰’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조직문화를 표현하는 것이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쉽진 않았습니다.
망하면 어쩌지? 난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죠. (ISFJ 특: 걱정 인형)
하지만 막상 올려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해도 괜찮구나”, “걱정했던 것 만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네” 같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렇게 한 달간 총 20편의 인스타 콘텐츠를 만들었고, 이는 저에게 작지만 소중한 성공경험이 되었습니다.
첫 시도로 용기를 얻고 제가 활동하던 커뮤니티 안에서 2가지 프로젝트를 새롭게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 커뮤니티 멤버들의 행동 기준이 되어주는 핵심가치 가이드북 제작
- 멤버들과 함께 기획한 1박 2일 커뮤니티 캠프 운영
이 과정에서 깨달은 건 ‘조직문화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성원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를 함께 설계해야 말뿐인 문화가 아닌 ‘작동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런 프로젝트들이 쌓이자 자연스럽게 회사 밖에서의 경험이 또 다른 포트폴리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발판으로 제가 먼저 스타트업 팀에 협업을 제안하고 3개월간 콘텐츠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며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죠.
이후에는 좀더 적극적인 구직을 위해 링크드인에 HR 관련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으로 반응이 크게 온 글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이어 “박송이를 팝니다”라는 이름의 공개 구직 콘텐츠를 올리게 됐고요.
특히나 이 글을 통해 모르는 분들께 응원도 많이 받고, 다양한 분들과의 커피챗과 면접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진짜 연결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연결 가운데 제가 원하던 직무로 일할 수 있는 회사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 1년 9개월 동안 제가 했던 건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가능했던 건 제가 한 일들을 경험에서 끝내지 않고 이를 회고하며 콘텐츠로 기록해 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이 컵을 보게.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 달라. 서로 타자야.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 손 내미는 거지.
저는 커리어에서 ‘콘텐츠’가 바로 이 손잡이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단 한 줄로 설명하긴 어렵잖아요. 그럴 때 콘텐츠가 좋은 손잡이가 되어주더라고요.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말이든 말이죠. 기록은 결국 연결의 시작이 됩니다.
혹시 지금, 커리어의 갈림길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내가 가진 경험들로 작은 손잡이를 하나 만들어보세요. 그 손잡이가 당신의 다음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줄 수 있을 거에요!
저처럼 커리어와 콘텐츠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으실까요?
‘콘텐츠로 커리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온/오프라인 가벼운 벙개나 모임을 열어볼까 하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 주세요 :)
추후에 오픈되면 제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